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서 살길 찾는 건설사, 10년 전 악몽과 위험한 전철 [분석+]

김정덕 기자 2023. 12. 20.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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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마켓분석
해외건설 수주액 증가세
정부 해외 수주 확대 장려
저가 수주 유혹 떨어내야
건설사들이 중동지역 플랜트 공사를 중심으로 해외수주에 나서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 2000년대 중반 이후, 국내 건설업계는 해외수주를 크게 늘렸다. '제2의 중동 건설 붐'이 일면서였다. 건설사들의 수주경쟁도 치열했다. 하지만 몇년 후 건설사들의 성적표는 참담했다. 저가수주를 앞세워 벌인 출혈경쟁이 부메랑으로 돌아온 탓이었다.

# 최근 건설업계가 다시 해외수주를 늘리고 있다. 그러자 일부에선 또다시 해외수주가 발목을 잡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괜찮을까.

대형 건설사들이 해외사업을 늘리고 있다. 국내 경기 부진으로 내수건설 업황이 좋지 않은 데다 금리까지 올라 자금조달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탓이다. 여기에 원자재 가격 상승까지 겹쳤다. 일감은 없고, 품은 많이 들고, 마진은 줄어드니까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는 거다.

이쯤에서 통계를 살펴보자. 시공능력평가 상위 5개 건설사의 올해 3분기 해외 매출(누적 기준)은 전년 동기 대비 늘었다. 이 기간 해외 매출이 가장 많이 증가한 곳은 삼성물산(건설부문)인데, 1조5102억원에서 6조9778억원으로 362.0%나 늘었다.

같은 기간 현대건설(현대엔지니어링 실적 포함)의 해외 매출은 30.3%, 대우건설은 30.0%, GS건설은 11.2% 증가했다. 해외건설 사업 비중이 낮은 DL이앤씨의 해외 매출도 46.9% 늘었다.[※참고: 일부 건설사의 경우 계열사 간 내부거래를 포함하고 있어 내수와 해외 매출의 합계는 실제 매출과 약간 다를 수 있다.]

삼성물산을 제외한 나머지 건설사(현대ㆍ대우ㆍGSㆍDL이앤씨)는 3분기 누적 내수 매출이 해외 매출과 함께 늘긴 했다. 문제는 이들의 내수 매출(감소)과 해외 매출(증가)도 3분기를 기점으로 엇갈렸다는 점이다. 상반기 이후 해외건설 사업을 늘리고 있다는 방증이다.

2013년 GS건설은 해외 플랜트 사업 손실로 대규모 영업적자를 기록했다.[사진=뉴시스]

실제로 지난 18일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해외건설 수주 통계에 따르면 올해 전체 해외수주액은 지난해보다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15일 기준 해외건설 수주액은 292억5000만 달러로 집계됐는데, 지난해 같은 기간(272억9000만 달러)보다 7.2% 늘었다.

정부도 해외건설 수주를 적극 장려하고 있다. 특히 2027년까지 해외건설 연간 수주액 500억 달러를 달성해 세계 4대 건설 강국에 진입한다는 목표를 추진 중이다. 그러자 일부에선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10여년 전 악몽이 되풀이되는 것 아니냐는 이유에서다. 무슨 말일까.

시계추를 2000년대 중반으로 돌려보자. 당시 중동지역을 중심으로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들이 쏟아졌다. '제2의 중동 건설 붐'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삼성물산이 두바이의 랜드마크인 부르즈 할리파를 지은 것도 이 시기(2004~2010년)다.

이같은 붐을 타고 건설사들의 해외수주는 가파르게 늘었다. 2004년 75억 달러였던 해외수주액은 2006년 165억 달러로, 이듬해인 2007년에는 398억 달러로 증가했다. 2010년에는 716억 달러로 최고조에 달했다.

하지만 해외수주액 증가는 저가수주 경쟁으로 얻어낸 결과였고, 이는 수년 후 원자재 가격이 치솟아 공사원가율이 상승하자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일례로 2013년 해외 플랜트 사업에서 큰 손실을 입은 GS건설은 그해 영업손실만 9354억원에 달했다. 같은해 대우건설도 2446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현대건설은 중동지역 현장에서 손실을 입은 탓에 2014년 매출이 늘어난 것과는 달리 당기순이익은 확 줄어들었다. 최근의 해외수주 증가세를 두고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해외건설협회 관계자는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면서 우려를 일축했다. "현재 중동지역을 중심으로 다양한 건설 프로젝트들이 발주되고 있고, 아시아지역 시장도 꾸준하게 성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국내 건설사들의 수주가 그렇게 많지 않은데, 그 이유는 건설사들이 가격을 고려해 전략적으로 입찰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처럼 출혈을 빚을 정도의 저가입찰 경쟁을 하지 않는다는 거다.

실제로 글로벌 컨설팅업체 IHS마킷에 따르면, 올해 세계 건설시장 규모는 지난해보다 4.4% 증가한 14조1000억 달러로 예상된다. 2016년엔 10조 달러대였으니 40%가량 늘어난 셈이다.

우리 건설업계가 강세를 나타내는 중동지역의 건설시장 규모는 2020년까지 정체돼 있다가 2021년 이후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또다른 강세 지역인 아시아지역 건설시장 규모는 최근 수년간 성장세가 꺾인 적이 없다.

그럼에도 300억 달러 내외로 예상되는 우리나라의 올해 해외건설 수주액은 2016년(281억9230만 달러)보다 6%가량 증가하는 데 그쳤다. 시장은 커졌지만 마구잡이식 수주를 하고 있지는 않다는 방증이다.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수주 지역도 조금씩 다변화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중동과 아시아가 지역수주 1ㆍ2위를 다퉜는데, 올해는 북미(94억4891만 달러)가 1위, 중동(83억8530만 달러)과 아시아(56억7182만 달러)가 각각 2ㆍ3위를 차지했다(11월 30일 기준). 수주지역이 다변화하면 그만큼 리스크가 줄어드는 건 당연한 이치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건설업계가 과거처럼 제살 깎아먹기 경쟁만 하지 않고 지금처럼 리스크를 관리하면서 해외수주를 늘려간다면 국내 건설경기 부진의 대안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변수는 국내 건설 경기다. 내수가 어느 정도 받쳐줘야 업계도 다급해지지 않을 수 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건설 수주액은 229조7000억원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이보다 17.3% 줄어든 190조1000억원, 내년엔 올해보다 1.5% 더 감소한 187조3000억원으로 전망했다.

건설사들이 내수시장에서 나눠 먹을 게 별로 없을 거란 얘기다. 과연 건설업계의 수주 경쟁은 과열 없이 지나갈 수 있을까.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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