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또 지자체 개발 비리… 감사원, 전 인천 남구청장 검찰 수사 요청
374억원 손실 지자체가 떠안아
인천 미추홀구(옛 남구) 도심 개발 사업에서 민간 사업자에게 374억원의 부당 이득을 안겨준 혐의(업무상 배임)로 감사원이 박모 전 구청장을 검찰에 수사 요청했다고 20일 밝혔다. 이 374억원은 모두 미추홀구가 부담해야 하는 돈으로, 궁극적으로는 국민들과 미추홀구 주민들이 낸 세금이다.
감사원에 따르면, 미추홀구는 2011년부터 당시 인천주안초등학교와 그 일대 부지를 주상복합아파트 등으로 재개발하는 ‘도시개발1구역 복합개발사업’을 추진했다. 미추홀구가 당초 설계한 사업 구조는, 미추홀구의 재정 상황이 열악하다는 점을 고려해서 100% 민간 사업자의 돈으로 재개발을 진행하는 것이었다. 미추홀구가 선정한 민간 사업자로부터 미리 1000억원 이상의 돈을 받고, 이 돈으로 도시개발1구역 내 토지·건물을 사들여 건물을 철거한 뒤 민간 사업자에게 토지를 넘겨주면, 민간 사업자는 이 토지에 주상복합아파트 등을 지어 분양해 수익을 올리는 것이다. 이런 구조에서는 미추홀구가 아파트 분양 수익을 직접 가져갈 수는 없지만, 미추홀구가 부담하는 비용도 없다는 이점이 있었다.
미추홀구는 2011년 11월 이런 사업 구조를 공개하고 민간 사업자를 찾았다. 여기에 A사가 단독으로 응찰해, 미추홀구는 이듬해 3월 A사와 1차로 협약을 체결했다. 이때 미추홀구는 A사로부터 도시개발1구역 토지·건물을 사들일 돈과는 별도로 ‘협약 이행 보증금’ 50억원을 미리 받기로 했다. A사가 사업을 제대로 추진할 것이라는 점을 보증받기 위한 돈으로, A사가 이 돈을 제때 내지 않으면 미추홀구는 협약을 해제하고 다른 민간 사업자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A사는 내야 하는 보증금의 10%인 5억원만 냈다. 그런데도 미추홀구는 A사로부터 나머지 보증금 45억원을 받으려 하지도, 그렇다고 A사와의 협약을 해제하려 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2015년 7월 A사가 ‘이 사업을 진행하느라 이미 47억원 이상을 썼으니, 이것을 보증금을 낸 것으로 쳐 달라’고 요청하자 이를 받아줬다. 결국 A사는 1000억원이 넘게 투입되는 사업을, 미추홀구에 단 5억원만 낸 상태에서 계속 진행할 수 있게 됐다.
이 사업의 핵심은 A사가 미추홀구가 토지를 마련할 대금을 미리 주고, 미추홀구가 이 돈으로 토지를 마련해 A사에 준다는 내용의 ‘용지 매매 계약’이었다. 미추홀구와 A사는 2015년 2월 용지 매매 계약을 체결하면서, A사가 미추홀구에 1049억원을 주고(나중에 1101억원으로 변경), 이 돈으로도 미추홀구가 사업 대상 토지를 다 마련하지 못할 경우 추가로 필요한 자금도 A사가 대기로 했다. 민간 사업자가 비용도 수익도 모두 부담하는 사업이었으므로 당연한 계약 내용이었다.
그러나 A사 측은 이 계약을 체결한 지 3개월여 만인 2015년 5~6월, 미추홀구의 사업 담당 공무원에게 ‘초과 사업비 부담 의무를 없애주지 않으면 우리가 대출을 받을 수가 없다’고 압박했다. 미추홀구가 1101억원으로 사업에 필요한 토지·건물을 다 사들이지 못할 경우 발생하는 추가 비용을 모두 미추홀구가 부담하라는 요구였다. 계약의 핵심 내용을 바꾸자는 것이어서, 미추홀구가 이를 받아들여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이 공무원은 과장과 국장, 박 전 구청장에게 ‘초과 사업비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A사의 초과 사업비 부담 의무를 없애주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이 공무원은 이 사업 관련 토지·건물 매입에 얼마가 들어갈지를 감정평가기관 등 전문가에게 물어 추산해보지도 않은 상태였다. 객관적인 근거가 없는 예측이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과장과 국장은 이 공무원이 올린 계약 변경안을 그대로 결재해줬다. 감사원이 조사해 보니, 이들은 ‘담당 공무원이 관련 업무를 오래 했으니 잘 알겠지’라고 생각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박 전 구청장도 초과 사업비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임의로 판단하고 2015년 7월 계약 변경안을 결재해줬다. 박 전 구청장은 설령 초과 사업비가 발생하더라도 ‘노후 초등학교와 전통시장을 재개발하는 사업이니 공익성이 있지 않느냐’며, 미추홀구가 부담하면 그만이라고도 판단했다고 한다.
이후 미추홀구가 마련해준 토지에 A사는 864세대짜리 주상복합 아파트를 신축했고, 지난해 9월까지 아파트와 상가 입주가 이뤄졌다. 하지만 미추홀구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은 A사로부터 받은 1108억원(이자 포함)을 374억원 초과한 1482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미추홀구는 A사와 용지 매매 계약을 체결하면서 “이번 사업은 용지 조성, 사업비 모두 민간 사업자가 100% 부담하는 것이 특징이며, 미추홀구는 재정적 부담이 없어 지방정부 재정에 악영향을 끼치는 기존 재개발 사업과 차별점이 있다”고 홍보했었다. 그러나 박 전 구청장 시절 A사와의 계약 내용을 중간에 바꾼 탓에, 미추홀구는 이 사업으로 오히려 374억원의 손실을 떠안게 됐다.
미추홀구는 박 전 구청장이 퇴임한 뒤인 2020년부터 A사와 소송전을 벌이고 있으나, 1·2심에서 모두 패소했다. 오히려 관련 소송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되면, A사에 ‘선수할인금’ ‘지연손해금’ ‘토양 정화 비용’ 등으로 264억원 이상을 물어줘야 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감사원은 박 전 구청장이 A사의 초과 사업비 부담 의무를 없애줘 미추홀구 재정에 손해를 끼쳤다며 지난 9월 박 전 구청장에 대한 수사를 검찰에 요청했다고 밝혔다. 미추홀구에는 손해액이 확정되는 대로 박 전 구청장 등에게 이 돈을 받아낼 방안을 마련하라고 했다. 다만 당초 A사의 초과 사업비 부담 의무를 없애주자고 제안한 담당 공무원에 대해선 징계 없이 ‘주의’ 처분만을 내렸다. 2015년에 발생한 일이어서, 법상 징계를 줄 수 있는 시효인 5년이 지났기 때문이다. 감사원 관계자는 “박 전 구청장이나 담당 공무원이 A사로부터 경제적 대가 등을 약속받거나 받았는지 등은 확인할 수 없었다”며, “검찰의 강제 수사로 밝힐 수밖에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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