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훅’ 안더니 ‘파페치’까지 삼켰다…아마존 지켜본 쿠팡의 ‘다음 계획’은
아마존도 못 다룬 ‘명품’ 분야, 파페치로 도전한 이유는?
물류 역량 결합해 패션 분야 활성화…고급화 가능성 주목
(시사저널=조유빈 기자)
쿠팡이 파페치(Farfetch)를 인수했다. 전날 쿠팡의 모회사인 미국 쿠팡Inc는 파페치홀딩스를 인수하고, 5억 달러(약 6500억원) 규모의 자금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2007년 영국에서 출범한 파페치는 3대 명품인 '에루샤(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를 포함해 글로벌 명품 브랜드 400여 개가 입점해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패션 플랫폼이다. 쿠팡이 글로벌 플랫폼을 인수한 것은 두 번째다. 이미 첫 번째 시도로 성공 공식을 완성한 쿠팡의 '다음 계획'에 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훅 인수로 '미디어' 새 동력 찾은 쿠팡
쿠팡은 앞서 동남아 OTT 플랫폼 '훅(hooq)'을 인수한 바 있다. 훅은 2015년 싱가포르텔레콤과 미국 워너브라더스, 소니픽처스가 합작해 설립한 OTT다. 싱가포르, 태국, 필리핀 등 동남아 국가에서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해오다 넷플릭스의 시장 진출로 위기를 맞이했고, 결국 서비스를 중단했다. 이런 훅을 안은 것이 쿠팡이다.
그동안 OTT 사업 기반이 전무했던 쿠팡이 2020년 7월 훅을 인수하자, 업계에서는 이 인수를 "쿠팡이 '한국판 아마존'을 완성하기 위한 수순"이라고 해석했다. 아마존은 '빠른 배송'을 통해 막대한 회원을 확보한 뒤,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라는 OTT 서비스와 음식 배달 서비스를 통해 회원들을 묶어뒀다. 실제로 그해 10월 '온라인 VOD 콘텐츠 서비스'를 사업 목록에 구체화한 쿠팡은 쿠팡플레이를 통해 아마존의 성장 전략을 따라갔다.
OTT를 통해 영국 프리미어리그, 미국 미식축구, 메이저리그 등을 공개했던 아마존처럼, 쿠팡플레이도 출범 직후 다양한 스포츠 경기를 독점적으로 제공하면서 영향력을 확대했다. 서비스 초반에는 토종 OTT 플랫폼에 밀리면서 꼴찌를 벗어나지 못했지만, 지금은 월간 활성 이용자 수 2위 플랫폼으로 올라서며 넷플릭스의 뒤를 쫓고 있다. SNL코리아와 최근 공개한 《소년시대》 등 오리지널 시리즈도 호평을 받으며 '콘텐츠'가 쿠팡의 새로운 동력이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글로벌 플랫폼 인수를 통해 한 차례 진화한 쿠팡이기에, 이번 파페치 인수가 쿠팡의 다음 스텝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시선이 모인다. 온라인 유통에서 강점을 발휘해 온 쿠팡이 파페치까지 끌어안은 것은 명품에 방점을 찍어 그동안 실적이 저조했던 '패션' 분야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나온다.
아마존, '최저가' '가품 논란'으로 명품 유치 실패
'쿠팡'과 '명품'의 만남에는 아마존의 과거가 투영된다. 패션 분야에서 유독 힘을 쓰지 못했던 아마존은 2006년 온라인 의류 쇼핑몰 샵밥을, 2009년 온라인 신발 쇼핑몰 자포스를 인수하며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초기에는 실적을 내지 못했지만 브랜드 입점을 위한 투자를 이어가며 플랫폼 고급화를 지향했고, 미국 내 온라인 의류 판매 점유율 1위까지 기록했다. 메이시스, 노드스트롬 등 백화점의 온라인 매출을 모두 합친 것보다 높은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명품' 입점은 쉽지 않았다. 재고를 쌓아둬야 하는 아마존의 '직매입' 방식은 브랜드의 가치와 충돌했고, 누구나 판매가 가능한 사이트이기에 위조품 판매 논란까지 일었다. '최저가'나 '가품 논란'이 브랜드 이미지와 연결되는 것을 꺼려한 하이엔드 명품 브랜드들은 아마존이 런칭한 '럭셔리 스토어'를 외면했다.
쿠팡은 유통 분야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지만, 유독 패션 분야에서는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자체 브랜드를 통해 가성비 상품을 선보인 데 이어 2020년 4월 출시한 C.에비뉴를 통해 패션 브랜드를 입점시키면서 고급화를 꾀했지만 시장 침투력은 높지 않았다. 패션만큼은 '쿠팡의 무풍지대'라는 이야기가 나왔을 정도다.
그럼에도 패션 사업에 대한 쿠팡의 의지는 계속 존재했다. 쿠팡은 2021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제출한 상장신고서에서도 지속적으로 투자를 이어나갈 분야로 '의류' 부문을 꼽았다. 쿠팡이 고가의 패션잡화 보관에 주로 이용되는 물류 창고를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되면서 명품 직수입 확대에 투자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 바 있다.
'신뢰성' 기반으로 패션 사업 도전…"백화점 매출에도 영향"
아마존의 실패를 지켜본 쿠팡이 선택한 방향은 '파페치' 인수다. 파페치는 부티크를 온라인에 데뷔시키는 역할을 하면서 '명품 온라인 쇼핑'이라는 키워드를 가장 성공적으로 빚어낸 플랫폼으로 꼽혀왔다.
파페치의 장점은 '신뢰성'이다. 2020년에는 까르띠에, 몽블랑 등을 보유한 스위스의 리치몬드그룹과 중국 알리바바가 파페치에 1조원 규모의 합작투자를 결정했다. 세계 명품 소비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과 스위스의 대표 기업이 파페치에 투자한 것은 명품 플랫폼으로서 파페치의 위상을 보여준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파페치는 아마존 같은 직매입 방식이 아닌, 브랜드에 '디지털 공간'을 임대해주는 형식을 취하면서 브랜드와의 충돌 리스크를 지워냈다. 브랜드가 직접 독점 컬렉션을 제공하기 때문에 위조품의 위험도 없다. 2017년부터 파페치와 협업한 구찌는 '90분 배송'을 통해 세계 주요 대도시의 고객들에게 명품을 배송하고 있고, 버버리는 모든 상품을 파페치에 업로드 중이다. 쿠팡은 파페치가 가지고 있는 신뢰성을 기반으로 '플랫폼의 고급화'를 추진하는 셈이다.
일단 쿠팡은 파페치를 뉴욕증시에서 상장폐지 시킨 후 5억 달러를 투입해 회생절차를 밟으면서 내실을 다져나갈 것으로 보인다. 김범석 쿠팡Inc 최고경영자(CEO)는 "파페치는 명품 분야의 랜드마크 기업으로 '온라인 럭셔리'가 명품 리테일의 미래임을 보여줬다"며 "앞으로 파페치는 비상장사로 안정적이고 신중한 성장을 추구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쿠팡이 자사의 장점인 '물류 역량'을 파페치와 결합하겠다고 밝힌 만큼, 현재 국내까지 5일 가량 소요되는 배송 속도도 쿠팡의 물류와 결합하면서 더 빨라질 가능성이 있다. 지난 7월 선보인 명품 화장품 브랜드 전용관인 로켓 럭셔리 서비스를 패션 쪽으로 확대하거나, 전용관을 신설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장기적으로 쿠팡의 명품 시장 진출이 국내 이커머스 플랫폼과 백화점의 매출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명주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쿠팡은 향후 파페치의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해 한국 등에서 직접 온라인 명품 판매를 할 가능성이 높다"며 "명품의 낮은 온라인 침투율을 고려했을 때, 경기 회복 구간에서 온라인 명품 시장은 안정적인 성장을 보일 것"이라고 짚었다.
이어 "쿠팡이 온라인 명품 판매를 본격화할 경우 진품 보장, 무료 반품 서비스 등 소비자 신뢰를 높이기 위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할 가능성이 있다"며 "파페치와 유사한 사업을 영위하는 머스트잇, 트렌비, 발란 등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며, 장기적으로는 백화점의 명품 매출에도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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