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법조계 양심’ 장핑 전 정법대 총장 별세 …“오로지 진실에만 고개 숙인 자”

김선영 기자 2023. 12. 20.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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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법조계의 양심'으로 불리던 장핑(江平) 전 중국 정법대 총장이 투병 끝에 19일 별세했다.

중국 정법대는 홈페이지를 통해 장핑의 부고를 알리며 "우리나라의 유명한 법학자이자 법률 교육자이며 중국 민법·상법의 주요 창시자 중 한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명보는 "장핑은 명망 있는 중국 법조계의 '양심'이자 정법대의 '영원한 민주주의 총장'으로 불렸으며, 그의 삶의 모토는 '오로지 진실에만 고개를 숙인다'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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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법학자 장핑홍콩 명보 캡처·연합뉴스

‘중국 법조계의 양심’으로 불리던 장핑(江平) 전 중국 정법대 총장이 투병 끝에 19일 별세했다.

20일 홍콩 명보(明報)에 따르면 장핑은 전날 정오 쯤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93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 중국 정법대는 홈페이지를 통해 장핑의 부고를 알리며 "우리나라의 유명한 법학자이자 법률 교육자이며 중국 민법·상법의 주요 창시자 중 한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명보는 "장핑은 명망 있는 중국 법조계의 ‘양심’이자 정법대의 ‘영원한 민주주의 총장’으로 불렸으며, 그의 삶의 모토는 ‘오로지 진실에만 고개를 숙인다’였다"고 전했다.

장핑은 1930년 12월 28일 저장(浙江)성 닝보(?波에서 태어났으며, 옌칭대 언론학과와 모스크바국립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귀국 후 베이징정법학원(정법대 전신) 민법교육연구실에서 근무하며 민법·상법 교육 및 연구에 종사했다. 1988년 정법대 총장이 된 그는 1989년 학생운동의 민주적 요구를 지지하며 ‘민법전’을 편찬했다. 그러나 그해 당국의 6·4 톈안먼 시위 유혈진압 이후 1990년 2월 사임했다. 그는 평소 "헌법에 따라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고 강조하며 법치에 대해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내왔다. 2001년 10월 정법대 종신 교수가 된 그는 자신의 사명이 법치를 외치는 것이며 그렇게 목소리를 내는 것이 어느 정도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장핑은 공산당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1989년 톈안먼 민주화 시위를 지지한 것으로 유명하다. 톈안먼 민주화 시위의 주역 중 한명으로 미국에 망명한 왕단)은 엑스(구 트위터)를 통해 장핑을 애도하며 "그는 1989년 학생운동 당시 학생들의 민주적 요구를 확고히 지지했다. 그는 어둠 속의 밝은 빛과 같았고, 계속해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옹호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라고 추모했다.

김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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