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지도로 北 상황도 파악”… AI서 기후·식량 해법 찾는 美스타트업[글로벌 현장을 가다]

문병기 워싱턴 특파원 2023. 12. 20.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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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스티브 브럼비 ‘임팩트 옵서버토리’ 최고경영자(CEO)가 인공지능(AI)으로 제작된 지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들은 미국과 유럽 등의 인공위성 사진을 활용해 매주 세계 지도를 새로 만들어 미국 정부와 유엔에 제공해 기후변화로 인한 위험을 감시하고 재난 대응을 지원하고 있다.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
문병기 워싱턴 특파원
12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 인공지능(AI)으로 지도를 제작하는 스타트업 기업 ‘임팩트 옵서버토리’ 스티브 브럼비 최고경영자(CEO)는 회의실에 설치된 스크린 위에 북한 지도를 띄웠다. 지도 속 북한은 평양 등 일부 대도시와 개마고원 인근을 제외하고 대부분 옅은 노란색으로 표시됐다. 나무가 거의 없다는 뜻이다. 도시를 의미하는 붉은색, 경작지인 오렌지색 외에 대부분 산림 지역인 녹색으로 뒤덮인 한국과는 달랐다. 한눈에 휴전선 경계를 파악할 수 있을 정도였다.》

임팩트 옵서버토리는 AI를 이용해 매주 세계 지도를 새로 만들고 있다. 단순히 미국과 유럽 정부가 공개하는 인공위성 사진과 민간 상업용 위성사진을 이어 붙인 지도가 아니라 이를 AI가 분석해 도로와 호수, 강 등 지형의 변화는 물론이고 산림과 경작지, 황무지 등을 색깔로 구분한 세계 지도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브럼비 CEO는 “북한이 주민들을 위해 충분한 식량을 생산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북한의 최신 지도는 북한이 알리고 싶어 하지 않지만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한국과 일본, 중국 정부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어 “식량위기가 발생하면 인구 이동이 촉발되고 이로 인해 자원 분쟁과 전쟁이 일어난다”며 “매주 최신 지도를 제작하는 것은 국제적 긴장을 완화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생성형 AI의 출현으로 AI 혁신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커지는 가운데 일각에선 글로벌 도전과제들을 해결하는 ‘게임 체인저(game changer)’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인간으로선 상상하기 어려운 처리 속도로 막대한 양의 데이터를 분석하는 AI를 활용한 프로젝트를 통해 기후변화나 식량위기, 전 세계를 휩쓰는 전염병 등 세계 각국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난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딥페이크(deep fake) 등을 활용한 허위정보 확산으로 인한 정치적 혼란, AI 기술을 활용한 무인기(드론) 등 무기 개발로 인한 AI 군비 경쟁에 대한 우려 속에 주요 국가 간 AI를 통제하는 규칙을 선점하려는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규제를 둘러싼 논란도 커지고 있다.

“AI는 글로벌 난제 ‘게임체인저’”

임팩트 옵서버토리는 AI를 기반으로 기후변화 대응 서비스를 제공하는 미국 내 대표적인 스타트업이다. 우주 연구를 위해 미국으로 이주한 호주 과학자인 브럼비 CEO는 미국 정부를 위한 재난 지도 제작을 지휘하다 2020년 AI 기반 지도 제작 기업인 임팩트 옵서버토리를 세웠다. 회사 직원은 20명에 불과하지만 1만 대의 컴퓨터가 딥러닝 기술로 매일 수집되는 위성사진을 분석해 매주 세계 지도를 새롭게 만들고 있다.

임팩트 옵서버토리가 만들어내는 최신 지도를 통해 미국 정부는 폭우와 화재, 가뭄으로 인한 지형의 변화와 도시 인프라 확대가 미칠 환경 영향을 수시로 점검해 대형 재난을 예방할 수 있다.

폭우나 홍수, 허리케인 등 기상 이변으로 인한 대형 재난 사태가 발생하면 미국 연방재난관리청(FEMA)은 이 회사가 만든 최신 고해상도 지도로 도시 구석구석의 최신 정보를 파악해 구조대를 보낼 수 있다.

브럼비 CEO는 “미국 정부는 2년에 한 번씩 수백만 달러를 들여 지도를 업데이트한다”며 “하지만 매일 1000명 이상의 사람이 이주해 오는 플로리다주 같은 곳에서 재난 구조에 2년 전 지도를 사용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올여름 대형 허리케인 이달리아가 플로리다주를 강타했을 때도 최신 지도를 사용해 이재민들이 도움을 요청할 만한 곳을 찾아 구조대를 보낼 수 있었다”고 했다.

‘임팩트 옵서버토리’가 인공지능(AI)으로 제작해 유엔에 제공한 한반도 지도. 임팩트 옵서버토리는 AI를 활용해 매주 새로운 지도를 제작하면 북한의 산림 파괴나 홍수 등 자연재해, 식량위기 등을 감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유엔 홈페이지 캡처
임팩트 옵서버토리는 미국 국가지리정보국(NGA)은 물론이고 유엔과도 협력해 전 세계 지도를 유엔을 통해 제공하고 있다. 이를 통해 예산 부족으로 지도를 만들지 못하는 개발도상국에 최신 지도를 제공해 기후변화 대응을 지원하고 기후 감시 단체들이 주요 국가의 기후변화 국제협약 준수 여부를 점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AI 기술이 없었다면 막대한 비용이 들어갈 작업들이다.

이 회사는 작물 종류에 따른 실시간 농업 지도를 개발하는 등 AI 기술을 활용한 글로벌 식량위기 대응 서비스도 준비 중이다. 브럼비 CEO는 “AI는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것”이라며 “거리엔 휴대전화 카메라가 있고 공중에는 드론과 비행기, 위성이 있다. 이들이 포착한 모든 정보는 클라우드 컴퓨터에 저장된다”고 말했다. 이어 “향후 2, 3년 안에 이 모든 정보가 AI로 통합될 것이며 우리는 모든 도시의 생생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확보할 수 있게 될 것”이라며 “이를 글로벌 도전과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현명하게 사용할 수 있느냐는 정부의 몫”이라고 지적했다.

규제 선점 경쟁에 “혁신 발목 잡을라”

챗GPT 등 생성형 AI의 출현으로 AI의 잠재력에 대한 기대가 커지자 국제기구들도 앞다퉈 AI 프로젝트에 나서고 있다. 13일 폐막한 제2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8)에선 개발도상국의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AI 프로그램 개발을 목표로 하는 ‘AI 혁신 그랜드 챌린지’를 시작하기로 했다.

기후변화 대응뿐 아니라 식량위기, 국제보건, 교육 분야에서도 AI를 활용한 연구가 확산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전염병 확산을 예측하는 등 AI를 통한 질병 감시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실제로 미 하버드대와 영국 옥스퍼드대가 공동으로 개발한 AI 프로그램인 이브스케이프(EVEscape)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독감 등 바이러스가 어떤 변이를 일으킬지 예측할 수 있다. 포브스지는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이 AI 프로그램이 있었다면 상황이 크게 달라졌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AI를 통해 기후변화로 인한 농업 생산량 변화를 추적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며 유네스코는 AI를 활용한 교육 격차 해소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는 19일 ‘빌 앤드 멀린다 게이츠 재단’의 질병 및 빈곤 퇴치 활동과 관련해 “내년부터 AI 혁신의 거대한 물결이 시작될 것”이라며 “AI는 세상 모든 아이들이 동등하게 생존과 번영을 누리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AI 규제를 둘러싼 주도권 경쟁이 AI의 긍정적 발전을 막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로 유럽연합(EU)은 최근 AI 프로그램을 통한 생체인식 수집을 금지하고 건강이나 안전, 환경 등에 피해를 줄 수 있는 분야에는 AI 사용을 금지하는 AI 규제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를 두고 미국 기업들이 AI 개발을 주도하는 가운데 유럽이 먼저 강력한 규제를 마련해 유럽 시장이 미국 AI 기업들에 통합되는 것을 막으려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에서도 내년 대선을 앞두고 AI 규제를 둘러싼 찬반 논쟁이 한창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AI 프로그램 개발 시 사전 정부 보고 의무 등을 담은 AI 규제 행정명령을 내놓은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AI에 대한 과도한 규제에 반대하고 있다.

문병기 워싱턴 특파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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