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대학포럼]〈152〉성숙한 대한민국을 위해 학문의 균형발전을 보장해야 한다

2023. 12. 20. 16:0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Equal and equilibrium

과학기술 발전의 공로는 매우 크다. 인간은 물론, 가축에게도 위험하고 고통스러운 노동을 덜어주는 혜택을 끼쳤다. 인류사회의 물질적 풍요를 높였고, 지금도 삶의 질을 높이고 인간의 지적활동을 활발하게 만들어줄 기술들을 발전시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그러했다. 1960년대 중반 이후 '과학입국(科學立國)' 슬로건 아래에서 과학기술은 한국의 압축적 고도성장에 높이 기여했고, 그 결과 한국은 경제적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과학기술은 앞으로도 국가발전에 지속적으로 기여할 것이며,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많은 문제들을 해결할 것이다. 인류의 존속을 위협하는 생태위기 해결에도 과학기술이 결정적으로 기여할 것임을 필자는 의심치 않는다.

덧붙여 언급하고 싶은 것은 인문사회가 함께 발전해야만 과학기술의 긍정적 기여도가 높아진다는 점이다. 옥스팜(Oxfarm)은 2017년 빌 게이츠를 비롯한 8명이 차지하고 있는 재화가 세계 인구의 아래쪽 절반이 갖고 있는 부와 맞먹는다고 보고했고, 올해 11월 20일에는 소득 상위 1%에 속하는 7700만 명이 하위 66%에 해당하는 50억여 명과 맞먹는 양의 탄소를 배출한다는 점을 밝혔다. 기술의 발달이 생산력을 증가시키고 유통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켰는데, 편중과 격차 또한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것이다. 클라우스 슈밥이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책에서 가장 우려했던 것은 기술발전으로 인한 격차의 심화였고, 이에 대비하는 가치관과 제도의 마련이었다. 이 문제를 극복하는 데에도 과학기술이 기여할 부분이 많겠지만, 해결의 관건이 될 가치관의 창출과 확산 그리고 제도적 실천은 아무래도 인문사회 분야가 담당해야 할 영역이다.

한국사회는 지금 절실하게 인문사회 분야의 중흥과 사회적 기여를 요청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한국의 자살률이 가장 높다는 점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인데, 이 상황은 IMF구제금융 사태 5년 후인 2003년부터 시작됐다. 국가경제의 파탄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사회안전망이 무너졌고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함께 달성해 온' 시스템을 상실하게 됐으며, 숱한 사람들이 무한경쟁 체제 속에서 극단적 선택을 강요당하는 사회가 돼버린 것이다. 이제는 '과학입국'의 성장정책이 거둔 과실을 대다수 국민이 함께 누리면서 존엄과 품위를 지키며 살아갈 성숙한 사회를 구현해야 하고, 이를 위해 인문사회의 위상과 역할을 되살려야 한다.

엄청난 양의 정보들이 거의 무제한적으로 유통되고 있는 상황이 높은 수준의 디지털 문해력을 요구하고 있으나, 대중들은 아직 마땅한 수준의 지력(智力)을 갖고 있지 못하며, 여전히 정보의 홍수에 휩쓸리고만 있는 형국이어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인문사회적 소양을 대폭 높여야 한다. 부패와 무능을 청산할 도덕적 기준을 회복하고 공생하고 배려하는 공동체를 회복하기 위해서도 인문사회 분야의 연구와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학문 제 분야의 협력과 협업이 강조되고 있는 시대에 처해, 실효적 협력과 융합을 위해서도 학문의 균형적 발전과 수월성 확보를 보장해야 한다. 인적자원이 국가발전의 원천일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은 대학을 고도의 지식을 창출하는 본산으로 육성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연구예산을 최대한 확장해가야 하고, 각 분야의 학문을 고루 발전시킬 학술정책과 공적지원 제도의 수립을 서둘러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대학의 인문사회 분야는 공적지원의 심각한 격차와 차별로 인해 급속한 붕괴의 과정을 거치고 있는 중이며, 대학바깥으로부터의 요구를 도저히 충족할 수 없는 상태로 방치되고 있다.

민간 분야의 연구비는 차치하고 중앙정부 연구비 경우만을 보더라도, 인문학 분야의 수혜율은 공학·자연과학·농수해양학 분야의 5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인문사회 분야의 학술연구를 뒷받침할 학술정책연구전문기관도 없고 국가급위원회도 없으며 전문법령조차 전무한 상황이다. 대학 인문사회 분야가 성과를 산출하고 국가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보장할 제도적 기반이 전무한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인문사회학술기본법'만이라도 제정을 서둘러야 한다. 지난 반세기 남짓의 기간에 우리가 함께 일궈온 성취를 돌아보면, 정신적 풍요와 질 높은 삶을 누리는 대한민국의 구현은 그리 어려운 목표가 아닐 것으로 생각된다.

위행복 한양대 명예교수·한국인문사회총연합회 이사장 khss@koreahss.kr

Copyright © 전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