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병·비만, 아무 의사한테 진료받아도 된다?
"호르몬은 '수영장의 피 한 방울'로 비유되곤 합니다. 온몸에서의 막중한 역할에 비해 분비량이 너무 적기 때문이지요. 극미량의 호르몬 수치는 신체 환경에 따라 급변합니다. 당뇨병, 갑상선질환, 골다공증, 비만 등은 호르몬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비전문가가 단순히 수치만 보고 진단해선 안 됩니다." -정윤석 대한내분비학회 이사장(아주대 의대 교수)
"호르몬은 뇌하수체, 시상하부, 갑상선, 흉선, 췌장, 부신, 고환, 난소 등 신체 곳곳에서 분비돼 혈액이나 림프관을 타고 특정한 장소로 이동해 그곳 수용체와 결합해 고유한 역할을 합니다. 분비량에 문제가 있거나 불량 호르몬이 분비되면 제 역할을 못하기 때문에 병이 생기지요. 거꾸로 호르몬을 제대로 알고 조절할 수 있으면 수많은 병을 극복할 수 있겠죠?" -백자현 대한내분비학회 회장(고려대 생명과학부 교수)
"분비량은 극미하지만 인체에서 막중한 역할"
내분비학회 정 이사장과 백 회장은 15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사무실에서 이사회를 앞두고 이뤄진 인터뷰에서 "일반인들은 내분비내과가 호르몬과 관련된 병을 전문적으로 다룬다는 것을 잘 몰라 엉뚱한 치료를 받거나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면서 "학회가 아시아를 대표할 만큼 성장했지만 이제는 대중에게 더욱 더 가까이 다가가야 할 때"라고 약속했다.
정 이사장은 미국 메이요클리닉과 로마린다대에서 골다공증에 대해 연구한 골대사질환의 대가. 백 회장은 프랑스 파리6대학에서 분자세포약리학 박사를 받고 국립과학연구센터(CNRS) 분자세포유전학연구소에서 재직하다 귀국해 연세대 의대 교수를 거쳐 고려대에서 뇌 신경전달 물질과 신경 펩타이드의 미세한 세계를 연구하는 생명과학자다.
-내분비(內分泌)라는 말이 어렵다. '호르몬 내과'로 부를 수도 있겠지만 일반인은 그것도 어려워할 것 같다. 호르몬이 '불러 깨우다,' '자극하다' 등의 뜻을 가진 그리스어 '호르마오(hormao)에서 온 말이라던데….
"그렇다. 대중에게 다가서기 위해 학회 이름을 바꿔야 할지 고민하지 않았겠는가. 내분비와 호르몬에 대해 좀 더 적극적으로 알릴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극미량의 호르몬이 신체 곳곳에서 여러 기능을 하며 생명 유지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데, 호르몬 수치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나 감기에 걸리는 등 신체 환경에 따라 크게 바뀌기 때문에 호르몬 특징을 잘 아는 내분비내과 의사가 환자를 봐야 제대로 치료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이 당뇨병 정도는 웬만한 의사는 다 치료할 수 있다고 여기지만 제대로 치료하는 의사는 드물다."
-그럼 내분비내과에서 다루는 호르몬 질환은 어떤 것이 있나?
"비만, 대표적 호르몬질환으로 부상"
"대표적인 것이 국민병인 당뇨병으로 전문가가 인슐린 호르몬 수치를 제대로 파악해야 정확히 치료할 수 있다. 인구 고령화와 진단기술의 발달로 환자가 급증하고 있는 갑상선질환, 골다공증 등도 대표적 호르몬 질환이고 이상지질혈증, 뇌하수체질환, 부신질환 등도 해당한다. 요즘에는 비만이 대표적 호르몬 질환으로 부상하고 있다."
-최근 의료·제약계뿐 아니라 주식시장에서도 관심의 중심인 비만치료제 'GLP-1'이 호르몬과 관계있는 약이라고 들었다. 일론 머스크가 GLP-1의 일종인 위고비를 투여해서 몸무게 10㎏을 줄였다던데….
"최근 세계적 학술지 《사이언스》가 2003년 가장 주목을 끌었던 과학 성과로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Glucagon-like peptide-1) 제제'를 선정했다. 원래 GPL-1은 음식을 먹으면 장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췌장을 자극해 인슐린을 분비케해 혈당을 낮추고 뇌 수용체를 '불러깨워' 포만감을 일으키게 한다. 제약사가 GPL-1의 분자 구조를 살짝 바꿔 작용 시간을 길게 만든 것이 GPL-1 유사체다. 원래 내분비내과에서 당뇨병 치료제로 쓰였는데 지금까지는 체중감소, 구토, 구역질, 설사 외에는 큰 부작용이 없었다. 그러던 중 비만에 초점이 맞춰 다양한 약들이 개발되고 있다. 제약사들이 비만이 여러 합병증을 불러일으키는 주요 질환이 되고 있다는 점을 놓치지 않고 대규모 투자를 한 결실이기도 하다."
-GLP-1 유사체가 오랫동안 당뇨병 환자들에게 투여했기 때문에 안전한 약일 가능성이 큰 것 같은데….
"부작용이 아주 없는 약은 없다. 수많은 비만 치료제가 획기적 효과를 기대하며 나왔다가 뒤늦게 부작용 탓에 퇴출되기도 했다. 2017년 주사제 삭센다가 처음 나왔을 때 무분별하게 처방됐던 경험이 있다. 삭센다는 쥐 대상 동물실험에서 갑상선암을 유발했고 췌장염도 일으키기 때문에 특정 갑상선암 병력이나 가족력이 있는 환자에겐 처방해선 안되지만 '만병 통치 다이어트제'로 사용됐다. 건강한 임산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 그야말로 무방비로 약이 풀렸다. 내분비내과 의사로서 그 때 위험성을 간과하고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한 데 대해 반성한다."
GLP-1 기반 비만약 국내 시판 움직임 안보여
-위고비, 마운자로 등의 GPL-1 유사체가 국내 시판되면, 이제는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우리 학회뿐 아니라 당뇨병학회, 비만학회, 지질동맥경화학회 등 우리와 관련 있는 학회에서도 약의 허가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데 외국에서는 벌써 허가되고 있고 국내 허가와 관련된 소문은 무성하지만 노보노디스크, 릴리 등의 제약회사가 이 약의 허가와 관련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제약회사 시각에서는 대한민국이 매력적이지 않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약과 관련된 환자가 급증하고 있고 제대로 처방하면 국민 건강에 도움이 될 텐데 안타깝다."
-호르몬은 종류가 무척이나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성호르몬, 성장호르몬, 환경호르몬 등도 내분비학회에서 다루는 분야인가?
"당연하다. 성조숙증, 성장 장애 등과 성기능 장애도 내분비 관련 전문가들의 진료 또는 연구 대상이다. 특히 성조숙증과 성장 장애는 내분비내과 전문의뿐 아니라, 소아청소년과의 내분비 전문가도 본다. 최근에는 환경호르몬에 관심을 기울이는 학자도 적지 않다. 환경호르몬은 외부에서 인체로 들어와 호르몬에 작용해 내분비계를 교란시키는 물질을 가리킨다. 환경호르몬은 성조숙증, 정자 생성 장애 등의 문제를 일으킨다."
-환경호르몬은 산업의학과나 예방의학과에서 다루는 줄 알았는데….
"그곳에서는 호르몬 물질을 과녁으로 삼아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다. 반면, 우리는 호르몬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환경호르몬은 출산, 불임 등에 영향을 미치는데 우리의 연구 결과들이 산부인과, 피부과의 환자 치료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이성주 기자 (stein33@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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