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마음 못 읽는 출산장려 정책[광화문]

권성희 기자 2023. 12. 20.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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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 서울광장을 찾은 가족들의 모습. /사진=홍봉진기자 honggga@


친하게 지내는 중학교 동창이 6명 있다. 이 중 5명이 아이가 없다. 셋은 미혼이고 둘은 결혼은 했으나 자발적 선택으로 아이를 낳지 않았다. 내 나이 50대 초반이니 친구들은 요즘 젊은 여성들의 결혼 기피, 자녀 기피 추세를 일찌감치 예견하고 앞서 나간 셈이다.

결혼하고도 아이를 낳지 않은 두 친구에게 "나이가 드니 자식이 없어 아쉽지는 않냐"고 물어봤다. 두 친구 모두 "아이 안 낳길 잘했다"고 했다. 아이가 있었으면 인생이 더 힘들었을 거란다. 한 친구는 외국 기업의 한국 지사장이고 한 친구는 대학 교수다.

국내 합계출산율이 0.7명으로 세계 236개국 중 최하위라고 한다. "중세 흑사병 수준의 인구위기"란 우려가 나온다.

국내 출산 기피 현상이 유독 심각하긴 하지만 출산율 하락은 선진국들의 공통된 문제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8개 회원국 중 합계출산율이 인구수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대체출산율 2.1명을 넘는 나라는 이스라엘뿐이다.

파이낸설 타임스(FT)의 칼럼니스트인 스티븐 부시는 "선진국에서 점점 더 사람들이 하고 싶어하지 않거나 할 수 없는 일 중의 하나가 부모가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은 출산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만 24개월 이하의 영아를 둔 부모에게 부모 급여를 지급하는 등 재정 투입을 늘리고 있다. 하지만 매년 출산과 육아를 지원하기 위한 자금을 늘려도 출산율 하락세는 지속되고 있다.

돈을 써도 출산율을 늘리는데 한계가 있기는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헝가리의 경우 세 자녀 이상 가구는 소득세를 안 내거나 내도 조금만 내도록 하는 등 국내총생산(GDP)의 5%를 출산 장려 정책에 쓰고 있다.

그럼에도 FT의 칼럼니스트인 부시에 따르면 헝가리의 합계출산율은 1.6명에서 더 올라가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이는 소득이 6만달러 이상인 가구에 대해서는 아동수당을 폐지하고 세번째 자녀부터는 어떤 추가적인 지원도 제공하지 않는 영국과 비숫한 수준의 합계출산율이다.

선진국에서 출산율이 떨어지는 원인은 값비싼 주거 비용과 최고의 직업을 얻기 위해서는 대학 졸업 이상의 교육이 필요한 현실 등 다양하다.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부모가 되는 것이 그리 매력적인 선택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요 몇 년 새 결혼은 했으나 아이는 갖지 않기로 했다는 후배들이 적지 않은데 이유는 모두 같았다. 아이를 낳으면 자기 인생에서 포기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아이를 낳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인구 소멸로 나라가 없어질 위기인데 무슨 소리냐며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설득할 수 있을까.

한 살 아이를 키우고 있는 한 후배가 둘째를 낳으면 회사를 그만둬야 할 것 같아 고민이라고 했다. 그러자 다른 후배가 "회사를 그만 두면 평생 벌 수 있는 소득이 얼마나 줄어드는 거야?"라고 했다.

FT의 칼럼니스트인 부시도 이 점을 지적했다. 선진국에서 남녀 사이의 임금 격차를 줄이려는 노력은 이뤄지고 있지만 부모가 되기로 결심한 사람들의 생애 소득에 대해선 여전히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선진국에서 출산율을 올리기 위한 거의 모든 정책이 친자녀에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 친부모 정책은 거의 없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인천시가 내년부터 인천에서 태어나는 모든 아이에게 18세까지 1억원을 지원한다는 파격적인 대책을 발표했다. 과감한 육아비 지원이긴 하지만 이 역시 자녀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부모가 출산 후에도 원하는 일을 하며 사회적 자유를 누리고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비전을 제시하지 않고는 부모가 되는 선택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임신하고 출산하면 여기저기서 찔끔찔끔 돈을 주는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지금 우리의 출산 장려 정책은 과연 한국에서 부모로 사는 삶이 매력적이라고 느껴지게 만들고 있는가.

결혼도, 출산도 선택인데 우리 사회는 결혼과 출산이 좋은 선택이라는 확신을 주고 있는지부터 돌아봐야 한다.

권성희 기자 shkwo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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