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부정수급 사례 근거로 산재보상제도 손질하겠다는 노동부
고용노동부가 일부 산재보험 부정수급 사례를 이유로 산재보험제도를 손질하겠다고 밝혔다. 부정수급은 근로복지공단 내부 시스템을 개선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데 이를 산재보험제도 개편 근거로 삼는 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노동부는 근로복지공단, 산재병원, 산재환자 간 ‘산재 카르텔’을 뿌리 뽑겠다고 했지만 아직 카르텔 실체를 확인하지는 못했다.
이정식 노동부 장관은 2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산재보험 제도 특정감사’ 중간결과를 발표했다.
앞서 이주환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근로복지공단이 산재 지정기관에서 치료 중인 산재 환자를 공단이 직접 운영하는 산재병원으로 데려올 경우 포상금을 주는 등 산재 카르텔이 만들어졌다고 지적했다. 노동부는 지난달 1일부터 특정감사를 시작했고 대통령실도 “전 정부의 고의적 방기로 조 단위 혈세가 줄줄 새고 있는 정황을 포착했다”며 감사에 힘을 실었다.
감사에서 부정수급이 적발되긴 했다. 노동부는 부정수급 의심사례 320건 중 178건의 조사를 마무리했는데 178건 중 117건에서 부정수급을 발견했다. 적발액은 60억3100만원이다. 사적으로 발생한 사고를 업무 중 다친 것으로 조작한 사례, 장해등급을 높이기 위해 장해상태를 과장하거나 허위로 조작한 사례, 산재요양기간 중 휴업급여를 받으면서 다른 일을 하고 타인 명의로 급여를 받은 사례 등이 나왔다.
노동부는 이번 감사에서 장기요양환자 비중이 높다는 점에도 초점을 맞췄다. 지난해 기준 6개월 이상 장기요양환자 비중은 47.6%였다. 노동부는 근로복지공단이 장기요양환자 진료계획서를 재심사하도록 했고, 그 결과 장기요양환자 1539명 중 419명은 요양연장을 하지 않고 치료종결 대상으로 전환했다.
이 장관은 산재 카르텔에 관해선 “추가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 당시 도입된 ‘추정의 원칙’에 대해서도 외부의 문제제기 사항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추정의 원칙은 특정 질병의 경우 업무와 질병 간 연관성이 있다고 추정하고 일부 조사 절차를 생략하는 것으로, 노동부가 통계상 승인율이 높은 일부 질병 중 최소한을 선정한 것이다. 지난해 근골격계 질환 중 추정의 원칙 대상 사건은 3.65%에 불과했다.
노동부는 감사 기간을 한 달 더 연장해 이달 말까지 진행한다. 이 장관은 “감사 종료 뒤에는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제도 개선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산재보상제도의 구조적 문제점을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노총은 이날 논평을 내 “아무리 감사 중간결과라고는 하지만 여당, 한국경영자총협회, 대통령실까지 나서 비리의 온상인 것처럼 떠들어 대던 ‘산재 카르텔’을 증명하는 결과로 보기 어렵다”며 “그런데도 노동부는 매년 적발되는 부정수급 사례를 내세워 산재보험제도 개악의 물꼬를 트려고 한다”고 말했다. 법률사무소 일과사람 권동희 노무사는 “부정수급 사례는 이를 제대로 걸러내지 못한 근로복지공단 내부 시스템의 문제일 뿐”이라고 말했다.
장기요양환자 비중이 높다는 것은 산재 처리기간이 장기화하고 있다는 방증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지난해 기준 산재 처리기간은 근골격계 질환 108일, 뇌심혈관 질환 114일, 직업성 암 281일에 달한다.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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