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입양과 돈]⑥기부금의 비밀⋯ 사실상 아이 송출 대가였다

강혜인 2023. 12. 20.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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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자국 아이를 해외로 가장 오래, 가장 많이 입양 보낸 국가다. 70년간 20만 명의 어린이가 고아나 버려진 아이 신분으로 다른 나라로 보내졌다. 서류 조작 등 각종 불법과 인권침해 사례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해외입양이 거대한 이권 사업이었다는 의혹도 있다.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는 해외입양 피해자와 수익자, 책임자를 찾고 구조적 문제를 규명하는 <해외입양과 돈>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편집자주]

과거 한국 아동의 해외입양 과정에는 많은 돈이 오고 갔다. 입양비의 규모는 해외입양이 ‘돈벌이 수단’으로 작동했다는 근거 중 하나여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오고 간 돈의 규모는 지금껏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특히 돈을 지불했던 해외 양부모들이 말하는 액수와, 돈을 받았던 한국 입양기관들이 말하는 액수가 달랐다. 때로는 몇 배씩 차이가 나기도 했다.

뉴스타파는 국제 협업을 통해 그 비밀에 한 걸음 다가섰다. 이번에 뉴스타파가 새롭게 밝힌 사실은 양부모들이 지불한 돈의 상당액이 ‘기부금’으로 위장돼 한국 입양기관에 송금됐다는 것이다. 한국 입양기관들이 그동안 밝힌 입양 수수료 금액에는 이 기부금이 빠져 있었다. 

기부금의 사전적 정의는 ‘자선 사업이나 공공사업을 돕기 위해 대가 없이 내놓은 돈’(표준국어대사전)이다. 입양의 대가로 ‘대가 없는 돈’을 지불했다는 말은 모순이다. 따라서 이 기부금은 ‘가짜 기부금’ 또는 ‘기부금으로 위장된 수수료’라고 부를 수 있다. 

고정 수수료에 포함된 기부금?

최근 뉴스타파와 덴마크의 독립 탐사보도 매체 ‘프리헤스브레베트(Frihedsbrevet)’ 취재진은 덴마크 입양기관 DIA(Danish International Adoption)의 내부 문서 3000쪽을 입수했다. DIA는 과거 한국 아동 입양 사업을 진행한 두 개의 덴마크 입양 기관, 'AC(Adoption Center)'와 'DanAdopt'가 합병한 기관이다. AC와 댄어답트는 1969년부터 한국 아동을 입양하기 시작했다. 

▲ 덴마크 입양기관 DIA로부터 입수한 입양 문서 3000쪽.

DIA 문서에는 1994년 3월 4일 덴마크 AC와 한국사회봉사회 책임자가 만나 회의한 내용도 포함돼 있다. 두 기관은 1994년 덴마크에 한국 아이 60명 가량을 보내기로 합의했다. AC는 아이 한 명당 수수료 1450달러, 일반 기부금 2550달러를 한국사회봉사회에 지급하기로 했다. 이와 별도로 특별 기부금 11만 달러도 지급하기로 했다. 

▲ 1994년 3월 4일 작성된 AC 내부 문서. AC는 한국사회봉사회(KSS)와 회의 끝에 1994년 지불할 수수료와 기부금 액수를 정했다고 기록했다.

이상한 점은 기부금이 수수료와 나란히 협상 대상에 포함돼 있다는 점이다. 입양 아동 1인당 기부할 액수를 미리 정했다는 점도 의아하다. 

의문을 풀 열쇠는 비슷한 시기 작성된 다른 문서에 있었다. 1994년 10월 20일 덴마크 AC 직원이 미국 입양기관 FAC 직원과 회의한 뒤 작성한 문서다. 당시 AC는 한국사회봉사회에 지급하는 수수료에 부담을 느끼고 다른 나라 기관도 한국 아동을 입양하면서 비슷한 수준의 돈을 내는지 알아보는 중이었다. 

▲ 1994년 10월 20일 작성된 AC 내부 문서. AC 직원은 미국 입양기관 FAC 직원으로부터 한국사회봉사회에 지불하는 입양 수수료와 기부금 액수를 전해들었다.

이 문서를 보면, 미국 FAC는 아동 1인당 4000달러의 고정 수수료를 1450달러의 입양 수수료와 2550달러의 일반 기부금으로 나눠 한국사회봉사회에 지불한다고 밝혔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일반 기부금 역시 고정 수수료에 포함된다는 점이다. 즉, 말만 기부금이지 사실은 입양 수수료에 포함돼 있었다는 뜻이다. 

▲ 1994년 AC와 FAC가 한국사회봉사회에 지불한 ‘고정 수수료’는 아동 1인당 4000달러. 그런데 공식 수수료는 1450달러뿐이고 나머지 2550달러는 기부금으로 위장됐다.

아동 1인당 기부금 액수를 책정한다?

이뿐이 아니다. AC는 1년에 한두번씩 거액을 한국사회봉사회에 기부했는데, 이를 특별 기부금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특별 기부금 역시 일반 기부금과 마찬가지로 아동 1인당 1000달러씩 금액이 책정됐다. 특별 기부금도 입양 아동 수와 연동된다는 점에서 사실상 입양 수수료로 의심된다. 

▲ 1994년 10월 20일 작성된 AC 내부 문서. AC 직원은 미국 입양기관 FAC 직원으로부터 한국사회봉사회에 지불하는 입양 수수료와 기부금 액수를 전해들었다.

정리하면, 덴마크에서 양부모가 입양기관에 낸 돈은 둘로 나뉘어 한국 입양기관에 건네졌다. 하나는 공식 수수료이고 다른 하나는 비공식 수수료. 이 비공식 수수료는 ‘기부’라는 명목으로 포장됐다. 

뉴스타파는 덴마크 한국 입양인인 피터 뮐러 DKRG(덴마크 한국인 진상규명 그룹) 공동대표에게 DIA 문서 내용 일부를 공유했다. 피터 뮐러는 내용을 살펴본 뒤 “기부금은 숨은 수수료”라고 단언했다. 그는 “기부금은 곧 덴마크로 올 아이에 대한 대가이기도 했지만, 추후 아이를 충분히 받기 위한 대가이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 덴마크 양부모가 건넨 돈은 AC에서 두 경로로 나뉘어 한국사회봉사회로 들어갔다.

실제 입양 대가는 공식 수수료의 3~4배

기부금도 사실상 수수료에 해당한다면 한국의 입양기관이 실제 받았던 해외 입양 수수료는 공식적으로 알려진 액수보다 훨씬 많아진다.

1990년대 초 한국 입양기관들이 정부에 보고했던 공식 입양 수수료는 1450달러. 하지만 미국 FAC는 여기에다 기부금을 더해 아동 1인당 모두 5000달러를 냈다. 공식 수수료의 3배가 넘는다. 덴마크 AC가 한국사회봉사회에 낸 돈도 비슷하다. 일반과 특별 기부금을 더할 경우 아동 1인당 5833달러로 공식 수수료보다 4배나 많다.

▲ 공식 수수료에 기부금을 더할 경우 실제 아동 1인당 지급된 돈은 3~4배로 뛴다.

홀트아동복지회, 대한사회복지회도 같은 행태?

1994년 2월 작성된 AC 내부 기밀 문서에는 AC와 다른 기관의 입양비를 비교한 자료가 담겨 있다. 여기에는 수수료, 일반 기부금, 특별 기부금을 모두 합친 실제 아동 1인당 금액이 계산돼 있다. 항공료 등 아동 이송료는 빠져있다. 

▲ 1994년 2월 작성된 AC 내부 문서. 상단에 적힌 FORTROLIGT는 ‘기밀’을 뜻한다. AC는 덴마크와 스웨덴의 다른 입양기관들이 한국에서 입양 아동을 받을 때 얼마를 내는지 조사해 정리했다. 표 가장 아래쪽의 ‘Udbytte ialt i 1993 PR.BARN’은 ‘1993년 총 지급액을 아동 1인으로 나눈 금액’이다.

문서에 적힌 AC-한국사회봉사회간 아동 1인 중개액은 1993년 3675달러, 1994년 4666달러다. 1994년 금액은 계획인데 실제 확정 금액은 더 높았다. 입양기관 내부 문서로 구체적인 입양 중개료가 밝혀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댄어답트-홀트아동복지회간 아동 1인 중개액은 1993년 5187달러, 1994년 6230달러(계획)다. TDH-홀트아동복지회는 1993년 7000달러, 1994년 6750달러(계획)이고 AC-대한사회복지회는 1993년과 1994년 모두 6800달러다. 

입양기관들은 지금까지 아동 1인당 법적 상한선인 1450달러만 받았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실제로 기부금을 포함하면 그보다 최대 5배 많은 돈을 받아왔다는 사실이 이번에 뉴스타파가 입수한 덴마크 입양 기관 DIA의 내부 문서에서 드러난 것이다.

“한국 정부가 허가하지 않으므로”

DIA 문서를 보면, 1970년대부터 입양기관들이 수수료를 기부금으로 돌린 흔적들이 보인다. 1974년 AC는 한국사회봉사회로부터 ‘기부금 위장’ 요청을 받고 수수료 일부를 기부금으로 바꿔 송금했다. 

▲1974년 AC가 한국사회봉사회에 보낸 편지. AC는 한국사회봉사회의 요청을 받고 수수료 일부를 기부금으로 바꿔 송금했다.

입양기관들이 이런 눈속임을 한 이유는 뭘까. 1994년 문서에는 그 이유를 짐작할 만한 대목이 나온다. 

“1994년에는 우리(AC)의 기부액에 따라 수수료가 결정될 것입니다. 1993년에 한국사회봉사회는 정부가 허가하지 않으므로 수수료를 올리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이 수수료를 3000달러로 유지한다면 우리는 최소 7만 5000달러를 기부해야 합니다.”

즉, 한국 정부가 수수료 인상을 허가하지 않아서 대신 기부금을 높인다는 이야기다. 입양기관들끼리 정부의 규제를 피하려 입을 맞춘 흔적이다. 

▲1994년 작성된 AC 내부 서신, 한국 정부가 수수료 인상을 허가하지 않아 한국사회봉사회에 지불하는 수수료를 동결하고 대신 기부금을 늘린다는 언급이 있다.

기부금 15만 달러 요구, 결국 입양 중단

기부를 받는 쪽에서 먼저 구체적인 액수를 요구하고, 이를 거부했을 때 거래를 끊는다면, 이걸 기부라고 할 수 있을까.  

기부금이 ‘위장된 수수료’였다는 결정적 증거는 AC-KSS 입양 마지막해인 1997년 문서에 담겨 있다. 문서에는 AC가 느낀 고충이 기록돼 있다. 1993년부터 1997년까지 한국사회봉사회는 AC에 매년 10%씩 기부금 인상을 요구했고, 1997년에는 15만 달러를 요구했다고 적혀 있다. 

▲1997년 작성된 AC 내부 문서. 한국사회봉사회가 고액의 기부를 요구하고, AC가 이를 맞춰주지 못해 두 기관의 협력이 중단되는 과정이 상세하게 담겨 있다.

AC는 과도한 기부금 인상으로 이미 몇 년째 적자를 내고 있던 상황이었다. 기부금 액수를 둘러싼 양쪽의 입장 차이는 좁혀지지 않았고 1997년 두 기관의 협력은 완전히 중단된다. 기부금이 자발적이고 대가 없는 돈이었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신필식 전 입양연대회의 사무국장은 “입양기관이 정부에 회계 보고를 할 때, 기부금이 수수료보다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돈이라 기부금을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동복지 기관이 외국 기관을 상대로 연봉 협상하듯이 돈을 요구했다는 사실이 놀랍고, 그 핵심 루트가 기부금이었다는 점이 악의적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입양기관 “과거 기록 사라져 확인 어렵다”

뉴스타파는 한국사회봉사회에 사실관계 확인을 요청했으나 이들은 응하지 않았다. 홀트아동복지회 역시 취재에 응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대한사회복지회 관계자는 “회계문서 보존 연한이 지나서 당시 기록이 남아있지 않으며 현재 확인이 어렵다”고 말했다. 

입양기관들은 스스로 부모 잃은 아이들의 울타리가 되어 행복한 세상에 기여해 왔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번에 뉴스타파가 입수한 덴마크 입양기관 디아의 내부 문서에 담긴 입양 수수료와 기부금 내역은, 이들의 두 얼굴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해외입양과 돈' 프로젝트 기사 

①입양 기관의 새빨간 거짓말과 피해자들

②입양인들이 갈망하고 있는 '진실'

③입양 기관의 벽 너머 가려진 '엄마의 이름'

④해외입양 기관, 수수료 웃돈 취득·장부 허위 기재 의혹 

입양 기관 내부 문서 3000쪽 최초 입수...아이를 거래했다

뉴스타파 강혜인 ccbb@newstapa.org

뉴스타파 이명주 silk@newstapa.org

뉴스타파 변지민 pluto@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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