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길 속 절규…“길에서 생 마감한 아이들, ‘특별법 통과’ 마지막 기회”
특별법 통과 호소하며 “안전한 대한민국 염원”
(시사저널=정윤경·강윤서 기자)
꽁꽁 언 땅에 두 무릎을 꿇고 배를 깔고, 이마를 눌러 절을 한다. 자리에서 일어나 다섯 걸음을 걷고 다시 눈길에 납작 엎드린다. 오체투지(불교에서 행하는 큰 절의 형태)에 나선 '이태원 참사' 유가족의 모습이다.
12월20일 오전 10시29분 여의도 국회 앞. 영하 7도 강추위를 뚫고 10·29이태원참사특별법(특별법)의 본회의 통과를 위해 50여 명의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종교인이 모였다.
이날 특별법의 향방을 알 수 있는 임시국회 본회의가 열린다. 이들은 18일부터 사흘 간 특별법 통과를 위해 2.5km에 달하는 국회의사당 둘레길을 돌며 오체투지를 해왔다.
"추운 바닥서 생을 달리한 애들 비하면"
10·29이태원참사유가족협의회(유가협)와 10·29이태원참사시민대책회의, 4대 종교 인사 등 48명은 오체투지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유가족 대표로 나선 문성철(1992년생 희생자 문효균씨 아버지)씨는 "오늘은 작년 49재만큼 굉장히 춥다"며 운을 뗐다. 이어 "저희가 추위에 떪으로써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기를 염원한다. 오늘 국회에서 여야 합의를 봐서 특별법이 통과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문씨의 발언이 끝나자 오체투지를 알리는 북소리가 '둥'하고 크게 울렸다. 유가족들은 북소리에 맞춰 찬 바닥에 몸을 뉘었다. 그 상태로 5초를 기다렸다. '둥둥' 북소리에 유가족이 일어나 다섯 걸음을 전진했다. 눈길에 발이 푹푹 꺼지기도 했다. 엎드렸다 일어나는 유가족의 이마엔 눈과 돌가루가 덕지덕지 붙었다. 행진 도중 속이 훤히 비치는 얇은 방진복이 찢어지기도 했다.
이들에게 눈바람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문성철씨는 "날씨는 상관없다. 아이들의 명예를 되찾기 위해 나섰기에 전혀 힘들지 않다"고 전했다. 이어 "오송 참사 때도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며 "대한민국 젊은 청춘들이 안전한 사회에서 살 수 있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송진영(희생자 송채림씨 아버지)씨도 떨리는 목소리로 "추운 길바닥에서 생을 마감한 우리 아이들을 생각하면 전혀 힘들지 않다"고 전했다. 그는 "올해 안에 특별법이 상정되려면 오늘이 마지막 기회"라며 "28일 본회의는 김건희 특검과 대장동 특검이 있어서 특별법이 상정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시간쯤 지나 '여의도 벚꽃길'에 다다랐다. 올봄에 벚꽃 잎이 휘날렸던 이곳에는 2cm 가량의 눈이 쌓였다. 유가족은 잠시 행진을 멈추고 국회 본관을 바라보면서 구호를 외쳤다. "윤석열 대통령은 사죄하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즉각 물러나라", "김진표 국회의장은 특별법을 상정하라"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들은 얼어붙은 목장갑을 갈아 끼우며 다시 행진에 나섰다. 언 바닥에서 일어날 땐 곳곳에서 신음 소리가 나왔다. 찬바람에 눈이 시려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영하의 날씨에도 양말로만 눈길을 걸으며 맨손으로 땅을 짚은 유가족도 있었다.
20일 '마지막 기회'…"폐기되면 1년 노력 물거품"
특별법은 6월30일 국회 본회의에서 야4당이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한 뒤, 8월31일 소관 상임위원회인 행정안전위원회를 통과했다. 이후 법제사법위원회 심의 기간을 채우고, 지난달 29일 본회의에 자동 부의된 상태다.
이 안건은 법사위로 넘어간 뒤 여당 반발로 논의가 멈췄다. 여당은 지난 11일 진상조사 내용을 빼고 참사 피해자 등에 대한 보상·지원에 초점을 맞춰 별도 특별법을 발의했다.
여야는 임시국회에서 안건 처리를 위해 본회의 날짜를 12월20일과 28일, 1월9일로 잡았다. 이 중 28일은 더불어민주당이 공언해 온 '쌍특검법'(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특검, 대장동 특검) 처리가 예고돼 있다. 이 때문에 유가협은 실질적으로 20일 본회의에서 특별법이 처리돼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진창희(2001년생 희생자 진세은씨 고모)씨는 "특별법이 폐기되면 지난 1년간 저희 노력이 물거품이 된다"며 "점점 증언자가 줄어들고 기억은 왜곡되며 자료까지 사라질까 봐 너무 불안하다"고 호소했다.
이어 "민주당이 오늘 본회의에서 여야 합의로 특별법을 통과시키기로 했지만 마음을 놓을 수 없다"며 "야당 단독으로 통과되면 대통령 거부권이 예상된다. 그럼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라고 눈시울을 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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