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 예산 없는 ‘유보통합’, 이대로는 교육도 위태롭다

한겨레 2023. 12. 20.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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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졸속 유보통합·늘봄 저지 4차 전국교사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왜냐면] 원주현 | 인천여고 교사·전국중등교사노조 정책실장

우리는 공교육의 주체로서 다음 세대를 길러낼 책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육은 상품이 아닙니다. 교육은 이익의 논리에 의해서만 움직여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국회와 정부는 지금, 교육의 본질을 망각하고 공교육의 책무를 망각한 채 학교 현장의 전문가인 ‘교사’들의 의견에 귀를 막아왔습니다. 초등의 늘봄학교, 중등의 자사고와 특목고 유지, 일방적인 입시제도, 무늬만 고교학점제 등을 강행할 때마다 늘 그러했습니다. 한 명의 아이가 소중한 시대에 국가 책임의 유아 공교육의 방향은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형식적인 공청회와 밀어붙이기식 법 개정을 통해 조직체계부터 통합하려는 것은 누구의 논리입니까?

교육 정책 및 교육 입법의 과정에 교사들이 빠져 있다 보니, 학교 현장과 ‘아이들’이 논의에서 빠지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모든 아이를 위한 유보(영유아 교육·보육)통합의 구체적 로드맵 없이, 대학과 평생교육에 이어 ‘어린이집’ 지원을 위한 정부조직법 개정만 유독 서두른 속내는 무엇입니까? 지난 8일 정부조직법 개정의 졸속 강행으로 인해 현장에서 수많은 갈등과 혼란이 발생한다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우리 아이들이 될 것입니다.

지방재정교육교부금은 특히 의무교육 및 보통교육을 위한 재정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제정한 국가재정입니다. ‘공평한 교육기회 보장과 지원’을 위한 예산으로 유‧초‧중‧고등학교의 교육 예산에 사용해 왔습니다. 올해 국세 수입이 줄며 지방자치단체와 교육청에 보내는 지방교부세와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23조 원가량 감소할 전망이라고 합니다. 최근 여름·겨울에 냉‧난방비를 걱정하는 학교가 늘고 있습니다. 유‧초‧중‧고등학교에 돈이 넘친다고 생각한다면 오해가 아닐 수 없습니다. 지난해 국회는 고등·평생특별회계법과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개정안을 예산부수법안으로 강행처리했습니다. 대학과 평생교육 지원 예산으로 1조5천억 원을 이관하면서 유‧초‧중등 교육에서 쓸 예산이 더 줄었습니다. 학생이 감소하니 지방재정교육교부금도 남아돈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교육예산의 대부분은 인건비, 시설비, 기관운영비 등 경직성 예산입니다. 학생이 감소한다고 학교, 학급, 교원이 바로 줄어드는 것은 아닙니다. 교육 예산을 다른 곳에 전용하면 경직성 경비를 줄일 수 없어 결국 학생교육활동 예산이 축소되고 교육 수준이 저하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조직법 개정 강행은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교육의 자주성과 전문성을 무시하는 태도입니다. 새로운 정책을 제대로 시행하려면 이를 뒷받침할 예산과 법적 근거를 먼저 마련해야 합니다. 특히나 제대로 된 유보통합이라면 어린이집 3만여 곳에 대한 지원이 불가피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별도의 예산 추가 없이 기존 예산을 나눠 쓰라는 것은 보육의 질 향상이 아닌, 교육의 질 하락이라는 최악의 결말만을 가져올 것입니다. 국가 책임의 유아 보육‧교육이라면 국고 지원이 필수입니다.

이전 정부부터 추진해 온 ‘고교학점제’는 교사들의 많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2025년 전면 시행을 앞두고 있습니다. 2021년 국회에서는 ‘고교학점제 시행 근거와 운영 지원을 위한 법안’과 ‘교원 자격증 없는 자의 한시적 시·기간제 임용에 대한 법안’이 발의됐습니다. 당시 전국중등교사노조에서는 ‘교원 자격증 없는 자의 한시적 시·기간제 임용에 대한 법안’을 막기 위한 설문과 서명 운동을 벌여 이를 가까스로 막은 바 있습니다. 그리고 성공적인 고교학점제 시행을 위한 전제 조건으로 교사정원 확대와 교무학사 전담교사제, 대입개편안 마련 등을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고교학점제 법안이 통과된 뒤, 현장에 절실히 필요했던 ‘전제 조건’은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마련되거나 지원된 것이 없습니다. 고교학점제를 위한 교사의 정원과 공간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것조차 지원해주지 않았고, 자사고와 특목고 폐지마저 없던 일이 돼버렸습니다.

정부와 국회는 지금이라도 바람직한 공교육 체계 확립을 위해 공교육 주체인 교사들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공교육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은 대가를 치르는 것은 결국 우리 미래 세대, 우리 아이들이 될 것이기에 우리 공교육의 교사들은 일방적인 ‘정부조직법 개정’에 반대를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올바른 유보통합이 되려면, 돌봄과 교육은 분리해 운영해야 합니다. 보육을 하지 말라는 게 아닙니다. 질 높은 보육을 해야 합니다. 교육의 질을 보장하고, 이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질과 수준, 범위를 넓혀가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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