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벤처천억기업 확산 위한 스케일업 정책 필요성
지난달 열린 2023년 벤처천억기념식에서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지난해 매출 1000억원을 돌파한 벤처천억기업이 전년 대비 17.6% 증가한 869개를 기록했다. 특히 신규로 매출 1000억원 이상을 달성한 벤처기업이 134개에 달한 것은 민관이 벤처기업 성장에 노력했음을 보여준다.
벤처기업은 이제 대한민국 경제 주축으로 자리잡았다. 벤처천억기업 총매출은 229조원으로, 현대자동차그룹 총매출 240조원과 견줘도 손색이 없다. 매출 증가율도 16.5%로, 대·중견기업 매출 증가율보다 크다. 수출도 전년 대비 23.8% 늘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벤처천억기업 고용 규모는 32만명으로, 재계 1위 삼성그룹의 고용인원 27만4000명보다 많다. 평균 신규 종사자 수 역시 전년 대비 18.2% 증가하며 대한민국 국민의 생활을 책임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벤처기업의 국가 경제 기여도가 커지고 있음에도 벤처천억기업 수를 늘리는 것에는 많은 어려움이 뒤따른다. 고금리·고물가·고환율에 따른 경기둔화로 벤처기업에겐 고난의 시기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적절한 시기에 제도를 개선하지 못하면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수 밖에 없다. 벤처기업이 창의성과 혁신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하고, 이를 위해 부처간 칸막이 없는 스케일업 정책이 필요하다.
벤처기업이 가장 어려움을 호소하는 것은 투자 유치다. 고금리 기조 지속으로 벤처캐피털(VC)은 펀드 자금 모집에 어려움을 겪으며 투자를 보류하고 있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 투자 동향 조사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스타트업 총 투자액은 약 2조3226억원이다. 전년 동기 대비 68.27%나 감소했다.
기존 방법으로 벤처투자를 이끌어 내기 어렵다면 민간 산업자본이 벤처기업에 투자하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한국 벤처투자 시장은 정책금융 의존도가 높고 민간자본 등 시중에 풀린 유동성이 벤처투자 시장에 유입되는 데 한계가 있다.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규제 완화는 지금의 투자 혹한기를 해소하고 봄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VC가 고금리와 대내외 경제 불확실성으로 투자가 어렵다면 자본이 풍부한 대기업과 중견기업을 중심으로 투자를 늘려 벤처기업에게 힘을 싣도록 해야 한다. CVC 투자는 모그룹과의 오픈 이노베이션, 사업 협력으로 이어져 벤처기업 성장을 촉진할 수도 있다.
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BDC)도 민간자금의 벤처기업 투자를 유도하는 길이다. BDC는 공모펀드로 대규모 민간자금을 모집해 민간 중심 벤처투자 생태계를 활성화할 수 있다. 개인투자자도 모험자본 시장에 간접투자로 수익 창출이 가능해 모두에게 이득이다.
금융제도만큼 중요한 것은 인재 확보를 위한 제도 혁신이다.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우수 소프트웨어(SW) 인력 확보는 벤처기업에도 중요한 일이 됐다. 하지만, 중소기업의 75%가 SW 전문인력 채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외국 전문인력을 채용하는 것도 대안이다. 국내 SW 인력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인건비로 경력을 갖춘 외국 SW 전문인력을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해외 SW 전문인력을 안정적으로 운용하려면 전문업 취업비자인 E-7 비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제도 개선 논의가 필요하다.
벤처기업의 혁신 아이디어와 기술을 펼칠 수 있도록 네거티브 규제도 마련해야 한다. 불과 십여년 전 스마트폰 등장으로 많은 것들이 가능해져 주목을 받았지만, 이젠 대화형 인공지능(AI) 챗GPT를 비롯다양한 기술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법률·정책상으로 허용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나열한 뒤 나머지는 모두 금지하는 기존 포지티브 규제 방식으로는 발전하는 기술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 네거티브 규제 방식으로 전환해 글로벌 기업과 경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기술창업 활성화도 중요하다. 기술창업은 벤처천억기업을 창출하는 기초 자산이다. 최근에는 교수, 학생, 연구원 등 기술발명자 창업에 대한 인식이 과거에 비해 많이 개선된 점은 다행이다. 그러나 여전히 부족하다. 창업기획자(액셀러레이터)의 대형화, 전문 VC 활성화가 수반돼야 한다. 연구자가 기술만 출자하고도 쉽게 창업하고, 경영은 전문 액셀러레이터나 VC 등이 분담하면 된다. 앞서 CVC 중요성과 확대를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밖에 교원·연구원의 휴·겸직 인정 기간 확대, 기업 기술이전 촉진, 창업실적을 성과평가에 반영 등 파격적 인센티브를 확대하는 제도 개선 노력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이달 초 한시법으로 운영되던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벤처기업법)의 일몰 규정을 삭제한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벤처기업법의 상시법 전환으로 벤처기업의 장기적 지원 토대를 마련했다. 벤처업계가 지속 요구하던 성과조건부 주식 제도(RSU)도 개정안에 포함돼 우수 인재 확보가 수월해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 국회 모두 벤처기업법 개정안 통과에 힘을 모은 만큼 벤처기업인 역시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 기업가정신을 발휘해 벤처생태계를 활성화하고 혁신성장으로 일자리 창출을 이끌 숙제가 남아있다. 벤처기업은 그간의 경험을 토대로 지원정책을 지속적으로 건의해 장애물을 걷어내 더 많은 벤처천억기업들을 만들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후배 벤처기업을 육성하는 선순환 구조로 벤처대국의 길을 닦아야만 한다.
벤처기업인이자 대한민국의 한 국민으로서 우리 벤처기업이 글로벌 기업과 경쟁에서 승리해 기술을 선도하길 소망한다.
〈필자〉1972년생으로 대구 달성고, 연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했다. 앤더슨컨설팅을 다니다 2004년 위성통신 안테나·솔루션 전문 기업인 인텔리안테크놀로지스를 창업, 2016년 코스닥에 상장했다. 2018년 전파방송기술대상 대통령 표창, 2020년 무역의날 장관 표창, 지난해엔 한국거래소 코스닥 라이징스타 선정, 광대역 국제위성통신 인증, 1억불 수출 탑을 수상했다. 2016년부터 벤처기업협회 부회장, 2020년 11월부터 수석부회장을 역임하며 국가 경제 활성화와 벤처생태계 발전에 힘써왔다.
성상엽 벤처기업협회 회장(인텔리안테크놀로지스 대표) eric.sung@kov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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