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날씨 [손바닥문학상]

한겨레21 2023. 12. 20.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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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문학상]제15회 손바닥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정각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서연은 고개를 들어 홀로그램을 확인했다. 새파란 하늘은 VR 이미지였다. 천장 한가운데 떠 있는 각종 숫자가 시시각각 바뀌었다. 기록표에 온도와 습도, 공기질 수치를 옮겨 적은 서연은 미간을 구겼다. 어제 이 시각 온도보다 11도나 높았다. 이런 비교가 무의미하다는 걸 알면서도 서연은 매번 앞 장의 표를 짚어 보고 있었다. 투명창 밖으로 아이들 모습이 보였다. 제3구역 놀이공간에 등록된 아이는 총 여섯 명이었다. 다른 구역에 비해 많은 편이었다. 서연은 제3구역 놀이공간의 관리자였다. 관리 업무에는 아이들의 안전 문제도 포함됐지만, 주된 영역은 시설 쪽이었다. 서연은 매시간 공기질 상태를 점검하고 자동시스템이 공간의 온도, 습도에 맞춰 잘 돌아가는지, 두 시간에 한 번 제대로 소독되는지 확인하고 기록하는 일을 했다.

바깥에는 한 아이가 바닥에 드러눕다시피 한 채로 떼쓰고 있었다. 서연은 초조한 표정으로 관리실에서 바깥 상황을 지켜봤다. 두 시간에서 10분 이상 초과하면 2천 자 이상의 소명서를 제출해야 했다. 고개를 들어 시계를 확인한 김 선생이 아이를 일으켜 세우기를 포기하고 번쩍 안아 들고 대기실로 향했다. 김 선생과 눈짓을 주고받은 서연은 그제야 소독 버튼을 눌렀다. 곧이어 소독 시스템이 가동된다는 안내음과 함께 창밖이 뿌예졌다. 끝없이 펼쳐진 푸른 잔디밭이 삽시간에 소독 가스로 가득 찼다. 이 공간이 지하 2층에 있음을 다시 한번 자각하며 서연은 눈을 감았다. 임신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었다. 서연은 때때로 두 시간에 한 번씩 느껴야 하는 이 이질감이 입덧보다 더 곤혹스럽다고 생각했다. 알림음에 CCTV를 확인하니 다음 근무자가 출근 지문을 찍고 있었다. 교대 시간이었다. 서연은 사무실 뒤쪽에 비치된 사물함에서 경량 패딩과 부츠를 꺼냈다. 바깥은 38.7도였다. 그제까지는 한낮에도 5도 안팎을 유지했는데 오늘부터는 폭염이었다.

“저, 왔어요.”

다음 근무자가 관리실에 들어서며 말했다. 민소매와 반바지 차림에 한쪽 손에 두툼한 양모 집업과 신발주머니가 들려 있었다. 변덕스러운 날씨에 대비하는 방식은 모두 비슷했다. 서연은 간단한 인수인계 후 관리실에서 나왔다. 워치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11월7일 진료봇 14주차 정기방문일입니다.’ 서연은 아랫배를 내려다봤다. 자신이 임신부임을 잊지 말자고 매 순간 생각하면서도 정작 아기의 존재를 느껴본 적이 없었다. 어느새 뿌연 소독 가스가 걷히고 놀이공간에는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왁자한 웃음소리에 서연은 가슴이 울렁거렸다.

*

바깥은 더웠다. 현관문 앞에 배달된 산모용 식단팩을 집어 들기 위해 허리를 숙이자 서연의 이마에 맺혀 있던 땀방울이 턱선을 따라 굴러떨어졌다. 집에 들어서자 그제야 숨통이 트였다. 적정 온도가 유지된 실내는 쾌적했다. 서연의 움직임이 감지되자 거실에 조명과 텔레비전이 켜졌다. 곧이어 공기청정기가 거센 바람을 내뿜었다. 미세먼지 농도에 빨간불이 켜져 있었다. 임산부 가정용 공기청정기는 일반 가정용보다 필터가 민감하다고 했다. 서연은 식단팩을 잠시 내려놓고 베란다로 가 겉옷을 드레서에 넣었다. 공기청정기에서 나오는 바람을 맞으며 서연은 크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마스크의 필터는 영 신뢰가 가지 않았다. 이 커다란 기계로 겨우 걸러낼 수 있는 미세먼지를 마스크에 달린 동전만 한 모터 필터가 걸러낼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물론, 이건 자신 혼자 도달한 결론이긴 했지만.

잠시 숨을 고른 서연은 부엌으로 향했다. 식단팩을 열어보니 노란 일회용 용기에 담긴 아침용 죽 두 팩과 저녁 요리 재료가 들어 있었다. 서연은 레시피 종이를 집어 들었다. 오늘 저녁은 소고기전골이고 내일은 순두부찌개였다. 빨간 육수팩을 보며 서연은 무책임한 것들, 하고 작게 읊조렸다. 얼마 전 김 선생님으로부터 은밀하게 전달받은 2015년 출간 책인 <아기사전2>의 텍스트파일에 임신 초기에는 매운 음식이 별로 좋지 않다고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임부팩이라고 해봤자 겉에 인쇄된 일러스트만 바뀌었을 뿐 내용물은 일반 배식팩과 다를 바 없었다. 임산부를 위한 갖은 복지 혜택은 대부분 허울뿐이었다. 아기를 지키는 일은 오롯이 엄마 몫이라고 생각하며 서연은 얼굴을 구긴 채 육수팩을 냉장고에 넣었다. 부쩍 감정이 오락가락했다. 사소한 일에도 짜증이 나고 화가 났다.

재료 정리를 마친 서연은 양배추주스 한 병을 가지고 소파에 앉았다. 배가 고팠지만 냉장고에 가득 쌓인 배급 영양셰이크는 쳐다도 보지 않았다. 텔레비전 화면에는 “‘50년 전 겨울’과 관련한 콘텐츠를 더 보시겠습니까?”라는 문구가 떠 있었다. 서연은 ‘예’ 버튼을 눌렀다. 옛날에는 ‘일기예보’라고 해서 한 주의 날씨, 길게는 한 달 날씨도 예측됐단다. 한 시간, 아니 30분 후 날씨도 예측할 수 없게 된 지금과는 달리 그때는 네 계절이 있었는데 봄에서 겨울까지, 점점 더워졌다가 점점 추워지는 일련의 기온 변화 과정이 있었다고. 이제 화면에는 일자리를 잃은 방송국의 일기예보 부서원들과 인권단체의 시위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이전에도 몇 번 봤던 자료화면인지 인터뷰하는 사람의 얼굴이 눈에 익었다. 서연은 어렴풋이 교과서에서 봤던 사진들을 떠올렸다. 미소를 지으며 카메라를 향해 선 열댓 명의 정치인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50여 년 전, 전세계 사람은 머지않아 종말이 올 거라 생각했다. 화산 폭발, 지진, 해일, 허리케인 같은 자연재해가 세계 곳곳에서 연이어 발생했고 이 영향으로 대륙별 기후가 급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소위 종말론자들의 기대처럼 세계 멸망이 순순히 찾아오지는 않았다. 지지부진하게 몇 년이 지나자 사람들은 더 이상 자연재해 뉴스에 일희일비하지 않게 됐고 뒤바뀐 계절에 익숙해졌고 시시각각 바뀌는 날씨에 적응해갔다. 그때쯤 선진국을 필두로 일기예보 프로그램 폐지 절차가 강행됐다. 일기예보가 본래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며 사회 혼란을 야기할 뿐이라는 것이었다.

서연은 가끔 궁금했다. 그때 그러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서연은 화면 속 주황 원피스의 ‘기상캐스터’라는 직업의 여자를 보며 생각했다. ‘인류가 예측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그래도 별수 없었으리라. 한 시간 후, 두 시간 후의 날씨를 미리 안다고 한들 인간이 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예보가 맞네, 틀리네 하는 빙고게임뿐이었을 테니까. 쳇바퀴 돌듯 돌아오는 결론이었다. 그리고 일기예보 폐지 이후 세계 정상들은 전무후무한 조약을 체결했다. 바로 인디퍼런스 조약(Treaty of Indifference·무관심 조약)이었다.

사실 이런 것들은 지난 30여 년 동안 서연에게 관심 밖의 일이었다. 서연은 인디퍼런스 조약 세대로서 공교육 아래 착실하게 무관심한 성인으로 자랐다. 날씨며 기온의 변화, 자연재해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 땅 어디에서 지진이 나든, 화산이 폭발하든, 해일이 발생하든 서연이 사는 곳은 무사했다. 인구는 줄었고 자원은 남아돌았다. 환경과 관련한 모든 제약이 사라지자 아이러니하게도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했다. 각 나라는 영토의 가장 안전한 위치에 가장 안전한 건축물을 지었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곳으로 이주했다. 극도로 자동화된 풍족한 요새 안에서 사람들은 생존과 종말의 문제에 더 이상 연연하지 않게 됐다. 서연의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나까지는 살겠구나’ 싶었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이곳이 천국이더라고…. 한때 서연도 그 천국에 살았다.

안락했던 서연의 생활에 변화가 찾아온 것은 김 선생님의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이거 먹으면 아기한테 안 좋을 텐데. 환경호르몬 나오잖아요.’ 점심시간, 전자레인지에 배급도시락을 데우는 서연에게 김 선생이 말했다. 그날 이후 서연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환경호르몬’이라는 검색어로부터 시작된 무수한 추천 영상은 서연이 이제껏 얼마나 무지한 사람이었는지 깨닫게 했다. 그즈음이었다. 서연이 영양셰이크에서 묘한 약품 냄새를 느끼기 시작한 것이.

‘축하합니다! 서연님, 임신 3주 차입니다’라는 문구가 진료봇의 머리 디스플레이를 천천히 지나가는 동안 서연은 민준이 자신을 살피는 줄 모르고 경악스러움을 얼굴 가득 드러내고 있었다. 놀이공간에서 일하는 서연이 한 번도 임신을 고려해본 적 없다면 거짓말일 테지만, 피임기구가 생산 가치를 잃을 만큼 불임이 만연한 세상이었으니 당황스러울 만도 했다. 민준은 본래 아이를 원했던 것인 양 기뻐했지만, 서연은 두려웠다. 놀이공간에서 지켜본 아이들은 툭하면 아팠고 잠시 한눈팔면 넘어져 다치곤 했다. 잘 놀다가도 갑자기 열이 나고 기침을 해댔다.

서연은 김 선생님 대신 아이를 구급대원에게 인계해주었던 날이 떠올랐다. 담요에 싸인 아이를 품에 안아 들었을 때 서연은 낯선 감정을 느꼈다. 뜨겁고 눅눅한 작은 생명이 몰아쉬는 숨이 서연의 마음을 가쁘게 했다. 서연은 지상 37층에서 내려오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수 없었다. 비상계단을 뛰어 올라가며 느꼈던 감정이 지금도 생생했다. 결론적으로 민준의 설득에 서연은 임신을 유지하기로 했으나, 단 한 알의 약으로 임신중단이 가능한 15주까지 사실상 보류한 셈이라는 걸 민준도 모르지 않았다. 서연은 가만히 배에 손을 올렸다. 자신이 임신부임을 잊지 말자고 매 순간 생각하면서도 정작 아기의 존재를 느껴본 적이 없었다. 4.7센티 정도라고 했나 하며 서연은 지난번 진료봇 방문일에 받았던 결과지 내용을 더듬었다. 그때 워치에서 진동이 울리며 텔레비전 화면이 전환됐다. 김 선생님의 전화였다.

“네, 선생님!”

“어, 서연쌤, 난데. 서연쌤도 생야채주스 마시지 않아? 저번에 구독료 비싸다고 했던 거.”

“맞아요. 저번 달 말부터 구독하고 있어요.”

“아이고, 어째. 나도 산모 네트워크 친구한테 들었는데 그거 마시고 유산된 사람들이 좀 있나 보더라고. 오염된 야채가 섞여 있었는지 2구역에….”

유산이라니, 서연은 김 선생님이 하는 말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김 선생님의 목소리가 거실에 쟁쟁 울리다 끊겼다. 서연은 쿵쾅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했다. 엄마가 느끼는 감정을 아기도 느낀다고 했다. 떨리는 손은 주물러도 온기가 돌아오지 않았다. 서연은 자신이 마신 병들의 개수를 헤아렸다. 생야채주스는 민준이 해주는 솥밥 외에 서연이 먹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것 중 하나였다. 아무 첨가물 없이 생야채를 착즙한 주스라는 광고에 혹했던 것은 맞지만, 성분이며 정부인증까지 꼼꼼하게 확인해 구독을 결정했다. 서연은 원재료가 오염됐을 가능성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아기가 잘못됐으면 어쩌지. 그저 괴담일 뿐이라고 혼잣말을 반복하며 서연은 앞서가는 마음을 멈춰 세우려 애썼다. 몇 번이나 소파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텔레비전 화면에는 과거의 뉴스 클립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거대한 쓰레기 산과 강으로 쏟아지는 폐수. 머리가 희끗희끗한 교수가 나와 액체가 담긴 스포이트 병을 흔들어 보이며 생선 내장에서 채취한 미세 플라스틱이라고 했다. 그는 인간이 버린 쓰레기가 결국 인간의 몸에 쌓이게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연달아 나오는 영상은 일종의 공익광고였는데 ‘플라스틱 사용 줄이기’나 ‘자동차 짝홀수제도’ 같은 내용이었다.

살면서 서연은 ‘화’라는 감정을 느낄 일이 없었다. ‘화’나 ‘분노’ 같은 감정뿐 아니라 어떤 종류의 격한 감정 모두 말이다. 하지만 요즘엔 자주 어떤 감정들에 휩싸이곤 했다. 아주 쉬운 것이었다. 플라스틱 빨대를 사용하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샴푸나 세제 사용을 줄이는 것. 서연에게 선택권이 있었다면 일말의 고민도 없이 포기했을 단순한 것들 말이다. 그들의 욕심이 지금 서연의 손발을 묶고 있었다. 온갖 잡다한 생각이 서연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분하고 원망스럽다가 두렵고 후회스러웠다. 이대로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다가는 북받치는 감정에 몸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이윽고 익숙한 무력함이 엄습했다. 어차피 서연이 바꿀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서연은 부엌으로 향했다. 발바닥에 온기가 전해졌다. 텔레비전 위에 설치된 멀티 시계를 확인하니 바깥은 3도였다. 민준이 조금 늦는 모양이었다. 저녁 재료를 꺼내고 식탁 위에 놓인 레시피를 읽는 서연의 얼굴에 아무 표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서연은 기계적으로 육수팩을 잘라 전골 냄비에 부었다. 육수가 끓기 시작하면 각종 야채를 넣고 마지막에 소고기를 넣으면 됐다. 진공 포장된 전골 재료를 뜯어 물에 헹구고 작은 용기에 소분된 밑반찬을 접시에 옮겨 담고 나니 싱크대에 쓰레기가 한가득이었다. 저것들이 내 몸에 얼마나 쌓였을까. 쓰레기를 치우기 위해 싱크대에 다가서니 각종 반찬 냄새가 뒤섞여 훅 끼쳤다.

‘우욱’

서연은 입을 틀어막으며 화장실로 뛰어갔다. 아까 마셨던 양배추주스를 몽땅 게워낸 듯했다. 아찔한 피로가 몰려왔다. 간신히 입을 헹구고 주저앉아 있던 서연은 인기척에 눈을 떴다. 긴 패딩 차림으로 한 팔에 쌀 한 봉을 들고 있는 남편이 희미하게 보였다. 민준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괜찮으냐고 물었다. 그 뒤로 민준의 허리 높이만 한 타원형 진료봇이 보였다. 서연은 퇴근할 때 봤던 메시지를 떠올렸다. 서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벽을 짚고 일어났다. 민준이 서둘러 다가와 서연을 부축했다. 순간, 민준의 몸에서 하얀 가루 같은 것이 날렸다. 화산재였다. 서연은 옷소매로 입과 코를 막으며 민준을 밀쳐냈다. 민준은 아차 싶었는지 미안, 미안 하며 허둥지둥 베란다로 향했다. 서연이 한쪽 옷소매로 입을 가리며 거실 가운데 서자 진료봇의 날개가 펼쳐지며 서연의 배 부근을 감쌌다. 촬영이 끝나자 서연은 자연스럽게 진료봇에게 다른 한 손을 내밀었다. 진료봇이 서연의 손을 가져가 채혈했다. 분석 시스템이 돌아가는 동안 서연은 초조하게 앉아 있었다.

“미안해. 에어커튼존에서 털고 들어왔는데도 남아 있을 줄 몰랐네.”

민준이 거실에 들어서며 말했다. 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민준은 멋쩍게 웃으며 서연의 옆에 앉았다. 진료봇의 디스플레이에 ‘분석 종료’라는 글귀가 뜨며 몇 장의 종이가 출력됐다. 진료봇은 친절한 말투로 서연의 영양 상태가 기준치에 미달하며 태아의 성장 수준 또한 기준치에 미달한다고 했다. 서연은 안도했고 민준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세한 검사 결과 파일은 워치로 전송됐으며 영상으로 확인이 가능하다는 안내를 마친 진료봇은 현관으로 향했다. 민준은 인터폰 버튼을 눌러 현관문을 열어주고는 부엌으로 향했다. 손을 씻으며 싱크대에 내동댕이쳐져 있는 전골 냄비를 확인한 민준은 잠시 그것들을 내려다보며 서 있었다. 그리고 민준은 능숙하게 쓰레기를 정리하고는 쌀 두 컵을 씻어 넣은 솥밥용 뚝배기를 인덕션 위에 올렸다.

“정말 다행이야. 아까 김 선생님한테 전화가 왔는데 우리가 구독하는 생야채주스 말이야. 그게 문제가 좀 있는지 먹고 유산된 사람들이 있다더라고.”

“다행이네.”

태아의 상태에 관해 말을 덧붙이면 기준치에 미달하긴 해도 잘 있다는 거니까 다행이지 않으냐고 반문하려 했던 서연은 민준의 대답에 말문이 막혔다. 서연은 그를 처음 만났던 날을 떠올렸다. 민준은 조용한 사람이었다. 서연의 부모는 운동권에 있었으므로 서연은 다소 소란한 환경에서 자랐다. 갑작스러운 교수의 조퇴 때문에 서연이 학교 벤치에서 뜻밖의 고요를 만끽하고 있을 때 민준이 다가와 서연의 옆에 앉았다. 한 시간, 서연이 민준의 존재를 알아차리기까지 걸린 시간이었다. 그마저도 민준의 친구가 아는 체를 해오지 않았다면 서연은 누군가 옆에 앉았다 간 줄도 몰랐을 것이다. 민준은 철학과 학생이었고 말보다는 생각이 많았다. 서연은 그게 참 마음에 들었다. 엄마가 토하는 백 마디 열변보다 민준이 건네는 한마디 말의 짙은 농도가 좋았다. 서연이 임신을 유지하기로 한 데는 민준의 영향이 컸다. 민준이 서연의 손을 잡으며 반세기 전 드라마에 나오는 한 장면처럼 고맙다고 울먹이며 말했을 때, 행복하다고 말했을 때를 떠올리면 서연은 지금도 가슴이 벅찼다.

맞은편 의자 위에 놓인 쌀 봉지를 보자 서연은 지난번 진료봇 방문일에 민준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민준은 서연과 태아의 상태를 듣고는 이런 게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걸 알지 않느냐고, 이제 아침 죽도 점심 도시락도 먹는 게 어떠냐고 저녁에도 제대로 된 음식을 좀 먹으라고 애원했다. 하지만 서연은 굽히지 않았다. 서연은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변함없이 아침과 점심을 걸렀다. 민준은 말없이 한 컵이었던 쌀의 양을 두 컵으로 늘릴 뿐이었다.

어느새 서연의 앞에 뜨거운 뚝배기가 놓였다. 뚜껑을 열자 윤기 나는 쌀밥에서 입맛을 돋우는 고소하고 달큰한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물에 만 밥알을 씹으며 서연은 맞은편에 앉은 민준의 표정을 살폈다. 무표정한 얼굴에 서연은 입안에 굴러다니는 쌀알들이 거칠게 느껴졌다. 서연은 민준의 밥그릇에 담긴 반찬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무엇이 아기를 정말 위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이것도 생야채주스랑 다를 바 없겠지.”

서연이 자신의 수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서연아, 이제 그만 좀 해.”

민준이 토해내듯 말을 이었다.

“배식하는 음식 먹고도 건강한 아이 출산하는 사람이 더 많다는 거 알잖아.”

서연도 모르는 바 아니었다. 자신이 일하는 놀이공간의 여섯 아이 중 다섯명은 그랬다. 예전 같으면 그들에게 대안이 없었으니까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 아니냐고 반문했겠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서연의 앞에 놓인 음식이 대안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서연은 민준이 베란다에 딸린 좁은 창고에서 엄마가 결혼할 때 보물단지처럼 보자기에 싸주었던 뚝배기를 찾아낸 그날을 떠올렸다.

세상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이후 서연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었다. 바로 “무해한 거 맞아?”였다. 처음 환경호르몬에 대해 알았을 땐 기뻤다. 도시락의 음식을 그릇에 옮겨 담아 데워 먹으면 그만이었다. 번거롭기는 했지만 아기를 위해 무언가를 감수하는 게 퍽 보람됐다. 하지만 알면 알수록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고 파고들수록 서연은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서연이 접근할 수 있는 정보에는 한계가 있었고 설령 끝까지 접근한다 해도 그 정보가 신뢰할 만한지 확신할 수 없었다. 서연은 자신이 먹는 음식, 자신이 들이쉬는 공기, 마시는 물 모든 게 의심스러웠다. 정수에 사용된 화학물질이 전부 인체에 무해한 게 맞는지 불안했다. 각종 전처리가 되어 며칠이 지나도 상하지 않는 도시락 음식은 태아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걱정스러웠다. 서연은 자신이 입고 먹고 마시는 것이 전부 해롭게만 느껴졌다.

그날은 아침부터 아무것도 삼킬 수 없었다. 점심도 거르고 겨우 마신 영양셰이크도 퇴근 직전 게워냈다. 간신히 집에 들어와 선잠을 자던 서연은 코끝을 찌르는 즉석밥 냄새에 잠에서 깼다. 민준이 부엌에서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삐- 하는 소리와 함께 전자레인지가 꺼졌다. 서연은 안 먹을래, 짧게 말하고 안방으로 돌아섰다. 녹은 플라스틱에서 나는 묘한 약품 향이 밥 냄새와 뒤섞여 풍겼다. 구역질이 났다. 서연은 화장실로 뛰었다. 변기를 붙들고 신물만 뱉어내고 있는 서연의 등을 두드리며 민준이 그래도 뭐라도 먹어야지 했다. 뭐라도, 뭐라도 먹어, 먹어 하는 목소리가 서연의 귓가에 징징 울렸다. 서연이 사나운 눈으로 민준을 쳐다보며 소리쳤다.

“안 먹어, 전부 독극물 같아. 먹으면 죽을 것 같다고!”

그날 민준은 아침이 될 때까지 서재에서 나오지 않았다. 지난 몇 주간 서연은 무언가에 푹 빠져 있었다. 그것이 자신과 서연의 아기와 관련이 있음을 민준은 어렴풋이 인지하고 있었다. 처음엔 종이컵에 뜨거운 물을 담으면 코팅재가 녹아 안 된다며 찬장에 있던 머그잔을 꺼내는 수준이었지만 시청한 영상의 개수가 늘어갈수록 서연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가셨다. 민준은 잠든 서연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나와 그동안 서연이 본 영상을 날이 새도록 되찾았다.

다음날 아침, 서연은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거실에 나와보니 패딩 차림의 민준이 베란다 구석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패딩 밑으로 민준의 맨다리가 빨갛게 얼어 있었다. 출근 시각이 촉박해지자 몇 번 창가로 다가갔다 돌아오기를 반복하던 서연은 참다못해 베란다 문을 열고 대체 뭘 찾느냐고 물었다. 마침 민준이 창고 안에서 엉금엉금 기어 나왔다. 한 손에 빛바랜 녹색 보자기가 들려 있었다.

침묵 속의 식사가 계속됐다. 이제 서연은 체할 지경이었다. 그때 민준이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렇게 하다가는 너도 우리 아이도 잘못되고 말 거라고. 계속 이럴 거면 차라리…. ‘차라리’라는 말을 들은 서연과 ‘차라리’라는 말을 내뱉은 민준 모두 순간 얼어버렸다. 그 세 글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서연은 알고 있었다. 임신을 유지하는 게 아슬아슬한 줄타기처럼 느껴졌다. 식사를 거부하고 산모용 영양셰이크나 과채주스도 먹지 않았다. 숨을 쉬고 물을 마시는 것조차 스트레스가 되었지만, 서연은 자신의 말라가는 몸이 아기의 건강과 맞바꾼 결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이런 것들이 정말 아기를 위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애초에 자신에게 선택권이란 게 있긴 했을까? 어쩌면 이런 세상에는 태어나지 않는 게 좋을지 몰랐다.

“그래.”

서연의 대답에 민준의 눈이 커다래졌다. 점점 붉게 상기되어가는 민준과 달리 서연의 얼굴은 되레 평온해졌다. 민준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서재로 들어가버렸다. 서연은 이제 지쳤다. 발버둥 칠수록 더 깊이 빨려 들어갈 뿐이었다. 워치의 산모 탭에 들어가 스크롤을 맨 아래까지 내렸다. ‘임신중단’ 버튼이 보였다. 15주까지만 활성화되는 버튼이었다. 문득 죽고 싶다는 생각이 스쳤다. 식기를 치우려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세상이 빙글 돌았다. 뒤에서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싶더니 민준이 자신의 이름을 다급히 부르며 뛰어오는 모습이 얼핏 보였다. 그러고 서연은 정신을 잃었다.

끝이 보이지 않았다.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서연은 자신이 다음 계단에 발을 디디는 순간 이전 계단 칸이 암흑 속으로 사라진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품에 안긴 아이가 몰아쉬는 숨이 서연의 목에 닿아 비눗방울처럼 터졌다. 아이를 안은 서연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서연은 무한의 시간 동안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힘들지 않았다. 아이의 체온이, 재게 뛰어대는 심장이 서연의 발을 가볍게 했다. 두렵지도 불안하지도 않았다. 서연은 문득 이것이 꿈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러자 자신의 품에 안겨 있는 아이의 얼굴이 궁금했다. 자신과 민준의 아이일까, 몇 번이나 상상해본 얼굴이었는데. 서연은 멈춰 서서 아이를 감싼 담요 자락을 젖혔다.

*

응급차는 빠르게 주거 지역을 벗어났다. 민준은 모진 말을 한 자신을 내내 원망하고 있었다. 서연이 아기를 위하는 방법이 다소 극단적이라고 속으로 몇 번이나 비난했는데, 수액 바늘이 꽂힌 서연의 앙상한 팔을 보고 있자니 혼자서 세상에 맞서느라 얼마나 힘들었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서연이 아기를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는 동안 자신은 방관했다. 중심지에 다다르자 바깥이 소란스러웠다.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여러 무리가 차창 너머로 보였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고 선 피켓의 문구가 민준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제2지구 프로젝트 중단 반대’ ‘다음 세대 안전 보장하라’ 글귀를 읽어내는 민준의 심장이 쿵쿵 뛰었다.

흰 천장이 보였다. 집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서연은 자신이 어디에 누워 있는지 가늠해보았다. 자신에게 달려오던 민준의 얼굴이 떠오르자 서연은 그제야 자신이 의료원에 있음을 깨달았다. 무의식중에 서연은 배에 손을 올렸다. 불안감이 물밀듯 닥쳤다. 그때 심전도측정기의 연동 알람을 받은 민준이 병실 문을 열고 뛰어 들어왔다. 서연은 침대에 다다르지도 못한 민준을 향해 아기는, 하고 말했다. 세 글자의 물음에 울음이 묻어났다. 그 짧은 순간 서연은 온몸의 피가 마르는 기분이었다. 모두 내려놨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괜찮대.”

민준이 서연의 손을 잡으며 대답했다. 서연은 맥이 풀렸다. 그제야 눈물이 났다. 버텨준 아기가 대견하고 고마웠다. 고개를 숙인 서연을 보고 민준이 허둥지둥 머리맡에 놓인 수액팩들을 살피며 영양결핍 상태가 심각해서 어쩔 수 없었다며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았다. 어쩔 줄 몰라 하는 민준의 모습에 서연은 피식 웃음이 났다. 곧이어 서연이 괜찮아 하고 대답했다. 민준은 서연의 목소리가 무척 단단하다고 느꼈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돌아보니 간호봇이 식판을 가지고 들어서고 있었다. 돌려보낼까 하고 민준이 조심스레 물었다. 서연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병실 창밖으로 햇살이 쏟아졌다. 이렇게 함께 아침을 맞는 일이 오랜만이었다. 민준은 죽 그릇을 비워가는 서연의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서연이 문득 어떤 생각이 난 듯 민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근데 나 꿈에서 우리 아기 얼굴 봤다.”

“뭐?” 민준이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말을 이었다. “어, 어떻게 생겼는데?”

서연이 생글 웃었다. “기억은 안 나는데 엄청 예뻤어.”

“남자애였어 아니면 여자애였어?” 서연을 보고 있자니 민준도 덩달아 웃음이 났다.

“아이, 기억 안 난다니까.”

“기억이 안 나는데 예쁜 건 어떻게 알아?”

“아무튼 예뻤다고!”

둘은 한껏 유치해져서 그토록 시답잖은 이야기를 내내 나눴다. 그때, ‘보글’ 하고 서연의 아랫배에서 작은 물방울이 터지는 느낌이 났다. 서연이 말을 멈추고 서둘러 손을 배에 가져다댔다. 미세하지만 분명한 떨림이 한 번 더 느껴졌다. 서연의 표정을 본 민준이 제 손을 얼른 올렸다. 곧이어 민준의 얼굴에도 생경한 웃음이 가득 차올랐다. 민준은 서연을 당겨 안았다. 민준의 등 뒤로 파란 하늘이 보였다. 날씨가 참 좋았다. 처음으로 서연은 내일도 이렇게 날이 좋았으면 하고 바랐다.

나은비

나은비 / 김진수 선임기자
<수상소감> 이런 세상에 아이를 낳는 게 맞을까 싶어서

결혼 소식을 전해 오는 친구들이 부쩍 늘었습니다. 그날도 청첩장을 받는 자리에서 어김없이 한 친구가 ‘혹시 아이 생각은 있어?’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비신부는 잠시 망설이다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고민 중이야. 이런 세상에 아이를 낳는 게 맞을까 싶어서.” 이 소설은 여기서 시작됐습니다. 과연 ‘이런 세상’이 어떤 세상일까 하는 물음과 상상으로부터요.
모임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수상 소식을 들었습니다. 벅차오는 여러 감정들에 한참을 울먹이며 서 있었습니다. 무슨 사연 있는 사람처럼요. 머뭇거리며 ‘글’ 주위를 맴돈 지 10년이 다 되어가니 어쩌면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용기를 내어 첫 번째 목소리를 냅니다. 귀 기울여주신 〈한겨레21〉 관계자분들, 한 걸음 더 내디딜 힘을 주신 심사위원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늘 저를 응원하고 지지해 주시는 부모님, 동생 은규, 가족들과 친구들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이 글이 세상에 닿는다고 생각하니 두려우면서도 참 설렙니다. 못내 아쉬웠는데 한 번 더 다듬은 글을 보여드리게 되어 다행입니다. 아직 정한 것은 없지만, 날이 추울 때 한 줌의 온기가 되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무언가를 바라고, 원하고, 꿈꾸며 기도하는 이들과 기쁨을 나눕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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