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만 못한 미 입김…중동, ‘후티 대응’ 미적
주변국 대부분은 ‘이스라엘 지지’ 미국과의 군사 밀착 꺼려
미국이 예멘 후티 반군의 홍해 봉쇄에 대한 대응으로 다국적 해군을 불러 모아 ‘번영 수호자 작전’을 시작했지만, 정작 홍해를 끼고 있는 중동 주요국들은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약해진 미국의 중동 영향력이 고스란히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 국방부에 따르면 로이드 오스틴 장관은 19일(현지시간) 바레인과 카타르를 잇달아 방문해 공동 대응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바레인 마나마에서 하마드 빈 이사 알할리파 국왕을 만나 “후티 반군의 홍해 봉쇄가 전 세계 경제에 위험을 초래하고 있다”면서 “항해의 자유 가치를 공유하는 모든 국가와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카타르 도하에서는 무함마드 빈 압둘라흐만 알사니 총리를 만나 후티 반군 문제를 논의했다.
오스틴 장관은 또 한국 등 43개국과 장관급 화상회의를 열고 “무모한 후티 반군 공격은 심각한 국제 문제로 공동의 대응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은 전날 영국·바레인·캐나다·프랑스·이탈리아·네덜란드·노르웨이·세이셸·스페인 등 9개국이 참가한 ‘번영 수호자 작전’에 더 많은 참여와 지원을 끌어내기 위한 행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이번 작전이 오히려 예전만 못한 미국의 중동 장악력을 반증하고 있다는 부정적인 평가가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오스틴 장관이 후티 반군 위협에 맞서 다국적 해군 조직을 창설한다고 발표했을 때 중동 지역 참가국은 작은 섬나라 바레인이 전부였다”고 지적했다. 이어 “많은 아랍 국가는 북쪽 수에즈 운하와 남쪽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관통하는 홍해 무역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의 이스라엘 전쟁을 지지한다는 미국의 반복되는 메시지는 아랍인들을 분노하게 했고, 이에 중동 국가 대부분은 미국과 군사적으로 엮이길 꺼리게 됐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NYT에 따르면 수에즈 운하를 보유한 이집트가 미국이 주도하는 이번 작전에 내놓은 공식 반응은 지난 18일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있다”는 성명이 전부다. 지난해 홍해 통행료와 수수료 명목으로 국내총생산(GDP)의 2%에 해당하는 94억달러(약 12조2400억원) 수입을 올린 이집트는 후티 반군 홍해 봉쇄로 큰 타격을 입었지만 ‘번영 수호자 작전’에 대해서만큼은 입을 다무는 모양새다. 후티 반군과 오랜 기간 충돌해온 사우디아라비아도 메시지를 극도로 아끼고 있다. NYT는 “홍해에 접한 사우디 제다항은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가 추진하는 경제 다각화 노력의 주요 거점이지만 사우디는 후티 반군과 새로운 대결에 돌입하지 않고 평화 협정을 체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과 오커스(AUKUS) 안보 동맹을 맺은 호주조차 인도·태평양 안보가 우선이라며 홍해로 군함을 지원해달라는 미국의 요청을 사실상 거절했다고 호주 AAP통신이 20일 보도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제 해운사들도 미국 주도 작전의 효용성을 신뢰하지 않는 분위기다. 미국이 ‘번영 수호자 작전’을 발표한 지 불과 몇시간 후 덴마크 해운사 머스크와 독일 컨테이너 해운사 하파크로이트 등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희망봉으로 우회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저속으로 해로를 운항하는 선박을 군함이 호위하는 방식의 이번 작전은 해적이 상선에 탑승하는 것을 막을 수는 있어도 후티 반군처럼 미사일과 드론으로 공격하는 것을 막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알자지라는 “현시점에선 미국과 다국적 해군이 홍해를 통과하는 화물을 보호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모두가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절하했다.
손우성 기자 applepi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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