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2023년 교육개혁 성과 진단
지금까지 많은 교육 변화에 대하여 ‘개혁’이라는 이름을 붙여왔다. 개혁은 ‘혁명’과는 다르게 위에서 아래로 향하는 완만하고 점진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또한 주로 테크놀로지적이고 미시적인 형태의 ‘개선’보다는 확연히 구조적이고 프레임적인 변화를 동반하는 것이다. 미래학자들은 앞으로 50년 후면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의 교육체제가 자리잡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럴 경우 앞으로의 교육개혁은 현재의 학업성취도, 입시제도, 교육과정, 교사와 수업 등 지금까지의 관성적 개념에 의존할 수 없다. 미시적 조정만으로는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전혀 다른 프레임의 밑그림이 필요하다.
올해 1월 연두 업무 보고에서 이주호 장관은 2023년을 ‘윤석열 정부 교육개혁의 원년’으로 선언하였고, 4대 개혁 분야와 10대 핵심 정책을 발표했다. 이를 위해 교육부는 바쁘게 움직였고, 눈에 띄는 변화들을 만들어 냈지만 결과는 호불호가 갈린다. 유보 통합이나 늘봄학교, 학교시설 복합화 등 목적과 성과가 비교적 명료한 정책들을 강단 있게 밀어붙인 부분에 대해선 지지를 받고 있지만 고교학점제와 내신 상대평가처럼 서로의 발목을 잡으면서 원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든 부분에 대해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있다. 교육전문대학원처럼 여론에 밀려 용두사미로 끝난 것도 있었다.
특히 고등교육 개혁의 경우는 여러 요소들이 뒤섞여 있어 이것을 ‘개혁’이라 말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견이 엇갈린다. 예컨대 대학의 정원·학사·재정 등에서의 설립조건들을 완화할 경우 대학체제의 유연성은 높아지지만 부실화 위험성도 함께 커진다. 또한, 인구소멸 위기의 대학 부실화 현상에 대비하기 위해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란 이름으로 대학 생존의 열쇠를 광역지자체로 이관하는 반면, 실제로 해당 대학들을 선정하는 권한은 교육부가 여전히 쥐고 있다. 이 정책과 맞물리는 교육자유특구를 홍보하고 있지만, 대학과 산업, 일자리가 어떻게 연계될 수 있을지에 대한 판단은 교육부 차원을 넘는 일이며, 이를 지자체에만 맡겨둘 수도 없는 일이다.
종합하면, 지난 1년 동안의 교육부 성과는 결코 과소 평가될 수 없지만, 구체적 내용을 들여다보면 마치 흩뿌려져 있는 작은 현안들의 모자이크 같다. 20년 혹은 30년 앞을 내다보고 새로운 지형을 개척하려는 장기적 안목이 보이지 않는다. 물론 이것은 5년 단임정권의 교육부가 가진 숙명적 한계일 수 있다.
교육개혁 의제들 가운데는 사회적 합의가 명시적으로 이루어져서 그 시행만을 기다리는 과제들이 있는 반면, 형식과 구조에 있어서 아직 수면 아래 숨어 있어서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공론화할 필요가 있는 과제들도 있다. 미래의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잠재적 의제들 중 상당 부분은 후자에 속한다. 전자를 추진하는 일이 교육부의 몫이라면 후자를 발굴하고 공론화하는 것은 국가교육위원회의 몫이다.
그런데 최근 국가교육위원회는 교육부가 수행해도 될 만한 일들에만 주로 매어 있는 모양새이다. 그 안에 장기 전망과 구조적 개혁의 담론이 보이지 않는다. 또한, 정파적인 인원 구성도 문제이다. 정파성은 현재의 유불리를 위해 미래적 가치를 희생하는 과오를 반복한다. 게다가 위원 및 전문위원 가운데 고령자들이 많은 것도 이들의 미래 전망 예측력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된다. 현재의 시각으로 미래를 바라보는 일처럼 답이 없는 일도 없다.
교육혁신은 단지 교육체제 내부의 성가신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에만 주의를 기울여서는 안 된다. 장기적 차원에서의 교육혁신은 대한민국 소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극 기여해야 한다. 지속가능발전, 수도권 집중현상, 재수생과 사교육, 초고령화, 미래성장산업 발굴, 인구소멸과 이민정책 등에 기여하는 교육정책들이 발굴될 필요가 있다. ‘윤석열 정부 교육개혁의 원년’을 표방한 2023년 교육 정책들은 이런 장기 전망을 포함하기에 부족하다.
특히, 교사정책은 현재 벼랑 끝에 서 있다. 교권침해와 학교폭력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고, AI기반의 수업에 대해 교사들은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 교사지망자 수가 급감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교육대학과 사범대학은 미래교사 양성을 위한 최적의 조건이 아니다. 이에 대한 교육부의 대응은 매우 느리고 수동적이다.
총선이 몇달 앞으로 다가왔다. 대선에 비해 총선에서 교육정책에 대한 표심 민감도는 그리 높지 않지만, 여전히 교육문제는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가장 민감한 정책분야라는 점에서 지난 2년간 윤 정부의 교육정책 성과는 내년 3월 총선의 민심을 가를 수 있는 충분히 예민한 척도가 될 수 있다.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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