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도 도움 되고 싶어”...의령 공도연 할머니의 마지막 봉사

김준호 기자 2023. 12. 20.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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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부터 50년 넘도록 이웃 위한 봉사에 매달려
박정희~문재인 정권까지 표창만 60차례
생전 뜻에 따라 대학병원에 시신 기증
공도연 할머니. /의령군

“세상과 작별하면 봉사는 다시는 못하겠지만, 장기기증을 해서라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요.”

백발이 성성한 80대 노인은 3년 전 한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3년 후 이 노인은 자신이 내뱉은 말을 지켰다. 일평생 이웃 사랑 실천으로 경남 의령군의 ‘봉사왕’으로 불렸던 공도연 할머니다.

20일 의령군에 따르면 공 할머니는 지난 9월 13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2세. 공 할머니는 숨지면서 1999년부터 써 온 봉사일기만 남겼다. 그러면서 마지막 봉사로 자신의 시신을 기증했다. 고인의 유지를 받든 자녀들은 공 할머니의 시신을 경상국립대학교 의대에 해부학 연구를 위한 실습용으로 기증했다. 할머니에 앞서 지난해 별세한 부군인 박효진 할아버지 시신 역시 함께 해부학 연구를 위해 쓰인다.

공 할머니는 가난의 설움을 겪다가 형편이 나아지기 시작한 30대부터 숨지기 전까지 반백 살 넘게 남을 위한 봉사로 일생을 바쳤다. 할머니가 남긴 봉사 일기장에는 이 같은 글이 남아 있다.

“가난해 보지 못한 사람은 가난의 아픔과 시련을 알지 못할 것입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처럼 잘 살아 보겠다는 강한 신념이 있다면 반드시 방법이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없는 자의 비애감을 내 이웃들은 느끼지 않도록 도와주고 싶습니다”

공도연 할머니가 지난 1999년부터 자신의 봉사를 기록한 '봉사일기' /의령군

공 할머니의 선행은 박정희 대통령부터 문재인 대통령까지 모든 정부로부터 60번 넘게 받은 표창 수만 봐도 알 수 있다.

의령군에 따르면 1970년대 초 새마을운동이 한창일 때 새마을부녀회장으로 선임된 공 할머니는 마을 내 30가구를 이끌고 농한기 소등증대를 위한 사업에 뛰어들어 활약했다. 쌀을 절약하자는 절미(節米)운동을 이끌면서 마을 수입을 늘렸고, 사비를 들여 마을 내 간이상수도 설치와 지붕개량 사업을 했다. 마을 주민들은 할머니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1976년 송산초등학교에 ‘사랑의 어머니’ 동상을 건립하기도 했다.

1985년에는 마을 주민들이 의료시설이 없어 불편을 겪자 대지 225㎡를 매입해 의령군에 기탁하고 이곳에 송산보건진료소가 설 수 있도록 도왔다. 공 할머니는 50년 세월 동안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불우이웃 돕기 성금 기부, 쌀 지원 등을 한해도 거르지 않고 자비로 계속했다고 한다. 긴 세월 누적돼 금액으로는 환산조차 되지 않는다고 한다.

공 할머니는 예순을 넘어서는 경로 봉사에 더 주력했다. 노인복지시설을 찾아 매년 직접 농사지은 쌀로 떡국을 끓여 대접하고, 경로당 청소 등 궂은 일을 도맡았다. 폐지와 공병을 판 돈으로 노인회에 전달했다. 80세가 되던 해에는 35kg에 불과한 노쇠한 몸으로 리어카를 끌면서 나물을 팔고 고물을 주워 번 돈으로 남을 위해 기부했다. 이 같은 선행과 공적으로 지난 2020년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았다. 할머니는 당시 포상금으로 받은 상품권 50만원에 사비 50만원을 보태 마을에 내놨다.

공도연 할머니의 영정과 훈장증. /의령군

공 할머니는 일찌감치 사후 장기기증을 결정했다. 지난 2000년쯤 이미 장기기증 희망 등록을 마쳤다.

공 할머니의 자녀들은 부모님을 보내지 못했다. 병원에서 시신을 연구용으로 사용하고 다시 유족이 거두기까지 2~3년의 세월이 걸린다고 한다.

공 할머니의 장남 박해곤(63)씨는 “발인을 못해 자식으로 마음이 안 좋지만, 이것도 어머니의 뜻이었다”며 “차가운 병원에 누워계시지만, 아버지와 같이 계셔서 그나마 다행이다”고 했다. 딸 박은숙(61)씨는 “봉사는 엄마 삶의 낙이었다. 일찍부터 마음 그릇이 컸다”며 “해부학 연구가 끝나면 선산에 모셔 큰절을 올리고 싶다”고 했다.

공 할머니의 별세 소식은 뒤늦게 알려졌다. 주민들은 “진정 천사가 하늘나라로 갔다”며 고인을 추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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