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시대' 임시완의 찌질이 연기가 완벽했던 이유 [인터뷰]
아이즈 ize 이덕행 기자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소년시대' 속 임시완의 연기를 본 시청자들은 감탄을 멈추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도전하지 않았던 코미디물에서 눈을 뗄 수 없는 연기력을 선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찌질한 모습을 완벽하게 소화하는 임시완을 두고 '차기작이 걱정된다'는 농담 반, 진담 반의 걱정이 나오고 있다. 많은 노력 끝에 탄생한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지만도 않았다. 분명 코미디 연기는 도전이었지만, 임시완에게는 이미 DNA에 흐르는 찌질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1989년 충청남도를 배경으로 한 '소년시대'는 안 맞고 사는 게 일생 일대의 목표인 온양 찌질이 병태(임시완)가 하루아침에 부여 짱으로 둔갑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임시완이 연기한 장병태는 안 맞고 사는 게 일생일대의 목표인 온양 찌질이에서 한순간에 싸움짱이 되어 전교생의 선망과 두려움을 한 몸에 받게 된 인물이다.
임시완은 '소년시대'를 통해 작정하고 무너졌다. 코미디 연기가 처음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임시완은 "스스로가 웃긴 사람이 아닌 걸 알고 있었다"며 철저한 준비를 거쳐 촬영에 임했다고 전했다.
"처음 대본을 받을 때는 제목이 '와호장룡'이었어요. 제목에서부터 풍기는 병맛의 느낌이 있었어요. 초고지만, '이 정도의 느낌입니다'가 아니라 '완성된 채로 보여드리겠습니다'라는 정성이 느껴졌어요. 특히 정성껏 웃긴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런 대본을 찾아가는게 배우의 사명이라는 생각에 하게 됐어요. 물론, 코미디가 처음이라 부담도 컸어요. 스스로가 웃긴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거든요. 일상생활이 코미디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철저하게 준비하고 들어가야겠다 싶었어요."
임시완의 노력은 충청도 사투리에서 돋보인다. 부산 출신의 임시완은 충청도 사투리와 접점이 없었지만, 3개월이 넘는 1대1 교습과 1박2일 어학연수 등 다양한 노력을 통해 충청도 사투리를 습득했다. 특히 충청도로 떠난 어학연수에서는 독특한 에피소드도 있었지만, 이렇게 '충청도화'를 멈추지 않은 덕분에 현장에서 애드리브도 거침없이 칠 정도로 충청도 바이브에 녹아들었다.
"물론 토박이분들은 캐치하셨을 거예요. 3개월 정도 1대1 교습을 받고 촬영 중간에도 계속 교정을 받았는데 어차피 네이티브 스피커 분들은 그 차이를 아실 것 같아서 충청도의 정서와 은유를 잘 녹여내려고 했어요. 한창 사투리를 배울 시기에 1박2일로 '어학연수'를 다녀왔는데 길에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저녁을 먹을 겸 치킨집에 들어갔는데 사장님 부부가 완전 토박이시더라고요. 일부러 말을 길게 했는데 대화가 통해서 신기하고 뿌듯했어요. 그런데 계산할 때 되니까 사장님이 서울 사람이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술을 얼마 마시지도 않았지만, 술이 확 깨더라고요. 그래도 기본적으로 좋은 대사가 있다보니 많은 영감도 생겼어요. '구황작물이여?' 라고 묻는 부분이 그래요. 원래는 없었는데 현장에서 해보니 감독님이 좋아하셔서 쓰게 됐어요."
더 이상 구타당하지 않는 것이 소원인 병태는 전학간 학교에서 돌연 짱으로 추대받는다. 학창 시절 한 번 쯤은 꿈꿔봤을 일이 현실로 이뤄진 병태는 정상의 자리를 만끽하지만, 진짜 일짱이었던 정경태(이시우)가 기억을 찾으며 바닥의 바닥까지 추락한다. 임시완은 "오히려 짱이었을 때가 부담이었다"며 상반된 두 상황을 비교했다.
"짱이었을 때가 부담됐고 찌질이었을 때는 자연스럽고 연기할 때도 속이 편했어요. 찌질이가 편한 트레이닝복을 입은 느낌이라면, 짱은 작은 수트를 껴입은 느낌이랄까요. 어떠한 수장은 정서적으로 우두머리의 기질이 있다고 보는데 저는 그런 것보다는 병맛에 가까운 사람이거든요. 편한 것과 접근하기 쉬운 건 다른 개념이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확실히 찌질한 모습이 더 편했어요. 별 고민하지 않고 낸 의견에도 감독님이 '어떻게 생각했대. 병태는 진짜 천재다'라고 말씀하시는 걸 보고 나의 DNA에 찌질함이 흐르고 있다는 건 부정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품을 통해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임시완의 DNA에 찌질함이 흐른다는 건 의외였다. 그러나 임시완은 계속해서 '찌질학 강의'를 이어갔다. 처음에는 병태의 캐릭터를 설명하는 건가 싶었지만 "이런 모습이 저와 맞닿았다"는 마지막 멘트가 강렬하게 다가왔다.
""찌질함의 법칙'이라고 할까요. 그 첫 번째는 생각나면 생각나는 대로 표현하는 거예요. 그런데 태가 나는 것에서 벗어나는 거죠. 그리고 두 번째는 그걸 장황하게 설명하는 거예요. 먹고 싶은 걸 먹고 싶다고 말하면 되는데 '밖이 추운데, 추울 때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색다른 맛이 날 수도 있을 거 같고' 이런 식으로요. 그런 모습이 저와 닮았던 것 같아요. 저도 되게 장황하게 설명하는 편이거든요."
이처럼 자신의 DNA에 흐르는 무언가를 끄집어냈기 때문에 디테일 역시 남달랐다. 어떠한 경우에도 폭력은 용납돼서는 안 되지만, 경태가 맞는 장면에서 어딘지 모르게 '맞을 만하다'는 마음이 스쳐 지나가는 것도 임시완의 디테일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어떤 경우에도 폭력이 용납돼서는 안 되죠. 다만, 많은 분들이 공감하실 텐데 살다보면 '가만히 있으면 반이라도 갈 텐데'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굳이 안 해도 될 말을 꺼내서 매를 버는 사람들이요. 그런 걸 더 많이 쌓으면 쌓을수록 병태가 맞을 때 보시는 분들이 불편한 마음을 덜 가지실 것 같았어요. 화장실에서 맞는 신이 그래요. '폭력은 나쁜 거 아녀'라고 끝내면 되는데 굳이 '니들이 발음 이상하게 했잖아'라고 덧붙이는 거죠."
찌질한 감성이 맞닿아 있다는 부분은 조금씩 이해됐지만, 이를 연기로 풀어낸 건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임시완은 '미생', '타인은 지옥이다', '변호인', '비상선언',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등을 통해 이미 흠잡을 데 없는 연기력을 선보였다. '소년시대'에서는 그동안 보여주지 않았던 코믹 연기에도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가늠할 수 없는 넓은 스펙트럼을 입증했다. 임시완은 이처럼 다양한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에 대해 "무의식적인 영향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배우로서 어떠한 이미지로 고착화되는 것에 대해 견제를 하는 무의식적인 본능인 것 같아요. 웬만하면 비슷한 결이 아닌 다른 것을 찾아가고 그런 것을 끌려하는 것도 있고요."
배우로서의 이미지가 고정되는 것을 막기 위해 다양한 캐릭터를 선택한다고 밝힌 임시완. 그렇다면 그가 다양한 역할을 표현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임시완은 "저는 회색분자였다"며 주변에 맞춰 변화하는 자신의 모습을 설명했다.
"저는 어떠한 집단에서 제 목소리를 내세우는 사람은 아니었어요. 어떻게 보면 회색 분자에 가까웠죠. 그건 곧 저의 색이 확고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한 것 같아요. 무채색에 가까웠기 때문에 어떤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의 색을 띠고 있는 저를 발견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저의 화살을 확 잡고 있지 않기 때문에 어떤 캐릭터를 만났을 때 그 방향으로 돌리는 게 저에게 어려운 도전은 아니에요."
'소년시대'는 DNA에 각인된 찌질함을 꺼내 연기로 펼쳤지만, 이후의 작품에서는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년시대'는 임시완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갔다. 꾸밈없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임시완은 자신의 실제 학창시절을 되돌아보며 '소년시대'가 자신에게 주는 의미를 설명했다.
"저는 학창시절 계속 반장, 부반장을 했어요. 그때는 별생각이 없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제 찐따스러운 본 모습이 감투에 가려진 것 같기도 해요. 친구들이 알고는 있지만 감투 때문에 '쟤는 냅두자'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요. 어릴 적부터 제 모습을 본 친구들이 '연기 잘 한다. 아닌데 실제처럼 잘하냐'는 말을 안하는 것 보면 무언의 인정인 것 같기도 하고요. '소년시대'는 멋있는 척하지 않고 저의 부족한 모습도 가감없이 드러낸 작품이에요. 실제 제 모습과 가까운데 그런 모습을 응원해주신다면 실제 제 삶을 응원해주실 가능성도 높다는 거니까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 '소년시대'는 남다른 작품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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