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리하라의 사이언스 인사이드] 아빠만 둘인 쥐의 탄생

기자 2023. 12. 20.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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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체들은 저마다 다양한 방법으로 번식하지만, 크게 암수의 구분 없이 모든 개체가 재생산이 가능한 무성생식과 암수가 각각 만들어낸 각각 다른 생식세포를 결합시켜 번식하는 유성생식으로 나뉜다.

이 중 유성생식으로 번식하기 위해선 두 종류의 생식세포, 즉 난자와 정자가 필요하다. 난자와 정자는 감수분열을 통해 해당 종의 생물체가 가진 염색체의 절반만을 가지도록 만들어진 반수체 세포로, 둘이 결합되어야만 비로소 한 벌의 온전한 염색체가 갖춰지며 새로운 개체로 발생하는 세포다. 이때 두 생식세포 중 더 크고 자원을 더 많이 갖고 있어 이후 만들어질 수정란의 터전이 되는 쪽이 난자, 좀 더 작고 운동성이 있어 난자 속으로 들어가 유전물질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쪽이 정자이며, 난자를 만드는 쪽이 암컷, 정자를 만드는 쪽이 수컷이 된다.

그런데 이렇게 암수로 성이 나뉜 존재라고 할지라도 반드시 짝을 지어야만 후손을 번식시킬 수 있는 건 아니다. 이들 중에는 짝짓기 없이 한쪽 성만으로도 얼마든지 재생산이 가능한 종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단성생식이라 한다.

단성생식은 말 그대로 재생산에 참여하는 성별이 하나뿐이지만, 가능한 쪽은 예외 없이 암컷이었다. 정확히는 암컷이 만들어내는 난자가 있어야 단성생식이 가능하다. 자연에서 단성생식을 하는 것으로 알려진 존재들, 개미와 꿀벌을 비롯해 진딧물과 채찍꼬리도마뱀, 마블가재 등을 막론하고 언제나 재생산의 주체는 암컷과 난자였다. 단성생식이 흔히 ‘처녀생식’이라 불리는 건 이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이 오래된 통념을 반박하는 소식이 등장했다. 저명한 학술잡지 네이처가 매년 12월 선정하는 ‘Nature’s 10’, 즉 ‘올해의 과학자 10인’에 이름을 올린 일본의 생물학자 하야시 가쓰히코의 연구가 그것이다. 하야시 박사는 수컷 생쥐의 세포를 역분화시켜 난자를 만들어냈을 뿐 아니라, 이 수컷 유래 난자를 통해서도 새끼를 출산시키는 것이 가능함을 보여주어 생식 분야의 통념을 완전히 뒤바꿨다.

사실 역분화 기술을 통해 체세포에서 난자를 만들어낼 수 있고, 이를 이용해 재생산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이미 2016년에 하야시 박사 본인이 증명한 바 있었기에 새삼스러운 기술은 아니었다. 하지만 당시 사용한 것은 암컷 쥐의 세포에서 유래된 난자였다. 난자를 만드는 난모세포는 암컷의 줄기세포로부터만 분화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역분화 줄기세포를 만드는 과정을 반복적으로 연구하던 하야시 박사는, 수컷 쥐의 세포를 이용해 역분화 줄기세포를 만드는 경우 전체의 3% 정도에서 자연적으로 Y 염색체가 탈락되는 현상이 일어남을 알게 된다. 이 우연한 관찰은 하야시 박사의 생각을 기발한 곳으로 확장시킨다. 쥐는 총 20쌍의 염색체를 가진다. 이 중 19쌍은 성별과 무관한 상염색체이나, 1쌍은 성별에 따라 차이가 나는 성염색체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XX면 암컷, XY면 수컷이 된다. 그런데 우연히도 Y 염색체가 사라져 1쌍이 아닌 1개의 X 염색체만 가지게 된 줄기세포가 생긴 것이다. 이 돌연변이 줄기세포에 다른 19쌍의 염색체는 그대로 두고 X 염색체 하나만 더 복제해 20쌍을 다시 맞춰준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다면 XY 염색체를 지닌 수컷의 세포로부터 XX 염색체를 지닌 암컷의 줄기세포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럼 8년 전의 방법을 다시 써서 이 세포로부터도 난자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일견 황당해 보이는 하야시 박사의 생각은 놀랍게도 실험으로 증명되기에 이른다. 지난 3월 그가 수컷 생쥐의 꼬리 세포에서 역분화시킨 줄기세포로 난자를 만들었고, 또 다른 수컷 쥐의 정자를 결합해 7마리의 새끼 쥐를 얻는 데 성공했음을 발표한 것이다. 이들은 현재까지 지구상에서 태어난 모든 유성생식 동물 중, 아빠 둘로부터 유래된 세포로만 태어난 유일한 존재이다. 물론 이 쥐들은 대리모 암컷 쥐의 자궁을 빌려 태어났으므로 여전히 재생산에 암컷은 필요하지만, 유전적 조성은 두 아빠로만 유래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존의 생물학적 통념을 깨뜨리는 놀라운 진전이다.

지난 시간 동안 인류의 발걸음은 항상 깨어질 것 같지 않은 통념들을 깨뜨리는 방향으로 이어져왔고, 최근 들어서는 그 속도가 더욱 빨라지고 있다. 이제 인류가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하는 건 스스로가 깨뜨린 통념의 조각들에 다치지 않도록 안전하게 나아가는 방법일 것이다.

이은희 과학저술가

이은희 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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