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 가명처리 소송' SKT 1,2심 패소…"법이 혼선 초래"
"가명정보를 활용한 산업을 키우겠다고 하면서 다른 한 축으로는 개인이 자신의 개인정보를 가명화하는 걸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지금의 법은 가명정보 활용 관련 모순된 태도를 취한다."
SK텔레콤이 개인정보를 가명처리하지 말 것을 요구한 소비자들이 제기한 소송 1, 2심에서 잇따라 패소한 데 대한 한 대형 로펌 관계자의 평가다. 개인정보법이 가명처리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취한 탓에 기업과 소비자 사이의 분쟁이 빈발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20일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및 법조계에 따르면 가명정보 제도는 2020년 8월 도입 후 활용 수요가 계속 증가해왔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과 같은 통신사나 은행·신용카드사 등 금융사처럼 수천만 이용자들의 개인정보가 집적된 업종일수록 가명정보 활용의 수요는 컸다.
가명정보란 이름, 주민등록번호, 성별, 나이 등 개인정보에서 일부를 삭제하거나 일부·전부를 대체하는 방법으로, 추가 정보가 없다면 특정 개인을 알아볼 수 없도록 처리한 정보를 일컫는다.
모든 정보가 드러난 개인정보만큼은 아니더라도 가명정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특정 지역·성별·직업군 등 세부화된 타깃 집단을 대상으로 한 특화 마케팅이나 맞춤형 광고가 가능해진다. 이 점에서 가명정보는 식별가능성을 아예 없애서 활용가치가 없는 익명정보와 또 다르다.
개인정보의 가명처리와 이 과정에서 산출된 가명정보를 잘 활용하면 공공·민간의 서비스·제품의 고도화가 가능해진다. 올 7월 정부가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가명정보 활용 확대방안'을 논의한 것도 이같은 가명정보의 가치에 주목해서다. 자율주행차, IoT(사물인터넷) 기기, CCTV(폐쇄회로TV) 등을 활용한 유망기술의 개발·시장화와 바이오·헬스케어 제품·서비스의 고도화, 각종 공공·민간 가명정보 결합을 통한 신(新)공공서비스 개발 등의 중심에는 모두 가명정보가 있다.
문제는 가명처리 과정에서 정보주체와 가명정보 처리·활용자 사이의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에 대해 면밀한 고려가 없었다는 것이다. 2020년 8월 개인정보법을 포함한 소위 데이터3법의 개정으로 가명정보 활용이 합법화되면서 참여연대·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등 시민단체들이 문제를 제기했다. 개인정보를 가명처리하는 과정에서도 소비자 등 정보주체의 동의가 있어야 하는데 이같은 동의절차 없이 무단으로 가명처리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었다.
최경진 한국인공지능법학회장은 "개인정보법에는 가명정보(가명화된 정보)를 처리할 때 통계 작성, 과학적 연구, 공익적 기록보존 등 목적의 경우에는 정보주체의 동의를 받지 않아도 된다고 규정한다"며 "그런데 개인정보의 가명처리 과정에 대해서는 정보주체의 동의를 얻지 않아도 된다는 규정이 없다. 여기서 SK텔레콤 사건과 같은 문제가 터진 것"이라고 했다. 가명처리 과정에서도 정보주체 동의 의무를 면제하는 조항이 명문화됐더라면 이번 SK텔레콤 사건처럼 정보주체와 기업간 소송전까지 불거질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한 대형 로펌의 A고문은 "가명정보는 개인정보 침해 가능성이 매우 낮기 때문에 당연히 가명처리 과정에서 정보주체의 동의는 불필요한 것으로 간주돼야 했다"면서도 "과거 개인정보법 개정 과정에서 정보주체를 보다 두텁게 보호하자는 의견이 힘을 얻으며 정보주체에게 가명처리 정지요구권도 포함한다는 내용이 개인정보법 해설서에 기재됐다"고 했다.
실제 SK텔레콤도 이날 항소심 패소 후 "법의 취지는 가명정보 처리를 통해서 개인정보도 보호하고 데이터 산업도 발전시키자는 것"이라며 "개인정보의 안전한 활용이라는 가명정보 제도의 도입 취지와 안전조치로서의 가명처리 성격이 충분히 고려되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고 했다. 가명정보를 활용할 길을 열어뒀음에도 정작 개인정보의 가명처리 과정에서는 갈등소지를 남긴 게 아쉽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자신의 정보를 가명처리하지 말라는 정보주체의 요구는 SK텔레콤에서만 그치지 않을 수 있다. SK텔레콤의 경우를 계기로 개인정보를 가명처리하거나 이미 가명처리된 가명정보를 활용하는 공공·민간의 기관·기업에 불확실성이 커진 게 아니냐는 우려다.
최 회장은 "개인정보법은 개인정보 분야의 일반법이자 기본법"이라며 "(개인정보법상의 모호함이) 여타 산업·기업은 물론이고 공공 데이터의 가명정보 활용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황국상 기자 gshwang@mt.co.kr 김승한 기자 winon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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