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는 오지 않지만…난해한 고전, 대배우 숨결로 살아나다
'인간의 부조리함' 다룬 어려운 고전
신구·박근형·박정자 등 무대 올라
연극계 대배우 열연에 동시대와 소통
'원캐스트' 출연으로 내년 2월까지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자, 가자” “안 돼” “왜?” “고도를 기다려야지” “아, 그렇지”
지난 19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개막한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의 한 장면. 에스트라공(고고) 역의 배우 신구(87), 블라디미르(디디) 역의 배우 박근형(83)이 천연덕스럽게 주고받는 대화다. 동문서답 같은 이들의 대화는 작품 속에서 여러 번 반복된다. 한 번 들으면 무슨 내용인지 이해할 수 없어 당황스럽고, 두 번 들으면 어처구니가 없어 웃음이 나온다. 그런데 세 번 들으면 마음 한구석이 쓰리다. 이들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우리의 인생 같아서다.
어려운 작품 몰입하게 만드는 배우들의 힘
‘고도를 기다리며’를 ‘어려운 작품’이라고 일컫는 이유가 있다. 부조리극(不條理演)이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등장한 부조리극은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고독과 소통 부재를 통해 삶의 무질서와 불합리를 보여준다. “이치에 맞지 않는 극”이라는 사전적 의미처럼 부조리극은 상식이나 논리로는 이해하기 힘들다.
이번 공연에서도 이러한 부조리극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바위 하나, 그리고 가지가 앙상한 나무 한 그루만이 놓여 있는 황량한 무대 위에서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대화를 끊임없이 주고받는다. “당근을 달라”는 에스트라공에게 블라디미르는 당근 대신 순무를 주고, “서로 욕지거리나 하자”더니 갑자기 그만하자며 화해한다. 권위적인 인물 포조와 그의 짐꾼 럭키, 그리고 해맑은 표정의 소년 등 다른 등장인물도 이해하기 힘든 말을 쏟아낼 뿐이다.
개막 첫날, 대배우들 열연에 기립박수 쏟아져
배우들은 내년 2월 18일까지 이어지는 공연에서 ‘원 캐스트’로 매회 무대에 오른다. 배우들의 열연에 개막 첫날 기립박수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공연 관계자는 “첫 공연을 마친 배우들은 추운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객석을 가득 채우고 열렬한 박수를 보낸 관객들로 벅찼고 정말 감사하다고 전했다”며 “남은 기간 최선을 다해 공연에 임할 것을 약속했다”고 말했다.
‘고도를 기다리며’가 발표된 뒤 ‘고도’의 존재에 대해 많은 해석이 나왔다. 그러나 베케트는 “인물들에 대해 아는 것은 모두 대본에 있고, 더 많이 알았더라면 대본에 썼을 것”이라며 자신도 고도가 누군지 모른다고 밝혔다. 분명한 것은 사람은 누구나 무언가를 기다리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 기다림의 끝에 ‘죽음’이 있을지라도 말이다. 이 당연한 삶의 진리는 연기 경력 60년 이상의 대배우들과 만나 설득력을 얻었다.
장병호 (solanin@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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