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물가 목표까지 '마지막 걸음' 오랜 기간 걸릴 수도"(종합)
美 금리인하 불확실성 강조…한은 총재 "본격 인하논의 아닐 듯"
(서울=뉴스1) 김혜지 기자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20일 "물가 상승률을 목표 수준으로 되돌리기 위한 마지막 걸음(last mile·라스트 마일)은 지금까지보다 쉽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현 3%대 물가 상승률에서 안정 목표인 2%까지 절대적인 거리로는 얼마 남지 않았으나 달성까지 시간은 오래 걸릴 수 있다는 취지다.
이 총재는 이날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기자설명회에서 모두발언을 통해 이같이 강조했다.
이 총재는 "앞으로도 금리 인상의 영향이 지속되면서 물가 둔화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보이지만 여전히 목표 수준을 크게 웃도는 물가 오름세가 지속되고 있어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에 대한 긴장을 늦추기는 아직 이르다"고 판단했다.
이어 "국제유가 등 원자재 가격 추이와 관련한 불확실성이 큰 가운데 누적된 비용 인상 압력 영향이 지속되고 있고 노동 비용도 여전히 높은 상황"이라고 경계했다.
이 총재는 "지난주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ed)와 유럽중앙은행(ECB)이 최근의 인플레이션 둔화 흐름을 반영해 물가 전망을 하향 조정하면서도 여전히 인플레이션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는 점도 라스트 마일의 어려움을 반영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정익 한은 물가고용부장도 이 총재의 발언 직후 발표에 나서서 "흔히 마라톤에서 라스트 마일이 굉장히 어렵다고들 한다"고 말했다.
이 부장은 "거리로 보면 물가 목표까지 얼마 남지 않았지만, 이를 달성하는 데 들어가는 시간은 각국 중앙은행 전망에 따르면 상당히 비례해서 짧을 것 같진 않다"고 전했다.
이 부장은 과거 고금리(통화 긴축) 시절의 물가 상승률은 거의 1년이 안 돼 목표 수준까지 내려왔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를 여지가 있다.
가장 먼저 들 수 있는 이유로는 유가를 들 수 있다. 이 부장은 "지금껏 경제 전망 기관의 유가 전망이 거의 다 틀렸다"면서 "향후 유가 흐름이 어떻게 될지 예측하기 어렵고 지금 시장은 유가 안정을 얘기하지만 앞으로 또 예상치 못한 요인에 의해 다시 크게 상승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이 밖에 기대인플레이션이 실제 물가에 미치는 영향, 단위노동비용 상승에 따른 압력, 기업들의 연말연초 가격 인상 가능성, 주류·공공서비스 등 아직 물가가 오르는 일부 품목 등이 향후 물가 둔화 흐름을 더디게 할 수 있다고 지목했다.
이 부장은 "그래서 물가가 언제 목표에 도달할지를 묻는다면 모른다는 것이 솔직한 답변이지만 지난 11월 경제전망 당시의 전제 아래에선 내년 연말이나 2025년 초반 또는 상반기에 도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남은 거리만 보면 라스트 마일이 얼마 안 남았으나 걸리는 시간으로 보면 사실 굉장히 오랜 기간이 걸릴 수 있다"면서 "그래서 지금 해외 언론이 라스트 마일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앞으로의 힘든 상황을 비유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총재는 이어진 질의응답에서 미국의 금리 인하를 둘러싼 시장 기대감이 커진 데 대해 아직 불확실성이 있어 보인다고 주의했다.
이 총재는 "지금 미국에서 금리 인하 논의를 시작했다고 하는데 그에 대해서는 아직 불확실성이 있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특히 "연준의 점도표를 보면 0.75%포인트(p) 정도 인하하는 것으로 돼 있는데 시장은 1%p 훨씬 넘게 떨어지는 것을 기대하고 있다"며 "(미국이) 인하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사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금리 인하 가능성이 커진 것은 사실인 것 같다"면서도 "지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파월 의장의 발언은 현 금리 수준을 오래 유지하면 상당히 긴축적인 효과를 가질 것이라고 한 부분이 방점이었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파월 의장은 지난 FOMC 기자회견에서 위원들 사이에 금리 인하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고 언급함으로써 시장의 금리 인하 기대감을 일으킨 바 있다.
이 총재는 파월 의장이 '비둘기'(통화 완화 선호) 스탠스로 변신했다는 세간의 평가에도 "시장 생각만큼 예상 못하게 크게 변화했다고 보지 않는다"며 "금리 추가 인상보다는 긴축적인 금리 수준을 얼마나 오래 가져가는지가 중요하다는 큰 틀에는 변함이 없어 보인다"고 거듭 강조했다.
파월 의장의 발언이 중요한 이유는 금리 인하 가능성 그 자체보다 우리나라가 국내 여건에 기초한 독립적 통화정책을 펼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이 총재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미국이 금리를 더 올리는 건 아니라는 확신이 자리잡으면서 국제금융시장이 많이 안정됐고 그에 따라 통화정책을 하는 데 있어 환율이나 자본이동 등의 제약조건 하나가 풀렸다는 점"이라며 "독립적으로 국내 요인을 보면서 통화정책을 할 수 있다는 시사점이 더 중요하다"고 밝혔다.
한국이 미국의 금리 인하를 따라 반드시 금리를 내려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견해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 총재는 "(미국과 한국 사이에는) 금리 구조가 변동이냐 고정이냐에 따른 많은 차이가 있고 물가가 떨어지는 속도도 우리는 더딜 것"이라면서 "두 나라의 경제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단순히 물가가 한쪽이 높으니까 더 빨리 높이거나 낮춰야 하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내년 경제 성장률은 IT 부문을 제외하면 1.7%가 될 것이라고도 밝혔다.
그는 내년 통화정책에 있어 성장과 가계부채가 상충한다면 어느 쪽을 택할지 묻자 "가계부채 문제는 중장기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지 성장과 맞바꿀 대상은 아니다"라며 "내년도 성장률이 2.1%라고 할 때 이는 IT 수출이 많이 회복된 경우로, 내부적으로는 IT를 제외하고 내수 기준 1.7% 성장을 예상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총재는 "피부로 느끼는 경제 회복 정도는 굉장히 다를 것"이라며 "경제 성장률 전체로 봐서는 부양 필요성이 없지만 취약한 부문은 필요할 수 있다"고 봤다. 또 "경기와 물가의 상충 관계가 미묘해질 때 어떻게 대처할지는 상황을 봐야 한다"며 "금리를 내리면 부동산 쪽으로 자금이 쏠리는 것은 아닌가 유의하겠다"고 덧붙였다.
icef08@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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