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창만 60번 받은 '봉사왕' 할머니, '시신 기증'으로 마지막 봉사하고 떠났다
9월 별세… 50년 '사회공헌활동' 표창 수두룩
"가난 설움 잘 알아" 나물·폐지 팔아 '이웃 도와'
절미저축·홀치기사업·지붕개량 등 새마을운동 선도
빼곡히 적었던 '봉사일기'…"모두 보살피지 못해 미안"
자녀들 "발인 못 해 서운하지만, 이것도 엄마 뜻"
"저희 집은 복판 가운데 있기 때문에 어려운 사람, 아픈사람이 차에서 내리고 하는 게 사방에서 다 보이는데 일일이 모두 다 보살피지 못해서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2002. 11. 12, 봉사 일기 중)
1999년부터 써 내려온 '봉사일기' 한 권만을 남겨두고 공도연 할머니가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일평생 이웃 사랑 실천으로 지역에서 '봉사왕'으로 통했던 의령 유곡면 공도연 할머니의 '마지막 봉사'는 시신 기증이었다.
공 할머니가 향년 82세 일기로 지난 9월 13일 별세했다.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자녀들은 할머니 시신을 경상국립대학교 의대로 보냈다. 할머니 시신은 해부학 연구를 위한 실습용으로 기증됐다. 지난해 별세한 남편 고(故) 박효진 할아버지 시신 역시 같은 곳에서 같은 용도로 쓰이게 돼 있어 두 부부는 현재 병원 냉동고에서 마지막 운명을 같이 하고 있다.
할머니의 봉사 인생은 고난의 대한민국 현대사를 관통하며 '반백 살' 넘도록 계속됐다. 박정희 대통령에서 문재인 대통령까지 모든 정부로부터 선행과 공적으로 표창만 60번 넘게 받았다. 2020년에는 사회공헌과 모범 노인 자격으로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기도 했다.
'가난의 설움'은 할머니를 '작은 거인'으로 만들었다. 17살 천막집에서 시집살이를 시작한 공 할머니는 이웃에게 밥 동냥을 할 정도로 가난에 허덕였다.
공 할머니는 "가난해 보지 못한 사람은 가난의 아픔과 시련을 알지 못할 것입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처럼 잘살아 보겠다는 강한 신념이 있다면 반드시 방법이 있을 걸로 생각합니다. 없는 자의 비애감을 내 이웃들은 느끼지 않도록 도와주고 싶습니다"라고 일기에 적었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낮에는 남의 집 밭일과 봇짐 장사를 하고, 밤에는 뜨개질을 떠 내다 팔았다 그렇게 알뜰살뜰 모은 돈으로 구멍가게를 운영하고, 1,000평의 논을 사들여 벼농사를 시작했다.
할머니는 형편이 나아진 30대부터는 본격적인 사회활동에 나섰다. 새마을 부녀회장으로 마을주민들을 독려해 농한기 소득 증대 사업에 매진했다.
공동 홀치기 사업과 절미 저축으로 마을 수입을 늘려갔고, 어려운 이웃을 도왔다. 사비를 들여 마을 간이상수도 설치비와 지붕개량 사업을 하기도 했다. 마을주민들은 할머니에 대한 고마움으로 1976년에 송산국민학교에 '사랑의 어머니' 동상을 건립했다.
1985년에는 주민들이 의료시설이 없어 불편을 겪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대지 225㎡를 구매, 의령군에 기탁해 송산보건진료소 개설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50년 세월 동안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장학금 지원, 불우이웃 돕기 성금 기부, 각종 단체에 쌀 등 물품 기탁 등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본인의 돈을 내놓았다. 부랑자나 거지를 길에서 만나고, 이웃에 누군가 궁핍한 생활을 한다는 소식을 들을 새면 쌈짓돈과 직접 재배한 농산물을 부리나케 챙겨 주변 사람을 도왔다.
공 할머니는 물질적 기부는 물론이고 시간을 들여 직접 행동으로 자원봉사 활동에도 나섰다.
노령층을 대상으로 틈날 때마다 이들을 방문해 청소하고 말동무가 되어 음식을 대접했고, '후손에게 오염된 세상을 물러줘서는 안 된다'는 생활신조를 바탕으로 동네 환경정화 활동에 솔선수범했다. 탁월한 리더십으로 다수의 사회단체장을 맡아 동네 여성들을 모아 한글을 깨치고, 자전거를 가르친 일화는 유명하다.
수십 년간 빼곡히 적혀있는 봉사일기가 증명하듯 할머니 봉사활동은 세상을 뜨기 직전까지 계속됐다. 80세 되던 해, 35kg의 몸으로 리어카를 끌면서 나물을 팔고, 고물을 주어 번 돈으로 기부를 했다.
평생 남을 위해 헌신한 삶을 살고, 죽어서까지 '시신 기증'이라는 마지막 봉사활동을 하고 공 할머니는 세상과 작별했다. 하지만 자녀들은 아직 부모님을 보내지 못했다. 시신을 병원에서 연구용으로 사용하고 유족이 거두기까지 이삼 년이 세월이 걸리기 때문이다.
장남인 박해곤(63)씨는 "발인을 못 해 자식으로 마음이 안 좋지만, 이것도 어머니의 뜻이었다. 차가운 병원에 누워계시지만, 아버지와 같이 계셔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딸 박은숙(61)씨는 "봉사는 엄마의 삶의 낙이었다. 일찍부터 마음 그릇이 컸다. 해부학 연구가 끝나고 선산에 어서 모셔 큰절을 올리고 싶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할머니는 일기장에 "제가 가난 속에서 살아왔으므로 가난한 사람을 돌보아 주고 싶었고, 어려울 때 같이 힘을 합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더욱 더 열심히 일하고 봉사하고 싶었습니다"라는 글로 자신의 인생을 반추했다. 그리고 "물 아껴 쓰고, 환경 오염시키지 말고, 젊은 사람들이 자식 2명은 낳아야 할 건데"라는 말을 돌아가시기 전에 자주 말씀하셨다고 유족들은 전했다.
뒤늦게 할머니 별세 소식을 접한 군민들은 "진정한 천사가 하늘나라로 갔다", "죽어서도 큰일을 하시는 진정한 어른이다", "군민 대상을 천 번 받아도 모자란다" 등의 반응을 나타내며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이동렬 기자 d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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