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윤석열 아바타’ 논쟁
‘나’는 현실 세계에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가상세계(메타버스)에 ‘또 다른 나’가 있다. 이곳에 들어가려면 현실과 이어줄 가상 신체, 즉 분신(아바타)이 필요하다. 아바타는 힌디어 ‘아바타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미국의 SF 작가 닐 스티븐슨이 1992년 출간한 장편소설 <스노 크래시>에 아바타를 처음 등장시켰고, 2009년 개봉된 영화 <아바타>가 전 세계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면서 일상에서 친숙해졌다. 이제 아바타는 온라인 게임·채팅·쇼핑몰에서 나를 대신해 메시지를 전달하고, 욕구를 충족시켜준다. 현실의 K팝 아이돌 멤버와 아바타 멤버가 공존하고, 아바타 관객들이 K팝 공연을 관람하기도 한다.
아바타는 정치판에도 들어왔다. 2017년 대선 토론회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제가 MB(이명박) 아바타입니까”라고 질문한 것이 유명하다. 그의 의도와 달리, ‘MB 아바타’설을 확산시킨 자책골이었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건 때는 ‘박근혜는 최순실(개명 후 최서원)의 아바타’란 말이 회자됐다.
국민의힘에서 ‘윤석열 아바타’ 논쟁이 벌어졌다. 윤 대통령의 최측근인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되면 수직적 당정관계가 더욱 심화할 거라는 반대 논리로 제기된 것이다. 한 장관은 지난 19일 “지금까지 공직 생활을 하면서 누구도 맹종한 적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했다. ‘윤석열 아바타’는 조작된 프레임이라는 주장이다. 그런데 한 장관은 ‘김건희 여사 특검법’에 대해 “총선에서 야당이 선전선동하기 좋게 만들어진 악법”이라고, 김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에는 “몰카 공작”이라고 했다. 비대위원장을 맡기도 전에 윤 대통령 부부의 호위무사를 자처하고 있으니 ‘윤석열 아바타’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을까. 게다가 “5000만 국민의 언어를 쓰겠다”던 한 장관이 ‘선전선동’ ‘공작’이란 말을 스스럼없이 쓰는 걸 보면 이미 ‘여의도 사투리’ ‘용산 사투리’에 능숙한 것 같다.
정치인에게 누구의 아바타란 표현이 달가울 리 없다. 하지만 스스로 어떻게 처신했길래 아바타 소리를 듣는 건지를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 그나저나 ‘민심의 아바타’ 소리 듣는 정치인은 있을지, 언제 나올지 궁금하다.
안홍욱 논설위원 ah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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