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황 끝 위기'…금융지주 인사, '안정'에 쏠린 이유

금융권 계열사 CEO 변화 폭 최소화
지주 조직 규모도 축소…내부통제 강화

올해도 역대 최대 규모의 이자이익을 거두며 호황을 누린 금융권이지만 금융권 안팎에선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고물가와 고금리 등으로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대내외 경제 불확실성도 확대되고 있어서다.

이에 금융권은 내년 회사를 이끌 경영진 인사와 조직개편에서 안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아울러 반복되는 금융사고로 내부통제 강화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어 이에 발맞춘 움직임도 있다.

계열사 CEO 연임 대세…KB금융, 상대적 변화 폭 커

금융권에 따르면 KB금융은 이달 말 임기가 만료되는 8개 계열사 중 6개 계열사의 CEO를 교체했다. 신임 CEO 후보가 추천된 곳은 △KB증권(WM부문) △KB손해보험 △KB자산운용 △KB캐피탈 △KB부동산신탁 △KB저축은행 등이다.

이 중 라임·옵티머스자산운용 펀드 불완전판매 사태 관련 중징계를 받은 박정림 KB증권 대표(WM부문)가 자리에서 내려오면서 이홍구 현 KB증권 WM영업총괄본부 부사장이 자리를 꿰찼다.

KB금융은 계열사 경영진 인사를 단행한 주요 금융지주 가운데 CEO 변화 폭이 가장 크다. 지난해와 비교해도 상당 수의 계열사가 교체됐다. 지난해의 경우 임기가 만료되는 8개 계열사 중 7곳이 기존 CEO 체제를 유지했다. 올해는 그 동안 KB금융을 이끌었던 윤종규 전 회장이 물러나고 양종희 회장이 지휘봉을 잡은 만큼 새 인물이 등장했다는 평가다. ▷관련기사: 양종희 호 KB금융 재편 마무리…변화·안정 둘다 택했다(12월14일)

KB금융과 리딩 금융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신한금융은 안정적인 체제를 유지하는데 집중하는 모습이다. 이미 지난해 인사에서 그룹 주요 계열사인 은행과 카드, 증권과 라이프(보험) 등의 CEO를 교체한 만큼 올해는 임기 만료 계열사 CEO 9명을 모두 연임하기로 했다.

하나금융도 변화 폭은 크지 않다. 임원후보추천위원회에선 하나캐피탈과 하나저축은행 CEO는 연임, 하나생명보험만 남궁원 현 하나은행 자금시장그룹 부행장을 대표이사로 신규 선임했다.

관계사 중에선 하나자산신탁·하나에프앤아이·하나금융티아이·하나펀드서비스·하나벤처스 등의 CEO는 연임하기로 했다. 하나대체투자자산운용 신임 사장으로 정해성 하나대체투자자산운용 부사장을 선임했고, 하나손해보험 신임 사장으로 배성완 전 삼성화재 부사장을 영입한 점이 눈에 띄는 정도다.

우리금융은 올 3월 임종룡 회장이 취임하면서 계열사 CEO 전원 교체 등 대규모 조직개편을 단행한 만큼 이번에는 핀셋형 개편으로 움직임을 최소화했다.

조직 안정 속 슬림화…내부통제 강화

금융지주들이 계열사 CEO 변화 폭을 최소화 한 것은 대내외 경영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어서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사상 최대 이자이익을 바탕으로 실적 성장을 지속하고 있지만 금융 환경은 녹록지 않다.

부동산PF에 대한 우려와 취약 차주들의 연체율 상승 등 금융 리스크에 대한 불안이 커졌고 경제 성장 또한 더딘 상황이다. 미국 등 주요국의 통화긴축 정책 완화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지만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다시 3% 이상의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상대적으로 기준금리 인하 시점이 늦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와 함께 대규모 이자이익을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상생금융 압박도 거세다. 이는 금융사 입장에선 부담으로 다가온다.

이에 주요 계열사들을 기존 경영진 체제를 유지하는 가운데 조직은 슬림화하는 모습이다. 신한금융은 지난해 조직개편으로 '그룹원신한부문'과 '그룹신사업부문'을 신설하며 11개 사업부문을 운영했다. 하지만 올해 조직개편에선 이를 4개 부문(그룹전략·그룹재무·그룹운영·그룹소비자보호부문)으로 통합하기로 했다. 지주사 경영진도 10명에서 6명으로 줄인다.

아직 조직 개편을 구상하고 있는 KB금융의 경우 부회장 직제가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그 동안 부회장으로서 그룹 내 주요 사업부문을 이끌었던 인사들이 자리에서 물러났고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금융사 지배구조 개선방안 등 CEO 선임 절차에서 부회장직에 대한 부정적 의견을 내비친 까닭이다. ▷관련기사: '후계구도 가늠자' 금융지주 부회장 사라질까(12월8일)

이런 이유로 지난해 경영진 인사를 통해 3부회장 체제를 갖춘 하나금융도 조직 개편에 대한 고민이 큰 상황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내년 금융 환경 전망이 좋지 않은 상황이라 대대적인 개편보다는 조직을 추스르고 안정화하는데 방점이 찍혀 있다"고 말했다.

직원 횡령 등 금융사고 발생으로 내부통제 중요성이 커지면서 이를 위한 조직에도 힘을 싣고 있다. BNK금융은 금융권 최초로 윤리경영부를 신설했고, KB금융은 양종희 회장 주도로 내부통제 디지털화를 추진하기 위해 '지주 내부통제위원회'를 열고 내부통제 디지털 전환 추진 계획을 세웠다.

노명현 (kidman04@bizwatch.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