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장벽, 부자는 부자끼리 산다…‘주거지 분리’ 심각 수준
비싼 집값 탓에 경제적 여유가 없는 사람은 부촌 근처에 살기도 힘든 것으로 보이지 않는 장벽이 존재하는 샘이다.
국토연구원은 전날인 19일 ‘주택 가격에 의한 주거지 분리와 정책적 시사점’ 보고서에서 서울, 부산, 대구, 인천, 대전의 주택공시가격 데이터를 활용해 주거지 분리 정도를 측정한 결과를 발표했다.
주택가격에 따른 주거지 분리 수준을 볼 수 있는 공간 지니계수를 측정한 결과 5개 도시 중 서울이 0.38로 가장 높았다.
이어 인천(0.34), 대전(0.33), 부산(0.32), 대구(0.30)가 뒤를 이었다. 소득 불평등 분야에서는 통상적으로 지니계수가 0.4 이상이면 심한 불평등, 0.3 이상∼0.4 미만이면 불평등이 존재한다고 본다.
연구진은 “2016∼2021년 사이 5개 대도시에서 모두 공간 지니계수가 증가했으며 서울은 심각한 주거지 분리 수준에 이르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주택 가격에 따른 주거지 분리가 발생하면 주택구매 능력에 따라 누릴 수 있는 주거지 환경 수준이 달라지는 문제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한편 주거 유형에 따라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요즘 학생들 사이에서 빌라에 거주하면 ‘빌거지’라고 놀림 받는 일이 그렇다.
빌거지라는 말은 빌라에 사는 사람들이 아파트에 살 돈이 없어서 빌라에 산다는 식으로 비하하는 말이다.
실제 일부 초등학생들은 빌라나 아파트 등 주거 형태로 또래 아이들을 구분 짓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강남의 한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사(28)는 “아이들이 빌라에 사는 친구를 ‘빌거지’라고 부르는 모습을 봤다”며 “처음에는 너무 당황해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고 털어놨다.
또 상대적으로 저렴한 브랜드의 아파트나, 임대아파트에 사는 이들을 비하하는 엘사와 휴거지라는 말도 있다.
휴거지 혹은 휴거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아파트 브랜드인 휴먼시아와 거지를 합친 말이고, 엘사는 LH 사는 사람, 즉 임대아파트에 사는 사람을 비하하는 말이다.
그런가 하면 가정형편상 반지하 방에 살 수 밖에 없는 한 20대의 사연이 전해져 공감대가 형성되기도 했다.
앞선 1일 한 인터넷 커뮤니에는 집안 사정상 고시원을 떠돌다 반지하 주택에 산다는 여대생 푸념이 전해졌다.
A씨는 집안 사정상 스무 살이 되자마자 독립해 자취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그는 처음 고시원에서 살다가 돈을 모아 얼마 전 작은 반지하 방으로 이사를 하게 됐다.
A씨에겐 반지하 방도 나름 노력한 결과였다. 하지만 반지하 방은 그에게 또다른 절망감을 안겼다.
A씨는 “자취하고 있는데 집안 사정이 여러모로 안 좋아 정말 살아남으려고 나왔다”며 “겨우 모은 돈으로 반지하 방을 얻었다. 그런데 반지하 특성상 곰팡이가 피고 너무 습한 게 문제”라고 털어놨다.
곰팡이와 습한 환경은 ‘반지하 냄새’를 만들었다. 창문조차 없는 고시원에서 간신히 탈출했지만 환경은 A씨의 발목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던 것이다.
A씨는 “싼 방을 찾아 들어오다 보니 방이 산 앞이고 습하다”며 “집안 여기저기 곰팡이가 너무 많이 피어서 락스로 계속 닦아내도 가구가 다 썩고 집안에 냄새가 많이 난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아르바이트로 근무 중인 가게 점장이 A씨에게 “냄새가 너무 심하다”며 “홀서빙하지 말고 주방에서 설거지하는 게 낫겠다. 손님이 불쾌해 하신다”고 지적했다.
A씨는 이 말에 큰 상처를 입었다고 한다.
냄새를 없애기 위해 많이 노력했지만 주변 사람으로부터 지적당했기 때문이다.
A씨는 “냄새 없애려고 이 추운 날도 계속 환기하는데 소용이 없다. 곰팡이 냄새 도대체 어떻게 하나”라며 “또래 여자애들은 향기도 좋고 예쁜데 나는 그렇지 못하다. 부끄럽고 위축되고 자존감 떨어진다. 가난한 건 별 게 다 불편하다”고 한탄했다.
이동준 기자 blondi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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