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술 먹다 다치고, 잘 걷는데 산재"…노동계 "일부로 전체 모욕"(종합2보)
부정수급 117건 적발…사적으로 다쳤는데 산재 신청
음주운전 사고인데 "배달 중 넘어져" 1000만원 수령
집에서 넘어져 다쳤는데 "사무실서" 거짓 진술 요청
배액징수·고발…병원·공단 '산재 카르텔' 등 추가 조사
민주노총 "산재 노동자 전체 모욕…개악 시도 중단을"
[서울=뉴시스] 강지은 기자 = 사적으로 발생한 사고를 업무 중 다친 것으로 조작해 산업재해 승인을 받거나 산재 요양기간 중 다른 일을 하며 타인의 명의로 급여를 지급 받는 등 부정수급 사례가 무더기 적발됐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2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산재보험제도 특정감사 중간결과'를 발표하고 이같이 밝혔다.
이번 감사는 지난 10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일명 '나이롱 환자' 점검 절차 부실 등 산재 보상금 부정수급 문제, '산재 카르텔' 의혹 등이 도마에 오른 데 따른 것이다.
이에 고용부는 지난 달 1일부터 담당 기관인 근로복지공단에 대한 특정감사에 착수했다.
그 결과 부정수급 사례와 관련해 접수되거나 자체 인지한 사례는 320건이다. 이 가운데 현재까지 조사가 완료된 176건(55.6%) 중에서는 117건의 부정수급 사례를 적발했다. 적발액은 약 60억3100만원이다.
주요 부정수급 사례를 보면 병원 근로자 A씨는 집에서 넘어져 다쳤음에도 병원 관계자에게 사무실에서 넘어진 것으로 산재 처리를 부탁하며 공단에 거짓 진술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후 요양을 신청해 5000만원을 수령한 것으로 파악됐다.
배달업무 종사자인 B씨는 배달 중 넘어지는 사고로 요양을 신청해 1000만원을 수령했다. 그러나 사고 원인은 업무와 관계 없이 음주 운전을 하면서 발생한 사고로 조사됐다.
나이롱 환자도 줄줄이 적발됐다.
C씨는 추락에 의한 골절 등의 상병을 진단 받고 '척수 손상으로 인한 양하지 완전마비'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평소 혼자 걷는 것을 수차례 목격했다는 제보에 따라 조사한 결과, 전동 휠체어에서 일어나 걷는 것이 확인됐다고 한다.
다른 배달 종사자 D씨는 배달 중 균형을 읽고 넘어져 어깨 관절 염좌 등 상병으로 요양 후 400만원을 수령했다. 그러나 요양기간 중 배달 업무를 계속하면서 다른 사람 명의로 근무하고 타인의 통장으로 급여를 지급 받은 사실이 확인됐다.
고용부는 적발된 부정수급 사례에 대해서는 부당이득 배액징수, 형사고발 등 엄정 조치할 계획이다.
이번 감사에서는 적발 금액 중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장기요양' 환자도 집중 점검 대상이 됐다.
지난해 기준 6개월 이상 요양 환자는 전체 환자의 47.6%, 1년 이상은 29.5%였다. 근로복지공단의 진료 계획서 연장 승인률도 99%에 달했다. 산재 승인을 받기 위해 20~30개 상병을 한꺼번에 신청하기도 했다.
이 장관은 "이는 병원에서 합리적 기준 없이 진료 기간을 장기간으로 설정하고, 승인권자인 근로복지공단이 관리를 느슨하게 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며 "이와 관련해 '산재 카르텔' 가능성도 추가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다만 고용부는 부정수급 뒤에 공단을 포함한 이권 담합이 있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구체적 정황을 제시하지 못했다. 이 장관은 "지금은 중간감사 결과인 만큼 (부정수급만) 발표한 것이고, 그것(산재 카르텔)도 중요하게 보고 있다"고 했다.
고용부는 이 밖에도 근골격계 질환 등을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할 때 적용하는 '추정의 원칙'도 면밀히 검토 중이다.
추정의 원칙은 근골격계 질환과 해당 질환이 자주 발생하는 직종을 정해 작업 기간과 위험 요소 등 일정 기준을 충족하면 현장 조사 절차를 생략하고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하는 제도다.
이 장관은 "추정의 원칙은 대법원 판례 등을 통해 신속하게 재해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도입한 것으로, 이것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추정의 원칙이 악용되는 점은 없는지도 살펴볼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이에 고용부는 당초 계획했던 감사 기간보다 한 달 더 연장해 이달 말까지 감사를 진행하고, 감사 종료 후에는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제도 개선 TF를 구성해 산재보상제도의 구조적 문제점을 개선할 계획이다.
이 장관은 "감사 중간 결과에서 확인된 각종 부정수급 사례, 제도상 미비점은 산재 기금의 불필요한 지출을 유발해 기금의 재정 건전성 악화로 이어질 것"이라며 "이는 결국 미래 세대의 부담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고용부는 남은 기간에도 부정수급을 포함한 산재보상 관련 부조리를 발본색원하겠다"며 "성실히 일하다 산재를 당해 정말로 도움이 필요한 분들이 빠른 시일 내 직장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제도 혁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노동계는 고용부의 이번 발표에 강력 반발했다.
민주노총은 논평을 내고 "고용부는 일부 부정수급 사례를 전체 산재 노동자 문제로 호도하고 있다"며 "산재 승인 건수는 매년 약 13만 건, 급여액은 약 7조원이다. 부정수급 117건, 60억원으로 산재 카르텔을 운운하는 것은 민망하다"고 했다.
6개월 이상 장기요양 환자 비중이 높은 데 대해서는 "이는 산재 처리 기간이 장기화되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기준 산재처리 기간은 근골질환 108일, 뇌심질환 113일, 직업성 암 281일이었다.
그러면서 "경영계와 정부 여당은 매년 발생하고 적발해왔던 부정수급 사례를 산재 카르텔로 둔갑시켜 산재 노동자 전체를 모욕하고, 산재보험제도 개악의 물꼬를 트려고 하는 치졸한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kkangzi8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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