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현장] 엑스포만이 답이 아니라면…

정유선 기자 2023. 12. 20.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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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은 엑스포를 개최할 만한 모든 것을 갖췄다”

올해 4월 6일 부산 시그니엘 호텔 기자회견장. 부산 실사를 마친 파트릭 슈페히트 국제박람회기구(BIE) 실사단장의 이 같은 말에 기자가 물었다. “그 말은 사우디 리야드 실사 때도 하지 않았나요? BIE 실사단의 보고서는 변별력을 갖추고 있습니까?”

그로부터 7개월 여뒤 파리에서부터 날아든 ‘119대 29’라는 참담한 소식을 듣고 그날의 회견이 떠올랐다. 실사단이 보고서를 얼마나 객관적으로 썼는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실사의 변별력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객관적으로 부산이 준비해온 인프라 등 물리적 조건, 엑스포의 비전과 내용적 측면, 민·관·정의 노력과 시민의 열망 등 여러 측면에서 부산은 리야드보다 월등히 앞선 것으로 평가됐지만 부산은 결국 선택받지 못했다.

‘더티 게임’. 2035 엑스포 재도전에 나설 것이냐는 물음에 부산시 고위 관계자는 “경쟁국이 어디인지부터 봐야 될 것 같다.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아닌 나라들과의 경쟁은 생각해 봐야 겠다”며 “또다시 이런 더티 게임을 할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문서로 부산 지지를 확답한 나라가 50개 국이 넘고 20여 개국 가량이 구두로 약속을 했다고 한다. 최소 70여 개국은 확보했다고 보는 근거다. 우리 정부의 ‘오판’만 탓할 수 없는 이유다. 국가간 외교에서 이렇게 약속이 허무하게 뒤집히는 경우가 없었다고 한다.

그날 182개 BIE 회원국 가운데 179개국이 총회에 참석했는데 투표에 참여한 나라는 165개국이었다. 14개국은 투표장에 들어갔음에도 투표를 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는 기권과는 다르다. 기권을 하면 모수에 잡혀서 1차 투표 승리 기준인 3분의2 기준이 높아지기 때문에 일부러 투표를 하지 않은 것이다. 투표에 불참한 대다수가 부산을 지지하는 나라였을 것으로 보이는데, 이 일 역시 사우디의 요청 때문이었을 거란 게 유치위의 추측이다.

파리에 있는 BIE 대사를 실컷 설득해놓았는데 막판에 본국에서 대표단을 보낸 경우가 50개국이 넘었다고 한다. 축구경기 도중에 골대를 옮긴 꼴이다. IOC나 FIFA 위원들과 달리 엑스포 개최지를 투표할 BIE 대표는 정해져 있지 않아 갑자기 바뀌기도 하는 것이다. BIE 실사도, 공들여 만든 PT 내용도 결국 별 의미가 없었던 개최지 투표를 경험한 부산 시민의 마음은 허탈하기만 하다.

최근 몇 년간 동향을 보면 선진국들은 국제행사 유치에 적극 나서지 않는 분위기다. 대신 중국, 러시아 등 권위주의 국가나 사우디, 카타르 등 중동 산유국들이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우리나라는 올림픽, 월드컵에 이어 엑스포까지 3개 국제행사를 모두 개최한 7번째 국가가 되기를 노렸으나 그 꿈은 좌절됐다. 더욱이 단순히 ‘실력’이 아닌 외부조건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는 경쟁임을 경험한 만큼 재도전은 전략적으로 고민해봐야 한다.

보다 근본적으로 디지털 시대에 엑스포가 과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인지 고민해봐야 한다. 2025 오사카·간사이 엑스포를 준비하는 일본은 참여국가들이 국가관 건립에 소극적이어서 마음을 졸이고 있다고 한다. 그만큼 엑스포의 효용성에 많은 나라들이 회의를 갖고 있다는 얘기다.


부산을 수도권에 필적할 남부권 허브, 글로벌 허브 도시로 만들겠다며 그 계기를 위해 엑스포를 잡은 것이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말처럼 굳이 엑스포만이 부산 발전의 수단이 되지 않아도 된다면, 엑스포에 집착할 이유는 없다. 윤 대통령은 부산을 찾아 “엑스포 전시관 지을 자리에 외국기업 유치해 부산을 더 발전시킬 것”이라고 했다. 그간 기업 지을 자리가 없어서 부산에 해외기업, 금융기관을 유치 못한 것은 아닐 터다. 윤 대통령의 약속이 부산 시민에 대한 립서비스가 아니라면 정부가 명운을 걸고 정책적 지원에 나서야 한다. 엑스포 없이도 부산을 제대로 키우고 발전시켜준다면 부산은 엑스포 안 해도 좋다. 엑스포 유치했을 때보다 더 부산을 키우겠다는 윤 대통령의 약속이 지켜질지 시민은 지켜보고 있다.

정유선 서울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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