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종훈의 근대뉴스 오디세이] "월급쟁이 마취약이던가!" 100년 전 연말 상여금 이야기

2023. 12. 20.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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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종훈 19세기발전소 대표·아키비스트

1923년 연말 퍼진 '보너스 못 준다'는 소문 日 강타한 간토대지진, 상여금 지급에 영향 금액 적어졌지만 박봉 경찰관들 희색 만면 순천 병원서는 쥐꼬리 보상에 간호부 파업

연말이 오면 월급 생활하는 사람들한테는 기다려지는 게 있다. 연말 보너스라고 불리는 상여금(賞與金)이다. 상여금을 받으면 기분이 좋을 수 밖에 없다. 대출도 갚고 여행도 가고 친구들한테도 한 턱 쏜다. 100년 전에는 어떠했을까? 그 때의 상여금 이야기를 찾아 한번 떠나 보자.

1923년 12월 3일자 매일신보에 '세민(細民, 가난하고 천한 백성)의 대공황'이란 제목의 기사가 보인다. 연말 상여금이 나오지 않는다는 소문이 퍼진다는 내용이다. 바로 그 해 9월 일본을 강타한 간토(關東)대지진의 영향 때문이었다.

"연말도 하루 이틀 가까워져 오기 시작함에, 관청이나 은행, 회사에 날마다 문턱이 닳도록 다니는 월급쟁이 사이에는 '보-나스' 이야기가 이 구석 저 구석에서 생기게 되었다. 어느 사람을 물론하고 연말 상여금에 정신이 팔려 1년 12달 365일 동안을 하루 같이 다니며 일을 보는 것은 아니지 마는, 해마다 1년 근로에 대한 세찬(歲饌)으로 주어옴이 상례(常例)가 되었으므로, 연말이 되면 얼마나 주는가 하고 궁금증이 생김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그런데 금년은 동경과 요코하마 지방의 진재(震災)로 인하여 은행과 회사와 같은 곳은 타격이 적지 아니 하였으며, 또한 관청에도 예산에 적지 않은 영향이 미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일부에서는 '보-나스'가 없어진다는 말이 유행 함에 (중략) 경성에서 조선은행과 같은 곳에서도 물론 진재로 인하여 영향이 없지 못하겠지마는 행원의 '보-나스'에까지는 큰 영향이 미치지 아니 하나, 그 외 은행, 회사에서는 진재에 눈이 둥그레져서 주머니 끈을 잔뜩 졸라매는 형편으로, 어떤 은행과 회사 같은 곳은 '보-나스'가 없다고 하여 연말의 상여 몇백 원씩에 등을 대었던 사람에게는 적지 않은 타격이 생겼다 한다."

그러나 상여금이 없으리라는 걱정과는 달리 월급쟁이의 연말 상여금은 예년과 같이 지급됐던 것 같다. 1923년 12월 14일자 조선일보 기사다. "금년에는 동경 진재(震災)의 영향으로 1년 동안을 두고 바라던 연말 상여금도 폐지한다는 소문이 들림에 월급쟁이들의 공황이 적지 않던 중, 최근에 경성부 재무과에서 조사한 바를 들으면 관청이나 은행 같은 데에서는 물론 종전과 같이 연말 상여를 줄 것이요, 혹 어떤 회사나 기타 상점 같은 데서 연말 상여를 폐지한 데가 있을지라도 그 상여금의 총 액수로 보면 전보다 조금도 줄지 않았는데, 현재 경성부 내에서 봉급생활하는 사람의 수효가 12,000명이요 그들이 연말에 받을 상여금 총액은 120~130만원이 되고, 경성 이외에 강원도, 황해도, 충청도의 일부도 역시 경성의 세력 범위에 있어 대개는 경성에 와서 소비하는 자가 많다고 볼 것이요, 이와 같은 세력 범위까지 합하면 160~170만원이 될 터인데, 이 액수의 7~8할 즉 120~130만원은 섣달 그믐 안에 경성의 경제계에 흩어져서 일반 금융에 관계될 것은 물론이요 월급 생활하는 이의 과세(過歲)하기는 전과 다름이 없으리라더라."

각 직업별 상여금 규모는 기사를 통해 알 수 있다. 경찰관에 대한 상여금을 살펴 보자. "어제 15일은 1년 동안 박봉(薄俸) 생활에 허덕허덕하던 일반 경찰관들의 '포나쓰' 상여금 날이었다. (중략) 봉급 이외에 1년간 수고하였다는 위로로 상여금의 사령장을 손에 든 그들의 얼굴에는 다소의 희색(喜色)을 숨길 수 없었다. 이번의 상여는 최고가 13할, 평균 10할 가량으로 경찰부를 합하여 시내 5개 경찰서 1,100여명 경관에게 각각 수여되었는데, 작년에 비하여는 약 2~3할 가량이 적어졌다 한다." (1923년 12월 16일자 매일신보)관청의 공무원 상여금 내역도 소개되어 있다. "경기도는 가장 많이 받는 자가 주임관(奏任官) 이상 14할 가량, 판임관(判任官) 16할, 고원(雇員) 18할, 용인(傭人)은 19할이라 하며, 총독부는 경기도 보다는 다소간 적을 듯 하다는데, 관청 중에서 가장 많은 곳은 돈벌이를 잘하는 전매국이라더라." (1923년 12월 16일자 동아일보)

그러나 상여금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동맹파업이 벌어지기도 했다. '순천(順天) 안(安)병원의 간호부 동맹파업'이란 제목의 1924년 1월 13일자 동아일보 기사다. "전라남도 순천군 미국 사람이 경영하는 안력산(安力山, Alexander) 병원에서는 사무원과 간호부가 단결하여 지난 9일에 동맹파업을 하였다는데, 그 원인을 들은 즉 그 병원에서는 사무원과 간호부를 사용하되 월급은 8원으로부터 최고가 23원이므로, 그러한 적은 월급을 받고는 1개월 동안에 생활을 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출근 시간에 조금만 늦게 오면 무조건 해고나 퇴직을 시키는 일도 종종 있었으며, 기구를 사용하다가 파손이 되면 그 물품값을 배상을 시키되 월급 중에서 제감(除減)하는 일과 그 외에 여러 가지로 학대와 압제를 받던 일이 많은 중에,(중략) 지난 9일에 사무원과 간호부가 서로 회의하되 우리는 죽도록 고생만 하고 매월에 13~14원의 월급으로는 생활할 수가 없는 즉, 병원장 노제세(魯濟世, James Mclean Rogers)에게 진정이나 해 보자 하고 병원장을 찾아가서 월급을 승급해 달라고 한 즉, 원장과 미국인 간호부가 말하기를, '당신들에게 월급을 더 줄 수는 없는 즉, 월급을 더 받으려고 생각하면 다른 데로 가서 근무하는 것이 좋다'고 하였으므로 일동은 동맹하고 이 병원을 하직하게 되었다더라."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이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이다. 보너스를 '월급쟁이의 독한 마취약'이라고 비판하는 기사가 눈에 띈다. "우리는 동전 한 푼이나 침 한 대로 거지와 마약중독자가 구제되었다는 사실을 이때까지 보지 못 하였다. 상여금도 또한 월급쟁이를 구원하는 데는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동전 한 푼이 거지로 하여금 거지 노릇을 늘 하게 하고, 침 한 대가 중독자를 더욱 중독케 함과 같이 상여금은 월급쟁이에게는 가장 독한 약이다. 월급쟁이의 정신을 빼게 하는 마취약이다. 이것을 주면서 자랑하는 것은 죄악이요 이것을 받으며 기뻐하는 것은 노예의 가련한 본성이다. 돈 가진 사람들아! 그대들은 언제나 이 더러운 '상여금'을 폐지하려느냐." (1923년 12월 16일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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