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서 울리는 `부동산사기 주의보` [이미연의 발로 뛰는 부동산]

이미연 2023. 12. 20.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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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지주택'으로 불리는 '협동조합형 민간임대주택'
법 개정에도 행정당국 사각지대 놓여…지주택보다 더 위험
사진 연합뉴스
출처 화성시

"10년간 살아보고 결정하자." "10년 임대아파트 3000만원으로 10년 살자." "전세사기 피해가 확산하는 가운데 안전한 민간임대 아파트가 대안."

올해 주요 부동산 이슈 중 하나였던 '전세사기'의 상흔이 아직도 커지고 있는데, 최근 또다른 부동산 분야(?)에서 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합니다. '지역주택조합'의 탈을 쓴 '협동조합형 민간임대아파트'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천안, 대구, 인천, 김포, 창원, 오산...어휴 이 정도면 전국 방방곳곳에서 창궐(?)하는 수준이라고 봐야할 것 같은데요. 가장 최근에는 지난 18일 화성시에서도 나왔네요. 이렇게 지자체들이 앞다퉈 '협동조합 민간임대주택' 주의보를 내고 있습니다. 이게 무슨 사단일까요.

아니 그거 한 10년 싸게 살다가 분양받으라고 하던데, 그럼 좋은 거 아니냐-라고만 판단하시면 절대 아니되십니다. 그렇게 단순 홍보 멘트에 낚여 조합원 가입을 하신다면 몇십여년간 많은 이들이 피눈물을 쏟게한 '지역주택조합의 악몽'이 재현되기 때문입니다.

우선 어떤 사업구조인지부터 말씀드릴게요. '협동조합 민간임대'는 집이 필요한 사람들이 모여 협동조합을 만들어 직접 시행(혹은 시행사)해 아파트를 짓습니다. 이후 완공되면 8~10년간 임차해 살다가 저렴한 가격으로 분양을 받는 방식입니다.

이런 순수(!)한 취지로 실제 성공한 사례도 있기는 합니다. 국토교통부의 시범사업으로 진행된 경기도 남양주시 '위스테이별내사회적협동조합'인데요, 2018년에 착공해 2020년 8월에 입주를 완료한 491세대 규모의 단지입니다.

'돌봄과 교육의 공동체'를 지향하는 모델이었다는데요. 조합원으로 가입해야 입주할 수 있고, 입주예정자들은 입주 전 조합원 교육을 의무 이수하고 지역 모임 등을 통해 이웃을 알아가게 하는 등 그야말로 '이상적인' 케이스였다고 합니다.

아니 그럼 문제가 뭐냐-고 물으실 분들을 위해 다시 사업 구조로 되돌아갈게요. 협동조합 기본법에 따라 설립된 민간임대협동조합이 30호 이상의 임대주택을 지어 조합원들에게 우선 공급하는 방식인데요, 입주한 조합원들은 10년간의 임대 기간이 끝나면 살고 있던 주택의 분양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사업은 협동조합추진위원회를 꾸려 발기인을 5명 이상 모집한 뒤 협동조합 설립, 조합원 모집 신고, 사업계획 승인 등 각종 절차를 밟아야 하고, 조합원 모집 전에는 임대주택 건설 부지 80% 이상의 사용 동의서(토지 사용 권원)를 확보해야 합니다.

물론 홍보관 등에서 조합원 모집할 때는 이런 복잡한 설명보다는 소비자(?) 맞춤으로만 멘트가 나오겠죠? "최초 분양가의 일부(10% 안팎)만 계약금으로 내면 저렴한 임대료로 최대 10년 동안 내 집처럼 사용하다 시세보다 훨씬 싼 분양권(시세의 80%)을 얻을 수 있다"고만 홍보하는 식이죠. 때문에 집 없고 종잣돈마저 넉넉치 않은 서민들이라면 정말 귀가 번쩍 쏠릴 수 밖에 없을 듯 합니다.

진짜 문제는 여기부터입니다. 협동조합이 설립되기 전에는 행정당국의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부분입니다. 설립 신고는 지자체에, 조합원 모집 신고는 관할구청에 하도록 되어있는데 그 전까지는 시·군·구가 사업 추진 현황을 제대로 알 수 없다는 부분이 함정이거든요.

조합원 모집 전에는 토지 소유권이나 토지 사용 동의서에 대한 정보 공개 의무가 없는 상태라 홍보된 내용이 사실인지를 확인하기조차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협동조합 발기인을 모집한다며 홍보관부터 세운 현장도 적지 않습니다.

대구에서는 올해 1월 홍보관을 세워서 조합원을 모집하던 협동조합과 시행사가 그야말로 '야반도주'를 한 사건도 발생했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홍보관은 문을 닫았고, 더 황당한 부분은 구청에 해당 협동조합의 조합원 모집 신고 자체가 없었다는 점입니다. 계약금 4000만원을 내고 한참 뒤에야 계약서를 받아보니 '협동조합형 민간임대'였다는 부분을 그제서야 알게된 피해자까지 나왔습니다.

'원수에게 권하라'는 꼬리표가 붙는 지역주택조합의 경우 그나마 최소 15%의 소유권을 확보해야 설립인가를 받을 수 있는데, 협동조합형은 이런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없어서 사업 무산시 피해는 고스란히 조합원 몫이 되는 것이 사각지대입니다.

법이요? 한번 바뀌긴 했습니다. 국토부는 지난 2020년 5월 27일부터 30가구 이상의 민간임대주택을 조합원에게 공급할 목적으로 설립된 협동조합이나 협동조합 발기인이 조합원을 모집하려는 경우 관할 시장, 군수, 구청장에게 신고하고 공개모집 방법으로 조합원을 모집토록 개정했습니다...만 대구 사례같은 사건이 전국에서 우후죽숙 튀어나오고 있는 상태입니다.

특히 협동조합 발기인 단계에서 홍보되는 납입금 등의 내용은 추후 변경 가능성이 높은데다, 토지 매입이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사업이 지연되거나 무산될 위험도 있습니다. 아니 발기인은 아예 출자금 반환 규정조차 명시되지 않은 곳들도 많다고 합니다.

일각에서는 지주택과 사업방식이 비슷하고 피해 양산 행태도 유사해 '제2의 지주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지만, 허점이 더 많아서 지주택보다 피해가 더 커질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피해 신고가 누적되자 지자체들은 일단 급하게 '주의보'부터 내고 있습니다. 조합원 모집신고가 이뤄졌는지, 출자금 반환 규정이 있는지, 사업계획 미확정으로 인한 사업 지연 혹은 취소 가능성이 있는지 등 '조합가입 필수 확인사항'을 안내하는 수준입니다.

또 다른 지자체는 '협동조합 민간임대'도 사업 부지 소유권을 최소 15% 이상 확보해야만 조합원을 모집할 수 있도록 국토부에 법령 개정을 요청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네요. 하다못해 지주택 수준의 강제성은 있어야하지 않겠느냐는 취지인 듯 합니다.

이렇게 지자체 주의보와 피해사례와 기사가 쏟아져도 피해는 늘어...날 가능성이 더 높아보입니다. '싼 것이 비지떡'이라는 옛말은 2023년 부동산 시장에서는 '싼 것이 독약'이라고 업그레이드해야 할 것 같네요. 싸고 좋은 집은 없습니다. 보셨다고요? 그래도 일단 제대로된 사업(혹은 물건)인지 의심부터 하고, 백번 두들겨보셔야만 합니다. 이미연기자 enero20@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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