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 ‘신파 금수저’의 담백한 척…‘노량: 죽음의 바다’
[영화감]은 정보는 쏟아지는데, 어떤 얘길 믿을지 막막한 세상에서 영화 담당 기자가 살포시 제시하는 영화 큐레이션입니다. ‘그 영화 보러 가, 말아’란 고민에 시사회에서 먼저 감 잡은 기자가 ‘감’ ‘안 감’으로 답을 제안해볼까 합니다. 매주 연재됩니다.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20일 개봉)엔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마라”란 이순신 장군의 최후 한마디가 나오지 않습니다. 19일 인터뷰로 만났던 김한민 감독은 이순신의 유언 장면을 “뺄까도 생각했다”고 합니다. 결국 유언 장면은 들어갔지만, “싸움이 급하다. 내 죽음을 내지 말라”는 이순신(김유석)의 대사는 어딘지 심심합니다. 귀를 메우는 신파조의 음악도 없고, 병사들의 울음바다도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억지 신파가 빠지고 담백해졌다는 평가가 주를 이룹니다. 과연 그럴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영화는 신파적입니다. 한반도 최고의 영웅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전투이자 그의 최후가 담겼는데 슬프지 않을 수 없습니다. 태생부터 울음을 부르는 ‘신파 금수저’라고나 할까요. 더구나 1700만 관객을 ‘신파 바다’에 빠뜨린 김 감독이 충무공의 최후를 마냥 흘려보낼 리 없습니다. 다만 대놓고 신파는 영화의 흥행에 독이란 사실을 명심하고, 기교적으로 관객에게 숙연함과 먹먹함을 안깁니다.
병사들을 독려하기 위한 충무공의 ‘북소리’가 그의 최후 속에서 계속 울리는 것이 비장의 무기입니다. 북소리가 울릴 때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울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됩니다. 2시간 가까이 이어지던 숙연한 긴장감이 여기서 풀려버리는 거죠.
이는 이순신 장군이 북을 들기까지 빌드-업을 해놨기 때문입니다. 3국 병사들의 비참한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듯 차례로 담다가 이순신 장군으로 넘어가는 롱-테이크 이후, 이순신의 시점에서 전쟁의 참혹한 모습을 비춥니다. 전장의 중심에 이순신이 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이순신의 심정을 관객들이 느껴보라는 의도죠. 그리고 나서 이순신 장군은 북을 듭니다. 이후 이순신이 북을 두드리는 장면과 북과 북채가 닳아진 장면이 반복됩니다. 이러한 사전 작업 덕분에 북소리가 곧 이순신의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이고, 병사를 아끼는 마음이며, 이 전쟁을 승리해야 한다는 결의로 느껴집니다. 김 감독 역시 “북소리는 이순신의 대의가 집약됐다”고 했죠.
북치는 장면엔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김 감독에 따르면, 촬영 현장에서 “북을 너무 많이 치는 것 아닙니까?”라는 목소리가 나왔다고 해요. 이에 김 감독은 이렇게 답했답니다. “감독의 촉이란 게 있잖아. 북소리는 절대 과하지 않을 거야.”
이순신 장군의 죽음을 묘사하는 방식은 ‘명량’과 ‘한산: 용의 출현’ 사이에 위치한 영화의 절충적 성격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명량’은 역대 최대 관객을 동원한 작품이지만, 노골적인 신파 코드는 비판을 불렀습니다. 반대로 기름기 쫙 뺀 ‘한산’은 흥행 면에선 아쉬웠지만(물론 코로나19 영향이 컸습니다.), 비평적으로는 높은 평가를 받았죠. 김 감독은 신파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 감동을 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성취하려고 합니다. 그렇지만 신파를 절제해 담백하다는 주장은 ‘눈 가리고 아웅’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전술 한대로 조리법의 차이일 뿐, 나트륨 함량은 비슷하단 거죠.
영화의 이야기 전개 방식은 ‘한산’과 유사합니다.(비교해보세요.) ‘노량’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에서 철군하라”는 유언을 시작으로 전쟁 현황이 게임 오프닝처럼 펼쳐집니다. 이어 이순신 때문에 발칵 뒤집힌 왜구들이 동분서주하죠. 이번 영화에선 고니시 유키나가(이무생)의 전략에 따라 그의 심복(이규형)이 명군의 진린 도독(정재영)과 아군인 시마즈 요시히로(백윤식) 사이를 발바닥에 땀 나게 다닙니다. 왜구들의 상황이 얼추 정리되면, 드디어 이순신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첩보전이 지루해질 때쯤 드디어 대망의 전투가 펼쳐집니다.
100분간 이어지는 해상 전투 장면은 뛰어납니다. 밤사이 벌어진 노량해전처럼 칠흑 같은 검은 바다에서 3군이 움직입니다. 특히 원경과 근경을 적절하게 활용한 촬영이 돋보입니다. 유례없는 난전이었던 노량해전의 참상을 보여주면서, 공중에서 함선들의 움직임을 담으며 전투 지형을 쉽게 파악할 수 있게 했죠. ‘한산’에서 맹활약한 거북선은 이번에도 왜군 함선을 장쾌하게 으스러뜨립니다. 본래 노량해전엔 거북선이 쓰이지 않았지만, 감독의 영화적 장치에요. 실감 나는 해전 장면은 물 위에서 찍은 게 아닙니다. 강원도 강릉 아이스링크에 3000평 규모의 세트를 짓고 실제 크기의 판옥선을 만들었습니다.
‘노량’의 이순신 장군은 어느 때보다 고독합니다. 모두가 끝났다고 하는 전쟁을 ‘완전한 항복’을 받기 위해 홀로 전진하기 때문이죠. 조선군과 왜군, 명나라군이 엉겨 붙은 아비규환의 전장 속에서도 이순신이 외딴 섬처럼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비장함이 2시간 33분이란 러닝타임 내내 지속되며 숙연함을 강요한다고 느낄 관객도 있을 겁니다.
영화는 ‘명량’과 ‘한산’의 절충안 같습니다. 감독은 영리하게도 ‘명량’의 대놓고 신파와 ‘한산’의 건조함을 멀리했습니다. 반대로 ‘명량’의 보편적 휴머니즘과 ‘한산’의 간결한 서사는 살리려고 했죠. 영화 ‘노량’은 ‘명량’과 ‘한산’을 합해 나눈 값 같아요. 인위적인 절충안을 보고 익숙한 재미와 감동을 느낄지, 기시감과 거부감을 느낄지는 관객의 몫입니다.
<제 결론은요> ‘안 감’
(‘명량’+‘한산’)÷2=‘노량’. 누군가에겐 장점을 모은 작품, 다른 누군가에겐 인위적인 절충안.
독창지수 ★★
순수재미 ★★★
흥행감각 ★★★★
종합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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