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아칼럼] 중위험 중수익이라는 사탕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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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가 2배로 올라도 수익률은 한 자릿수로 고정되고, 주가가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손실이 무제한으로 커지는 상품이 과연 투자자를 위한 상품일까요? 그럴듯한 상품처럼 보이게 만든 발행회사와 높은 수수료를 챙기는 판매회사를 위한 상품이죠."
과거 은행에서 프라이빗뱅커로 일했던 한 재테크 전문가가 수조 원대 손실이 예상되는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사태를 지켜보면서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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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폭락 없으면 안전" 대신
손실 가능성 알리고 팔아야
고객도 최악상황 질문부터
"주가가 2배로 올라도 수익률은 한 자릿수로 고정되고, 주가가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손실이 무제한으로 커지는 상품이 과연 투자자를 위한 상품일까요? 그럴듯한 상품처럼 보이게 만든 발행회사와 높은 수수료를 챙기는 판매회사를 위한 상품이죠."
과거 은행에서 프라이빗뱅커로 일했던 한 재테크 전문가가 수조 원대 손실이 예상되는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사태를 지켜보면서 한 말이다. 그의 말대로 ELS는 투자자가 받을 수 있는 최대 수익 한도는 정해져 있지만, 최대 손실 한도는 정해져 있지 않은 상품이다. 특정 개별 주식이나 각 국가의 주가지수인 기초자산 가격이 일정 수준(50~65%) 이하로 하락하지만 않는다면 예금의 2~3배 수익을 챙길 수 있지만, 일정 수준 이하로 하락할 경우 손실은 무제한으로 확대될 수 있다. 기초자산 가격 급락이 없다면 6개월 단위로 조기 상환이 가능하지만, 조기 상환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보통 3년인 만기까지 보유해야 한다. 그 사이 기초자산 가격 하락 폭이 커져도 매도를 통해 손실 폭을 줄이거나 추가 매입으로 평균 매입단가를 낮출 수도 없다. 할 수 있는 일은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된 채 만기를 기다리는 것뿐이다.
이런 고위험 상품인 ELS가 한국에서 유독 인기를 끄는 이유는 '중위험 중수익' 상품이라는 그럴듯한 포장 덕분이다. 투자자는 위험이 적고 수익을 많이 낼 수 있는 상품을 원한다.
금융회사는 이런 심리를 이용해 위험이 적고 수익이 많은 것처럼 보이는 상품을 만들어낸다. ELS는 기초자산 가격이 일정 수준으로 떨어지지 않는다면 은행예금보다 높은 수익을 안겨준다는 점에서, 위험이 적고 기대 수익은 큰 상품처럼 보인다. 판매수수료가 높아 판매사들도 선호한다. 판매사 직원들은 "홍콩 주가가 반 토막이 나지만 않으면 수익을 낼 수 있다" "설마 주가가 50% 폭락하겠느냐" "지금까지 손실 난 적이 거의 없다"고 상품 설명을 한다. 투자자들, 특히 금융 상식이 부족한 노령층은 '중위험 중수익'이라는 사탕발림에 뭉칫돈을 ELS에 넣었다.
현재 문제가 되는 ELS는 2021년 상반기 판매된 것들인데, 당시 홍콩H지수는 1만~1만2000대를 오르내렸다. 홍콩H지수는 현재 5500~5600대로 3년 전에 비해 반 토막이 났다. 설마 반 토막이 날 리가 있겠느냐는 은행 직원의 말을 믿었던 투자자들에게는 설마가 현실이 된 셈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내년 상반기 중 홍콩H지수 ELS 만기 도래 규모는 9조2000억원에 달한다.
ELS가 국내에 도입된 지 20년이 다 되어가고, ELS 위기가 주기적으로 되풀이됐으며, 그동안 반복 가입으로 수익을 낸 투자자들이 많다는 점에서 투자자들도 위험성을 몰랐다고 잡아떼기만 할 일은 아니다. 복잡한 상품임을 알면서도 저금리의 돌파구로 ELS를 택한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금융사가 책임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투자자보호제도에 따른 동의서를 받았다는 것이 면책특권도 아니다. 시중은행 ELS 판매액의 절반가량이 60대 이상 투자자에게 쏠려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고령자에게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작다'고 강조하기 전에 주가가 기준선 아래로 떨어지면 원금 손실이 발생할 수 있고, 그 손실은 최대 100%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설명했는지부터 돌아봐야 한다.
문제가 불거지자 은행권은 ELS 판매를 중단했다. 다시 ELS 판매를 재개할 때는 중위험 상품이 아니라 고위험 상품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투자를 권유해야 한다. 투자자들 역시 복잡한 상품에 투자할 때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실현됐을 때 입을 손실부터 물어야 한다.
[이은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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