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파, 오락실에서부터 시작된 RPG 신화
어렸을 적 오락실에 가본 경험이 다들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옆자리에 앉은 친구가 어머니에게 등짝을 맞으면서도 헤실헤실 웃으며 게임기를 놓지 않았던 과거가 생각난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기자에게 '게임'이란 인생을 함께 해온 소중한 동반자다.
RPG를 즐긴 게이머라면 넥슨 '던전앤파이터'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18년 전부터 지금까지 우리에게 다양한 이야기를 선보인 RPG다. 특유의 오락실 감성이 느껴지는 벨트스크롤 방식으로 진행하는 던전앤파이터는 과거, 그리고 현재에 이르러서도 많은 유저가 즐기고 있다.
던전앤파이터 신규 유튜브 채널 '던파 유니버스'에서 그간의 여정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게임 체인저스(Game Changers)'를 공개했다. 지금도 던전앤파이터를 만들고 있는 개발진들이 어떠한 일을 겪었는지, 무엇을 목표로 달려가고 있는지 그에 대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 STAGE 1 "순탄치 않았던 첫 시작점"
- 던전앤파이터 다큐멘터리 게임 체인저스 1부
영상이 시작되며 오락실 기기로 향하는 윤명진 네오플 대표이사가 보인다. 이윽고 오락실 의자에 걸터 앉자 과거로 돌아간 듯 어린 아이가 게임에 열중하는 장면이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던전앤파이터는 오락실 감성에 상당한 영향을 받은 게임이다.
던전앤파이터가 세상에 드러난 2005년은 게임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그렇게 좋지 않았다. 당시에는 "게임은 폭력성을 유발한다"라는 이야기는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이던 주제 중 하나였다.
던전앤파이터 최초 디렉터, 현 에이스톰 대표이사인 김윤종은 "게임 제작 관련 일을 한다"라고 이야기를 하면 주변에서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담담히 말한다. 그 당시 게임에 대한 인식은 '중독'이라는 단어 앞에 마약과 도박과 다를 바 없는 위험천만한 요소였다.
'스타크래프트'를 시작으로 국민이 게임에 가지는 인식이 바뀌어갈 때쯤 던전앤파이터는 많은 기대감 속에 첫 테스트를 개시했다. 기대와는 달리 첫 테스트에 대한 평가는 상당히 박했다. 3D 게임이 유행하던 시기에 벨트스크롤 2D 도트 게임은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러나 던전앤파이터는 예상을 뒤엎고 '던파 신드롬'을 일으킬 정도로 흥행에 성공한다. 출시 1시간 만에 동시접속자 수가 1만명을 돌파하고, 2006년 12월에는 무려 10만명을 달성하는 쾌거를 이룬다. 1부 제목인 '모험의 시작'은 포기하지 않고 개발을 이어나간 결과 많은 모험가들과 함께할 수 있게 되었음을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국내에서 거둔 성공을 계기로 2년 뒤 중국에서도 서비스를 진행하는 등 던파의 앞날은 밝기만 할 줄 알았다. 그러나 '키리의 약속과 믿음'이라는 사건을 계기로 해당 믿음이 흔들리게 되고 만다.
■ STAGE 2 "함께 게임을 만들어나가는 개발진과 유저"
- 던전앤파이터 다큐멘터리 게임 체인저스 2부
던전앤파이터에 대한 위기를 말할 때 빠지지 않는 사건이 있다. 일명 '키리의 약속과 믿음'이라 불리는 해당 사건은 강화 시 아이템이 파괴되지 않는 캐시 아이템이 원인이다. 해당 아이템을 계기로 급격한 스펙 인플레이션이 발생했고 개발진들이 유저에게 신뢰를 잃어버리는 계기가 되었다. 개발진과 유저 모두 힘들었던 시기였다.
이러한 분위기를 반전시켜준 주인공은 던파 페스티벌에서 공개한 '여귀검사'였다. 성승헌 캐스터는 '여귀검사 발표 현장은 말 그대로 축제였다'라며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개발진들 모두가 그만큼 이를 악물고 만든 캐릭터였고, 당시 유저들 반응 또한 함성과 박수 소리가 현장을 메웠다.
이후 2016 던파 페스티벌에서 등장한 '여프리스트'도 마찬가지였다. 신규 캐릭터에 대한 유저들 반응은 좋았지만 던전앤파이터는 또 다른 고민거리가 있었다. 바로 '콘텐츠 부족'에 대한 해답이 필요했다. RPG를 즐기는 유저들에게 엔드 콘텐츠 유무는 상당히 민감한 문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던전앤파이터는 세계관 내에 존재하는 '사도'를 처치하는 레이드를 출시했다. 당시 처음으로 등장한 '안톤' 레이드는 20인 파티로 진행하는 협력 레이드였다. 당시 많은 이들이 안톤을 클리어하기 위해 가한 노력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그러나 게임이 지속적인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유저들과의 소통이 매우 중요하다. 당시 던전앤파이터는 '소통'이라는 글자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었다. 이원만 디렉터는 본인이 총괄 디렉터를 맡기 전 일화를 떠올렸다. '개발자 원이'라는 닉네임을 달고 유저와 소통을 한 사례다.
당시에는 퇴사를 각오하고 벌인 독단적인 일이었다. 당시에는 개발자가 '개발자노트'처럼 유저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려는 시도를 찾아볼 수 없었다. 이원만 디렉터는 직접 커뮤니티에 글을 작성하고 유저들과 소통에 나섰다. 과거와 지금을 아울러, 양방향 소통을 진행하며 유저들과 함께 게임을 만들어 나가는 것, 2부 제목인 '함께 만드는 세계'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있었다.
■ STAGE 3 "던전앤파이터로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가치들"
- 던전앤파이터 다큐멘터리 게임 체인저스 3부
던전앤파이터 역사 내에서 가장 큰 시도를 꼽으라면 '던파 모바일'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2015년부터 시작된 던파 모바일 프로젝트는 원래는 2016년에 완성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상과 현실은 달랐다. 순탄할 줄만 알았던 개발 과정은 모바일로 만드는 과정 속에서 다양한 문제점이 생겼다.
윤명진 대표이사는 당시를 회상하며 '던전앤파이터 모바일을 이렇게 만드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더 큰 게임으로 만들고 싶다'라며 욕심이 났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당시 준비하던 던파 모바일은 지금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고 한다.
이후 던전앤파이터가 가져가야 할 중요한 가치는 '액션쾌감'이라고 전했다. 그걸 모바일에서도 구현하려 하니 한계가 많다는 것을 실감했다. PC 환경에서는 고려하지 않아도 될 문제는 모바일에서 치명적인 문제점이 되고는 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가치를 지키려고 한 결과, 출시 초기 동시접속자 수 100만을 달성하는 쾌거를 맛볼 수 있게 되었다.
던전앤파이터라는 이야기는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내포하고 있다. 네오플은 현재 해당 IP를 활용해 차기 후속작을 준비하고 있다. '프로젝트 오버킬'과 '퍼스트 버서커: 카잔'이 그 주인공이다.
오버킬은 던전앤파이터 시작에서 14년 전으로 돌아가게 된다. '절망의 탑'에서 '아젤리아'가 죽는 사건이 있었는데, 이를 바로잡아야 되겠다고 생각한 모험가들이 해당 시점으로 넘어와 미래를 바꾸려고 시도하는 것을 배경으로 한다. 개발 비화에서는 14년 전 젊은 모습이었던 유저들에게 친숙한 '데릴라'도 확인할 수 있었다.
콘솔 시장에서도 던전앤파이터가 하는 도전은 계속된다. 카잔 프로젝트에서는 원작에서는 죽었던 캐릭터인 '카잔'을 주인공으로 진행하는 이야기를 체험할 수 있다. 던파 IP를 모르는 사람이 보더라도 '처절한 복수극을 기대할 수 있겠다'라는 어필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이다.
3부 제목인 '끝없는 모험'은 현재의 던전앤파이터에 만족하지 않고 다양한 IP와 콘텐츠들에 도전하는 개발진들의 여정을 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던전앤파이터를 진심으로 즐겼던 유저로써 앞으로 이들이 어떠한 행보를 보여나갈지 기대감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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