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포럼] 오만한 야당, 한심한 여당

원재연 2023. 12. 20.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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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은 쇄신 대신 집안싸움만
국힘은 여전히 용산에 끌려다녀
국민 뜻 외면하는 행태 요지부동
그러고도 표 달라고 할 수 있겠나

‘이재명 친위대’라 불리는 더불어민주당 원외 조직인 더민주전국혁신회의가 지난 18일 기자회견을 열고 신당 창당을 추진하는 이낙연 전 대표를 비판했다. “헛된 정치적 욕망으로 민주당의 이름에 먹칠을 했다”, “민주당의 역사를 부정하고 김대중·노무현·문재인 대통령의 명예를 모욕한다”는 원색적인 비난이 쏟아졌다. 초선인 강득구 의원은 이 전 대표를 “윤석열정권의 앞잡이”라고 주장하면서 정계 은퇴를 요구했다.

친명계의 이 전 대표 고립작전은 원내에서도 펼쳐진다. ‘이낙연 신당’ 추진을 만류하는 내용의 연판장에는 민주당 의원 167명 가운데 117명(70%)이 서명했다. ‘철새’라는 오명을 썼던 친명 의원은 이 전 대표를 겨냥해 “정통 야당과 다른 전형적인 사쿠라(변절자) 노선으로, 초전박살 내야 한다”고 했다. 민주당의 ‘이재명 사당화’와 당내 민주주의 훼손을 비판하면 사쿠라이고, 대표 개인의 사법 리스크를 방어하기 위해 국회의원들을 총동원하면 정통 야당이라는 말인가. 참으로 해괴한 논리다.
원재연 논설위원
내년 총선이 4개월도 남지 않았지만 민주당은 쇄신 무풍지대나 마찬가지다. 국민의힘이 ‘김장(김기현·장제원) 연대’가 퇴진하면서 쇄신에 물꼬를 텄지만 민주당에선 어떤 혁신 움직임도 찾아보기 어렵다. 비명계 의원 모임인 ‘원칙과 상식’이 이 대표 2선 후퇴와 통합 비대위 구성을 지도부에 공식 요구했다. 이탄희·홍성국 두 초선 의원은 선거제 퇴행 우려와 후진적 정치 현실을 개탄하면서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대답 없는 메아리에 불과하다. 이 대표는 연일 ‘단합’만 외친다. 자신의 사법 리스크에 대비하고 비주류의 이탈을 막기 위해 ‘혁신’보다는 ‘통합’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니 민주당이 쇄신은커녕 사당화의 길로 치닫는 건 당연하다. ‘가짜 대학생 고문치사 사건’에 연루돼 실형을 선고받았던 정의찬 당대표 특보에 대한 공천 자격 번복 사태가 그 방증이다. 당 공직선거후보자검증위원회는 정 특보에 공천 적격 판정을 내렸다가 논란이 일자 하루 만에 부적격으로 뒤집었다. 이 대표는 “규정을 잘못 본 업무상 실수”라고 했지만 대표 특보라서 눈감아줬다는 게 중론이다. 이 대표가 강성 지지층인 ‘개딸’의 영향력 확대를 위해 권리당원의 권한을 대폭 늘리는 방향으로 당헌·당규를 개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도 민주당이 “총선에서 1당을 뺏길 것 같지 않고, 단독 과반을 넘기느냐 180석을 먹느냐가 관건”(이해찬 전 대표)이라면서 오만한 태도를 보이는 건 집권당이 워낙 부실해서다. 대선에서 승리한 정당이 정권 출범 1년7개월 만에 비상대책위원회를 세 번이나 꾸리는 건 정상이 아니다. 국민의힘은 문재인정권의 무능과 오만 덕에 대선에서 가까스로 이겼으면서도 볼썽사나운 집안싸움으로 날을 지새웠다. 윤심(尹心)의 지원을 받아 김기현 대표 체제가 출범한 뒤에도 달라진 게 없었다. 새 지도부가 용산 대통령실 눈치만 살피는 바람에 여당은 민심으로부터 외면받았고,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참패했다. 김 전 대표가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 띄운 인요한 혁신위는 이벤트로 끝났다.

비대위 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도 국민의힘의 무기력증은 여전하다. 비상상황에 처한 당을 수습하고 이끌어 갈 비대위원장이 대통령 의중에 따라 사실상 결정됐는데도 별다른 ‘저항’이 감지되지 않는다. 집권 2년도 안 돼 대표 2명이 중도하차하게 된 근본 책임은 용산에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하지만 대통령실에 휘둘린 여당 책임도 가볍지 않다. 국정의 한 축을 담당하는 집권당이라면 대통령실에 협조하면서도 건강한 긴장 관계를 맺는 게 필요하다. 그래야 민심이 국정에 반영되고 결국 여권 전체에도 도움이 된다. 그럼에도 지리멸렬함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여당 모습에 국민의 실망이 크다.

부도덕하고 오만한 야당과 무능하고 무기력한 여당이 공존하면서 경쟁하는 게 우리 정치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앞으로 얼마나 달라질 수 있을까. 총선이 111일 남았다.

원재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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