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추가 교전 중지 준비 됐다"…가자 두 번째 휴전 '청신호'
강경 발언 일색이던 이스라엘 정부에서 추가 휴전에 대한 언급이 나오고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쪽도 협상을 위해 움직이는 것으로 보이면서 양측 간 두 번째 휴전 가능성에 청신호가 켜졌다. 유엔(UN)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휴전 촉구 결의안 표결은 재차 미뤄졌지만 미국이 무조건적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을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도 나온다.
19일(이하 현지시각) <AP> 및 <로이터> 통신, <워싱턴포스트>(WP), 영국 BBC 방송 등을 보면 이날로 예정됐던 안보리의 가자지구 휴전 촉구 결의안 표결이 하루 뒤로 재차 연기됐다. 18일로 예상됐던 표결이 이틀 연속 미뤄진 것을 두고 외신은 미국의 거부권을 피하기 위한 시도라고 분석했다.
미국은 지난 8일 안보리 15개 이사국 중 13개국이 찬성한 가자지구 휴전 촉구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해 무산시킨 바 있다. 이후 12일 유엔 총회에서 가자지구의 즉각적 인도주의적 휴전을 촉구하는 결의안이 193개국 중 153개국의 찬성으로 채택돼 미국의 국제 무대에서의 고립이 두드러지기도 했다. 총회 결의안은 안보리 결의안과는 달리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국제사회 여론 가늠의 척도가 된다.
외신들은 미국이 결의안 초안의 일부 문구와 내용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어 합의가 지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AP>는 18일 제시된 초안에 담겼던 "긴급하고 지속가능한 적대행위 중단(cessation)"이라는 문구가 19일 수정된 초안에서 "안전하고 제약 없는 인도주의적 접근 허용을 위한 긴급한 적대 행위 일시 중지(suspension)와 지속가능한 중단(cessation)으로 나아갈 긴급한 조치를 촉구한다"는 문구로 완화됐다고 전했다.
<로이터>는 외교관들이 미국이 해당 문구로의 변경을 원했다고 설명했다. 린다 토마스 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합의에 가까워졌냐는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정말 노력 중"이라고 답했다.
<로이터>는 외교관들을 인용해 미국이 가자지구로 반입되는 구호물자 검사가 분쟁 당사자들이 아닌 별도 감시 기구를 통해 진행돼야 한다는 결의안 초안 내용에도 불만을 가지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가자지구로 반입되는 모든 구호물자는 이스라엘의 검사를 거친다.
이스라엘은 구호 트럭 반입을 위해 이집트에서 가자지구로 통하는 라파 검문소를 10월 21일 개방한 데 이어 이달 17일 가자지구 남부와 이스라엘을 잇는 케렘 샬롬 검문소도 개방했지만 반입 물량은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습격 이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표결 연속 연기에도 미국이 무조건적 거부권 행사보다 합의 가능한 문구를 협상 중이라는 낙관적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강경 발언 일색이었던 이스라엘 정부도 때맞춰 추가 교전 중단 가능성을 언급해 지난달 말 첫 휴전에 이은 두 번째 휴전이 가능할지에 관심이 모아졌다.
19일 아이작 헤르조그 이스라엘 대통령은 현지 주재 외교단 면담에서 "이스라엘은 인질 석방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또 다른 인도주의적 교전 일시 중지와 추가적인 인도주의적 지원을 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지난 15일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인 인질 3명을 오인 사살한 뒤 이스라엘 내부에서도 인질 협상 재개 압력이 커지고 있다.
미 매체 <악시오스>는 19일 이스라엘 정부 관계자 2명과 상황을 잘 아는 또 다른 소식통을 인용해 이스라엘이 인질 30~40명을 석방하는 대가로 하마스에 최소 일주일의 휴전을 제안했다고 보도했다. 매체는 이것이 첫 번째 휴전 종료 뒤 이스라엘 쪽이 관련해 내민 첫 제안이라고 설명했다.
전날 외신들은 이스라엘 대외정보기관 모사드의 다비드 바르니아 국장이 빌 번스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 무함마드 빈 압둘라흐만 알사니 카타르 총리와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만나 새 인질 협상에 관해 논의했다고 미 당국자 등을 인용해 보도했는데, 이 자리에서 바르니아 국장이 해당 안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하마스 쪽도 협상 재개를 위해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카타르 알자지라 방송은 20일 하마스 정치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가 이집트 카이로에 도착했고 하마스가 성명을 통해 하니예가 이집트 당국자들과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과의 전쟁 상황에 관해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보도했다.
앞서 19일 <AFP> 통신은 하마스와 가까운 한 소식통을 인용해 해당 회담에서 하니예가 이집트 국가정보국장 등과 휴전 및 수감자 석방에 관해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휴전이 미뤄지는 동안 가자지구에선 이스라엘 공격으로 하루에 수백 명 목숨을 잃고 있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이 인용한 가자지구 당국 집계에 따르면 첫 휴전 뒤 전투가 재개된 이달 1일부터 19일까지만 4000명이 넘는 팔레스타인인이 숨졌다.
10월 7일부터 이달 19일까지 총 사망자는 1만 9667명으로 2만 명에 육박한다. 19일 <로이터>는 지상전 확대로 난민이 몰린 남부 라파에 이스라엘 미사일이 떨어져 최소 20명이 숨졌고 북부 자발리아 난민촌에서도 공습으로 13명이 숨졌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이 하마스 군사 시설로 사용되고 있다고 주장하며 가자지구 병원들을 차례로 공격해 17일 세계보건기구(WHO)가 가자지구 북부 24곳 병원 중 4곳만 부분적으로 기능하고 있다고 밝힌 가운데 19일 의료구호단체 국경없는의사회(MSF)는 해당 4곳 병원 중 하나인 알아우다 병원을 이틀 전 이스라엘군이 장악했다고 밝혔다.
단체는 지난 10주 간 병원이 공습으로 파괴됐고 의료진이 숨졌으며 최근 12일 간은 포위된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단체는 이스라엘군이 병원 장악 뒤 국경없는의사회 회원을 포함한 16살 이상의 남성을 병원 밖으로 끌고 나가 옷을 벗기고 결박한 채 심문했다고 덧붙였다. 단체는 알아우다 병원이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자 북부에서 기능하는 마지막 병원"이라며 병원에 14명의 어린이를 포함해 수십 명의 환자가 있다고 호소했다.
<AP> 통신은 가자지구 북부 알아흘리 병원 또한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받아 정문이 파괴되고 대부분의 직원들이 억류됐다고 보도했다. 이 병원을 운영하는 성공회의 돈 바인더 목사는 18일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아흘리 성공회 병원을 오랫동안 열어둘 수 있었던 것은 가자시티의 많은 부상자들에게 큰 자비였다"며 "그건 오늘 끝났다"고 병원 운영 중단을 알렸다. 이 병원도 세계보건기구가 밝힌 북부에서 부분적으로나마 운영됐던 4곳 병원 중 하나다.
한편 <워싱턴포스트>는 전날 미국이 홍해에서 민간 선박을 보호하기 위한 다국적 안보 구상을 발표한 뒤 19일 예멘 후티 반군이 선박 공격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반군 쪽은 매체에 "우리 전쟁은 도덕적 전쟁"이라며 "미국이 아무리 많은 동맹을 동원해도 우리의 군사 작전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미국이 올바른 방향으로 움직였다면 분쟁 범위를 확대할 필요 없이 이스라엘이 범죄를 중단해야 했을 것"이라고 비난했다.
후티 반군이 팔레스타인 지원을 빌미로 이스라엘과 연계돼 있다고 주장하는 민간 선박을 공격하며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최단 경로인 홍해와 수에즈 운하 항로가 사실상 마비됐다. 대형 해운사와 에너지 기업 등은 아프리카 희망봉으로의 우회를 선언하며 공급망 혼란이 야기된 상황이다. 세계 무역의 12%가 이 항로에 의존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미국이 주도한 홍해 다국적 안보 작전에 바레인을 제외하고 정작 인근 중동국들이 참여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영국 싱크탱크 새넘 바킬 중동·북아프리카 프로그램 국장은 대부분의 아랍국들이 "어떤 식으로든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파괴와 잔인한 전술을 지지하는 것으로 보이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짚었다.
[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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