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도쿠가와 막부 멸망은 ‘오오쿠’로부터
도쿠가와 막부 에도성(江戶城)의 메인 빌딩(혼마루고텐, 本丸御殿)은 신하들이 정무를 보는 오모테무키(表向), 쇼군(將軍)의 집무실인 나카오쿠(仲奧), 그리고 쇼군의 정처와 후궁들이 거주하는 오오쿠(大奧)로 나뉘어 있었다. 오모테무키, 나카오쿠의 면적을 합쳐도 4688평이었던 데 비해, 오오쿠는 6310평이었다. 안 그래도 사치스러웠던 오오쿠는 9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나리(1773~1841) 재임기에 더욱 호화로워졌다. 보통 쇼군은 7·8명 정도의 측실을 두었는데 이 사람은 약 40명을 두었다. 그중에 정실(미다이 도코로, 御台所)을 포함해 17명의 여인에게서 자녀 55명을 낳았다. 측실이 많아지니 자연히 부속인원과 경비도 한층 늘어, 많을 때는 오오쿠 인원 1000명, 경비는 막부 1년 예산의 20%에 달하기도 했다.
쇼군이 오오쿠에 대해 지나친 열정을 쏟게 되면 세상이 금방 알아채는 법이다. 그리되면 낭비 정도가 아니라, 정치개입이 문제가 된다. 막부는 측실들의 ‘베갯밑 청탁’을 방지하기 위해 기발한 제도를 두었다. ‘오소이네(御添寢)’라고 해서, 한 측실이 쇼군과 잠자리에 들면 다른 여인이 그 옆에 함께 자는 것이다. 이 여인은 다음날 아침 옆방에 자고 있던 고위 상궁에게 간밤의 일을 보고했다. “그야말로 기괴한 관습이지만 오오쿠의 관습은 모든 게 이런 식이어서, 현대 우리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 매우 많았다.”(村井益男 <江戶城:將軍家の生活>)
그러나 제도는 어디까지나 제도일 뿐이다. 쇼군의 귀를 잡고 있는 여인에게 선을 대기 위해, 금남(禁男)의 벽을 뚫고 치열한 공작이 벌어졌다. 뇌물도 쏟아져 들어왔다. 오오쿠의 비위를 거스르는 정책은 폐기되었고, 모처럼 제대로 된 개혁을 해보려던 정치인은 실각했다. 밖에서는 아편전쟁이 터지고 안에서는 전직 관리가 민란을 일으켜 오사카시 5분의 1이 불타는 충격적인 일(오시오 헤이하치로의 난, 1837)이 일어나도 태연자약했다.
그 폐해를 정면으로 지적하고 나선 이가 미토번 다이묘(水戶藩大名) 도쿠가와 나리아키(1800~1860)였다. 이 사람은 ‘존왕양이(尊王攘夷)’를 부르짖으며 일본의 위기와 개혁을 호소해 일약 스타덤에 오른 젊은 다이묘였다. 당시 일본은 막부 휘하에 270개 정도의 번(藩, 봉건국가)이 있었는데, 미토번은 다이묘의 이름에서도 짐작되듯, 쇼군의 친척 번이었다. 친척 번들 중에서도 가장 가까운 번 3곳을 고산케(御三家)라 했는데, 미토번은 그중 하나였다. 이런 번의 다이묘가 오오쿠 개혁을 들고 나왔으니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때부터 나리아키는 오오쿠 기피대상 제1호가 되었다. 다른 이유도 있었다. 나리아키의 여성편력은 혹자가 ‘난맥(亂脈)’이라고 표현할 정도였는데, 급기야는 오오쿠 출신으로 형수의 수행비서를 하던 여인에게까지 손을 대어, 큰 스캔들이 난 적이 있었다. 1858년 쇼군의 아들이 없어 나리아키의 아들이 쇼군 세자 후보로 올랐을 때, 오오쿠가 결사반대한 것도 이런 이유들 때문이었다.
나리아키는 오오쿠 인원과 예산을 삭감해 국방비로 돌리자고 주장했다. 그야말로 오오쿠가 제일 싫어할 소리를 한 것이다. 결국 1844년 미토번의 내분 속에서 막부는 그를 다이묘 자리에서 내쫓아 버렸다. 토지조사를 새로 하고 불교세력을 억누른 그의 급진적 개혁정책(덴포개혁, 天保改革), 그리고 막부정책을 사사건건 비판한 것이 중요한 이유였겠지만, 세간에서는 오오쿠가 그를 실각시켰다고 쑥덕거렸다. ‘존왕양이’의 스타정치가도 거꾸러트렸으니 오오쿠가 세긴 셌나 보다. 그 후로 오오쿠 개혁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쑥 들어갔다. 결국 막부가 망하기 1년 전쯤 막부재정이 더 이상 버티기 힘들어지자, 오오쿠 경비에 겨우 손을 댔으나 미미한 정도에 그쳤고, 막부는 호화찬란한 오오쿠를 끌어안은 채 붕괴했다. 남 일이 아니다.
박훈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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