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박사 학위도 있는 한의과대 학장의 꿈…"한방·양방 '통합 의학'"
한의학 최초 의학한림원 정회원 올라
천연물 항암제 기업 '재인알앤피' 설립
"한의학을 기본으로 한 '통합 의학'을 구현하고 싶습니다. 한방과 양방 두 분야는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큰 시너지를 낼 수 있어요."
최근 경희대 한의과대 학장으로 취임한 고성규 교수는 20일 머니투데이와 만나 이 같은 포부를 밝혔다. 고 학장의 지난 수십년의 삶은 한방과 양방의 통합이라는 꿈과 궤를 같이 한다. 고 학장은 한의학 박사 외에도 의학 박사, 신약 개발에 필수인 분자 생물학과 종양 생물학 박사 학위를 모두 받은 이력이 있다. 2008년에는 미국 암치료 전문병원인 앰디앤더슨에서 초빙교수로 근무했고, 작년에는 의학 관련 석학으로 인정받아야만 회원으로 이름을 올릴 수 있는 '대한민국의학한림원'과 '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으로 선출됐다. 모두 한의학계 최초다.
고 학장은 "한의학과 진학은 한의사 집안이라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고 웃었다. 이어 그는 "이른 나이에 교수가 되고 연구를 하는데 '사람에 대한 연구가 재밌구나' 느끼게 됐다"며 "이때 의학 박사과정(서울대 암연구소 연구원)을 밟아야겠다 생각해 당시 소속됐던 상지대학교에 '이 기간 동안 병원 월급은 받지 않고 일(진료)하겠다'고 제안했고, 이 제안을 받아주셔서 배움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고 학장이 한방과 양방을 결합한 '통합의학'을 실현할 적임자가 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서울대 암연구소에서의 경험은 항암제 개발의 씨앗이 됐다. 이후 고 학장은 20여년간 항암제 연구를 이어왔고, 이를 바탕으로 2017년 천연물 항암제 개발기업 ㈜재인알앤피를 설립했다. 주력 파이프라인은 SH003이다. 고 학장은 "일반 항암제를 계속 쓰다보면 내성이 생겨 효과는 제한적인데, 독성은 계속 증가하는 부작용이 있다"며 "SH003은 내성과 관련한 단백질 발현을 크게 줄여주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항암 효능이 검증된 당귀보혈탕을 재구성한 천연물질이 근간인 만큼 자체 항암 효과도 있다는 설명이다.
고 학장은 "흔히 의약품에 '어디를 차단해 어떤 효과가 나오는' 원리를 바라는데, 천연물 의약품은 그러지 않아 공격을 많이 받는다"며 "하지만 우리 몸은 조화롭게 통합돼 있다. 하나가 막히면 다른 곳에서 작동해 그 동안 나온 항암제들은 생존율을 획기적으로 늘리지 못했다"고 반박했다. 이어 "약도 독해 치료 과정에서 환자를 고통스럽게 했다"며 "반면 천연물 의약품은 독성이 적어 치료 과정에서의 환자의 고통을 경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암 말기 환자에 대한 한의학 치료는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흔히 이뤄지는 방식이다.
현재 SH003은 단독·병용 요법으로 모두 개발되고 있다. 고 학장은 "항암제의 경우, 더 이상 쓸 치료제가 없는 사람을 임상에 들어오게 하기 때문에 처음엔 병용으로 시장에 진입하고 2차, 1차 순으로 서서히 등급이 올라간다"며 "1상에서 단독의 유효성을 보인 만큼, 병용 임상 데이터가 쌓이다보면 언젠간 단독 치료제로 승진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개발에서도 유의미한 진전을 보이고 있다. 고 학장은 "경구용 천연물 항암제로 국내에서 처음으로 임상시험계획(1상)을 승인받고 끝냈다"며 "임상 1상을 진행하면서 환자 40여명에 투약까지 이뤄진 국내 유일한 사례(경구용 천연물 항암제)"라고 강조했다. 재인알앤피는 1상에서 SH003의 안전성, 유효성도 확인했다. 2상은 내년 하반기 한국, 2025년 미국에 시험계획을 내는 게 목표다. 2상이 완료되면 긴급 사용승인 신청을 통한 상용화(2027년 목표)도 추진하겠단 계획이다.
경희대 한의과대 학장으로, 제이알앤피 대표로 궁극적으로 그가 추구하는 바는 같다. 서두에 언급한 환자를 위해 통합의학을 구현하는 것이다. 고 학장은 "엔디앤더슨,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암 센터처럼 전 세계 암 환자들이 치료를 위해 한국을 찾을 수 있도록 일조하고 싶다"며 "이를 위해 전 세계 암 환자들이 찾는 획기적인 신약을 개발하고 교류가 제한적이었던 한방병원과 의료원 간 시너지를 적극 추구하는 등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의과대와 의과대를 함께 둔 대학이 국내 5곳에 불과한 이점도 살려볼 계획이다.
박미리 기자 mil05@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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