[박찬용의 물건漫談]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는… ‘지포라이터’서 보수의 가치를 떠올리다

박찬용 아레나 옴므 플러스 피처 디렉터 2023. 12. 2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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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의 저력은 다양성과 더불어 지킬 건 지키는 보수성
주식 상장 없이 90년째 그 자리… 무료 수선·교체도 여전
美 본사엔 한글 지포라이터도… ‘퐁, 치익’의 손맛 그리워
일러스트=이철원

영화 ‘서울의 봄’에는 담배 피우는 장면이 많다. 1980년 결핵협회가 집계한 한국 남성 성인 흡연율이 79.4%였음을 생각하면 일리 있다. 영화 속 장군들은 아무 라이터나 안 쓴다. 주인공 전두광은 자기가 불을 붙이지도 않는다. 담배를 물면 옆 사람이 불을 붙여준다. 불을 붙일 때 끽연가라면 익숙할 소리가 들린다. 뚜껑을 열 때 퐁, 불을 붙일 때 치익. 지포 라이터 소리다.

지포 라이터가 나오는 장면을 보고 나는 ‘영화가 소품 고증에 공을 기울였구나’라고 생각했다. 일국의 장군들이 반란을 하려고 모였는데 플라스틱 1회용 라이터로 불을 붙이면 그림이 안 맞는다. 그렇다고 당시 한국 경제 수준을 생각하면 뒤퐁이나 카르티에 같은 고급 라이터도 적합하지 않다. 안 싸지만 너무 비싸지는 않고, 거센 바람에도 불이 꺼지지 않는 지포 라이터가 잘 어울린다. 실제로도 지포 라이터의 역사와 위상은 미국 군대와 깊은 연관이 있다.

지포 라이터가 군대와 함께 큰 이유는 두 가지다. 일단 튼튼하다는 점이다. 지포는 고장 난 라이터를 미국 필라델피아주 브래드퍼드의 본사로 보내면 모두 무료로 고쳐주거나 신품으로 바꿔줄 정도로 품질에 자신감을 보인다. 둘째는 전쟁이다. 내구성 덕에 지포는 미국의 국제 전쟁에 함께했다. 미국 최초 대규모 국외 파병은 1941년의 제2차 세계대전이다. 이때부터 미군의 주요 소지품이 훗날 남성 패션 상품군에 큰 영향을 미쳤다. 남성 캐주얼 곳곳에 각종 미군 군복의 발상과 외형이 남아 있다. 서울의 봄에서 장군들이 입은 육군 동근무복도 미군 전차병의 ‘바머(bomber) 재킷’과 비슷하다. 지포 라이터 역시 전장의 담배 수요와 함께 세계의 전선으로 퍼졌다. 베트남전쟁 참전 미군의 지포 라이터는 아직 비싸게 거래된다.

지포와 전쟁은 필연적으로 한국과 만난다. 나는 한미 동맹과 지포의 관계를 보여주는 물증을 만난 적이 있다. 나는 2015년에 당시 일하던 잡지 기자 자격으로 지포 라이터 본사를 취재했다. 본사 건물 옆 박물관에는 아예 전쟁 섹션이 따로 만들어져 지포 라이터와 군에 관련된 전시물이 있었다. 그 사이에 한글이 각인된 지포 라이터가 보였다. 1966~67년 당시 주월 한국군 사령관 중장 이세호의 라이터였다.

‘서울의 봄’에도 지포 라이터를 비롯한 미국의 흔적이 숨어 있다. 국방부 장관이 도망치는 곳은 한미연합사령부 벙커다. 그가 도망갈 때 타는 차는 미국차 포드다. 뇌물로 건네는 화폐도 미국 달러다. 전두광의 하나회가 시작되는 육사 11기는 육사 최초로 4년제 과정 교육을 받은 기수다. 그 커리큘럼도 미국 육군사관학교 웨스트포인트의 것을 차용했다. 어느 진영이든 자신이 오늘날의 멋진 한국을 만들었다고 주장하지만, 한국 현대사의 가장 큰 상수이자 변수가 미국임을 암시하는 증표들이다.

시간이 지나도 지포는 변함없다. 지포는 1932년 문을 연 뒤 본사를 옮긴 적이 없다. 주식시장에 상장하지도 않았다. 라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제조업 이상의 업종으로 진출한 적도 없다. 창사 90년이 넘은 지금까지 필요 이상으로 튼튼한 품질도 똑같고 뭐든 받아주는 수리 정책도 변함없다. 나는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저력이 다양성과 함께 하는 보수성이라 본다. 모두가 변하지 않을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지만, 변함없이 지켜지는 게 어디서나 조금씩은 필요하다.

반면 ‘서울의 봄’에 나온 것들은 굉장히 많이 변했다. 한국은 그 후 쿠데타가 없다. 영화 속 등장인물의 실제 모델이 된 사람들은 세상을 떠났다. 미군은 용산을 떠났다. 공도 과도 당시 이해 당사자의 정치적 사정에 따라 변했다. 흡연 가능 구역도 변해서 이제 공공장소는 물론 술집까지 금연이다. 이제 ‘서울의 봄’처럼 담배 연기가 자욱한 실내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이 별로 없다. 나는 이 극단적 역동성 역시 한국의 힘이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한국인이 담배를 떠나고 있다. 1980년 남성 흡연율이 79.4%였는데 질병관리청이 집계한 2021년 남성 흡연율은 31.3%에 불과하다. 영화 속 전두광은 초반에 일갈한다 “바뀐 거 하나도 없습니다. 세상은 그대로야.” 사실은 바뀐 게 더 많다. 바뀌지 않은 건 지포 라이터 정도다. 그 손맛. 퐁, 치익, 하는 그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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