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과학세상] 가습기 살균제 참사, '살인적 사용법' 책임 물어야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2023. 12. 20. 14:5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 12주기. 연합뉴스 제공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처음 알려지고 무려 12년이 넘는 긴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2017년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법’과 ‘사회적참사진상규명법’을 제정한 것을 빼고 나면 크게 달라진 상황은 없다.

3년 6개월 동안 요란하게 활동했던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가 내놓은 권고도 피해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청와대에서의 성대한 오찬도 피해자들에게는 희망 고문이 되고 말았다. 1839명의 사망자를 포함한 7883명의 피해자들이 여전히 보상은커녕 피해 사실조차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제 공은 사법부로 넘어갔다. 지리하게 계속되는 재판에서 소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폐섬유증과는 전혀 다른 천식이 피해 증상으로 인정받기도 했고 제조·판매사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대법원 판결도 나왔다.

그러나 재판부에 따라 ‘유죄’와 ‘무죄’를 오락가락하는 판결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럽다. 동물실험으로 밝혀낸 ‘과학적 인과성’을 재판부마다 다르게 해석해서 생기는 일이다. 가습기 살균제의 독성에 대한 해석이 엇갈리는 MIT·CMIT 제품에 대한 1월의 항소심 판결에 피해자들이 한 가닥 희망을 걸고 있는 형편이다.

수많은 인체 피해 사례가 과학적 인과. 연합뉴스 제공

● 사람은 ‘쥐’가 아니다

지난 12년 동안 이어진 논란의 핵심은 언제나 가습기 살균제 성분의 ‘인체 독성’이었다. 분자량이 큰 PHMG·PGH의 경우에는 2017년의 쥐 실험에서 폐섬유증의 가능성이 분명하게 확인되었다.

그런데 분자량이 작은 MIT·CMIT가 문제였다. 쥐를 이용한 흡입 독성 실험에서 폐섬유증이 분명하게 확인되지 않았다. 심지어 가습기 살균제에 들어있는 살균 성분이 폐까지 도달한다는 과학적 증거를 찾지 못했다는 어처구니없는 독성학자도 있다.

독성물질의 인체 독성을 과학적으로 확인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노츨 즉시 모든 사람에게 곧바로 독성이 나타나는 복어 독(테트로도톡신)이나 식중독균과 같은 ‘급성’ 독성물질의 경우에는 문제가 비교적 간단하다. 노출 사실도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고 피해 증상도 분명하다. 굳이 과학적 인과성을 들먹일 이유도 없을 정도다.

그런데 가습기 살균제처럼 독성이 비교적 낮은 ‘만성’ 독성물질의 경우에는 사정이 완전히 달라진다. 노출 이후 상당한 시간이 흐른 후에야 피해 증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노출 사실을 확인하는 일부터 만만치 않다.

심지어 피해자 자신도 노출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누구에게나 증상이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드물게 나타나는 피해 증상도 다양하다. 엎친 데 덮친다고 기저질환을 가지고 있는 소비자의 경우에는 문제가 더욱 복잡해진다.

만성 독성물질과 피해 증상 사이의 ‘인과성’도 애매하다. 제조‧판매사가 강조하는 ‘과학적 인과성’을 밝혀내는 일이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려워진다. 돌이킬 수 없는 피해가 예상되는 독성물질의 경우에는 인체 실험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쥐를 비롯한 동물을 이용하는 동물실험도 지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사람은 쥐가 아니다. 물론 사람과 쥐가 생리적으로 닮은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사람의 생리 구조가 쥐와 똑같을 수는 없는 일이다. 실제로 지저분한 시궁창에서 사는 쥐의 독성물질에 대한 면역력도 사람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를 수밖에 없다. 삼척동자도 알고 있는 명백한 상식이다. 사실 사람에게 나타나는 모든 질병의 원인을 과학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 증상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결국 사람에게 나타나는 질병의 원인을 쥐 실험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는 제조사와 전문가의 주장은 처음부터 믿을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더욱이 낮은 농도의 만성 독성물질에 의해서 나타나는 2차‧3차 증상까지 쥐 실험을 통해서 확인할 수는 없는 일이다. 

환경보건·독성·의학계도 지난달 8일 공동기자회견을 통해서 그런 사실을 분명하게 밝혔다. 재판부가 ‘과학적 인과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일부 엉터리 전문가의 어설픈 쥐 실험과 피해 등급 판정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12년 동안 비윤리적인 제조사가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꼼수로 고집해왔던 ‘쥐 실험을 통한 과학적 인과성’은 이제 확실하게 폐기해야 한다는 뜻이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1심 선고 관련 회견. 연합뉴스 제공

● ‘살인적 사용법’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가습기 살균제의 인체 독성을 재판정에서 따져야 할 이유는 없다. 환경부에 등록한 7,883명의 피해자가 가장 확실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화학물질의 인체 독성이나 의학에 대해 문외한인 판사‧검사‧변호사가 ‘과학적 인과성’을 두고 논쟁을 벌이는 모습은 웃지 못할 코미디일 뿐이다. 심지어 재판부가 자신들의 전문적인 증언을 엉뚱하게 잘못 이해했다고 불평하는 전문가도 있는 형편이다.

재판부가 1994년부터 ‘어린아이에게도 안전하다’는 광고로 소비자의 이성을 마비시켰던 가습기 살균제 제조사에게 확실하게 사법적 책임을 물어야 하는 문제는 따로 있다. 계면활성제를 전혀 넣지 않은 ‘맹물'을 국가기술표준원에 ‘세정제’로 등록했다는 사실이다.

가습기 살균제는 처음부터 가습기의 물때와 미생물 억제에는 아무 효과를 낼 수 없는 엉터리 제품이었다는 뜻이다. ‘등록’만 받았을 뿐이지 제조‧판매를 ‘허가’한 것은 아니었다는 변명은 국민의 입장에서 절대 용납할 수 없는 궤변일 뿐이다.

가습기 살균제를 밀폐된 실내에 지속적으로 분무하도록 요구한 ‘살인적 사용법’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면역 체계가 약하고 배출구가 없는 호흡기에는 수돗물에 남아있는 극미량의 미네랄(광물질)도 위험하다는 것이 명백한 ‘과학’과 ‘상식’이다.

그런 호흡기에 균 성분을 지속‧반복적으로 분무하는 것은 명백한 살인 행위가 될 수밖에 없다. 가습기 살균제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창의적 제품’이라던 산업부의 요란한 찬사에 대한 책임도 무겁다. 

참고로 미국의 환경보호청(EPA)은 소비자에게 초음파 가습기에 반드시 ‘생수’를 쓰도록 권고하고 있다. 인터넷에서 ‘EPA’와 ‘humidifer’를 검색하면 누구라도 곧바로 확인할 수 있는 명백한 사실이다. 국가 경제와 국민 생활에 필요한 산업화 기술을 관리해야 하는 산업부와 국가기술표준원이 정작 국민 건강을 지켜주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과학’과 ‘상식’을 외면하고 있었던 책임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뒤처리를 맡게 된 환경부의 책임도 절대 가볍지 않다. 제조사가 제품을 판매할 때 ‘위험성을 몰랐기 때문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환경부의 입장은 터무니없는 것이다. 2000년 이상 안전하다고 믿고 써왔던 석면의 독성을 몰랐던 미국의 맨빌 사는 피해자에게 2500억 달러를 지급해야만 했다. 40년 전 미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당시 피해자들이 자신들의 증상과 석면 사이의 과학적 인과성을 입증해야 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정부가 석면 노출에 의해서 나타나는 의학적 증상을 확인했을 뿐이다.

가습기 살균제의 피해를 폐섬유증으로 한정시키고 피해자에게 입증 책임을 떠넘겨버린 책임도 가볍지 않다. 장기간에 걸쳐 만성 독성물질에 지속‧반복적으로 노출되는 경우에 인체에 나타날 수 있는 피해 증상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과학적‧의학적 방법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한 진실이다.

쥐 실험과 피해 ‘등급’ 판정으로 짭짤한 이익을 챙긴 전문가와 시민단체의 문제도 심각하다. 피해자의 아픔을 철저하게 외면해버린 것도 용납할 수 없다. 그러나 자신의 전문성을 엉뚱한 목적으로 활용한 것이 훨씬 더 심각하다.

정부와 사법부가 확실한 의지를 보여야 한다. 피해 사실을 입증하는 일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건강보험공단이 가지고 있는 자료를 활용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다. 살균 성분을 호흡기에 노출시킨 ‘살인적 사용법’의 심각성에 대한 확실한 인식이 필요하다. 이제 10년이 넘도록 이어지고 있는 ‘인체 독성에 대한 과학적 인과성’ 논란을 정말 마무리해야 한다. 정부가 나서야만 가능한 일이다.

※필자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 교육, 에너지, 환경, 보건위생 등 사회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2900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duckhwan@sogang.ac.kr ]

Copyright © 동아사이언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