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영화 어때] “내가 사랑하는 거 잊지마” 베이비파우더향이 폴폴, 영화 ‘클레오의 세계’
안녕하세요, 조선일보 문화부 신정선 기자입니다. ‘그 영화 어때’ 33번째 레터는 1월3일 개봉하는 영화 ‘클레오의 세계’입니다. 오늘(20일) 오후에 시사회가 있었습니다. 큰 기대 없이 보러갔다가 아뿔싸. 반짝반짝 빛나는 6살 꼬마에게 무장해제되고 말았네요. 이토록 천진난만한 순진무구함이라니. 겨울 대작이 상영관을 점령한 요즈음, 요란한 군홧발과 포탄 소리 말고 따뜻한 위로를 찾으시는 분들을 위해 레터로 골라봤습니다.
제목에 나오는 클레오는 프랑스 꼬마 이름이에요. 6살이고, 엄마가 암으로 죽었습니다. 혼자 딸을 키우기 힘든 아빠는 유모를 데려옵니다. 유모 글로리아는 아프리카 카보베르데 출신. 돈을 벌기 위해 딸과 아들을 두고 프랑스로 건너왔어요. 클레오에게 유모는 세상의 전부입니다. 둘은 눈빛만 봐도 통해요. 그런데 유모가 모친상을 당하면서 고향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클레오는 아빠를 졸라 기어이 유모가 있는 카보베르데를 찾아갑니다. 유모랑 같이 지내며 유모를 되찾을 방법을 궁리해요.
아, 그러나 6살에게도 인생은 간난신고. 유모의 딸이 아들을 낳으면서 경쟁자가 생긴 것이죠. 손자를 얻은 유모는 클레오에게 불러주던 자장가를 손자에게 불러줍니다. 어화둥둥 끌어안고 동네방네 자랑하고 난리입니다. 어찌 이런 변고가! 질투에 불타는 우리의 클레오, 참다못해 거사(!)를 감행하게 되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될까요. 영화를 보시면 압니다. ^^
영화 보는 내내 코가 간질간질했어요. 베이비파우더 같기도 하고, 애기 살냄새 같기도 한 내음이 은은히 맴도는 것 같고. 글로리아 손자가 응애응애 신생아라 더 그런 듯 했어요. 나중에 클레오가 “나를 용서해줘”라며 꼬물거리는 애기 손에 입을 맞출 때는 입술 촉감이 옮겨간 듯 손등이 간질간질. 그만큼 오감 표현이 잘 된 영화예요.
특히 클레오가 고도근시라 더 그렇죠. (젤 위에 포스터 보이시죠.) 눈이 잘 안 보이니까 나머지 감각, 냄새와 촉감이 더 생생하죠. 주인공만 그런가, 아뇨, 주인공의 마음을 따라가는 관객도 똑같이 그렇게 느끼게 됩니다. 우리 모두는 클레오가 거치고 있는 그 시기를 어렵사리 건너왔으니까요. 누군가는 성숙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상실이라고 하는 그 시절을.
이 영화는 제가 올해 본 가장 진한 러브스토리입니다. 상영관을 나서는 내내 클레오와 글로리아가 주고받은 아래 대사가 맴돌았어요.
“내가 사랑하는 거 잊지마.”
“안 잊을게.”
”맹세해?”
“맹세해.”
이런 순도 100% 맹세를 주고받아본 기억이 언제이던가요. 두 사람은 약속을 뒤로 하고 각자의 길로 돌아섭니다. 그리고 눈물이 터집니다. 둘 중 누구? 영화를 보시고 직접 확인해보세요. 고단한 일상 한가운데에서도 우리를 지탱해주는 누군가의 기억, 누구도 뺏어갈 수 없는 그 때의 추억 속으로 잠시 떠나보시길.
다음 주가 올해 마지막 주네요. 뭔가 결산을 해야할 것 같은데. 제가 올해 어떤 영화를 보고 바보 같이 울었는지(그 장면에 울다니. 지구에서 유일하지 않을까 싶은 영화도 있습니다) 정리해볼까 어쩔까 하고 있습니다. 아니면 쓰다 만 ‘미야자키 하야오와 슈퍼히어로 플래시의 공통점'을 완성해볼지 어떨지. 고민해볼게요, 오늘은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담주에 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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