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 마지막 글씨, 113년 만에 고국으로

"용과 호랑이의 웅장한 형세를 어찌 지렁이와 고양이의 모습에 비견하겠는가." 중국 뤼순(旅順) 감옥에 수감된 안중근(1879∼1910) 의사는 사형집행을 목전에 두고서도 흔들리지 않는 호연지기를 보였다. 커다란 종이에 먹으로 써내려간 ‘용호지웅세 기작인묘지태(龍虎之雄勢 豈作蚓猫之態)’라는 휘호엔 용과 호랑이에 빗댄 당당하고 씩씩한 기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안 의사가 남긴 이 유묵(遺墨·생전 남긴 글씨나 그림)이 19일 서울옥션 미술품 경매에서 19억5000만 원에 낙찰됐다. 당초 추정가 5억~10억 원을 크게 웃도는 가격으로 역대 안 의사 유묵 중 최고가다. 종전 최고가는 2018년 7억5000만 원에 낙찰된 ‘승피백운지우제향의(乘彼白雲至于帝鄕矣·저 흰구름 타고 하늘 나라에 이르리)’다.

안 의사는 사형을 선고받은 1910년 2월 14일부터 순국한 3월 26일까지 40일간 뤼순감옥에서 200여 점의 휘호를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국내에 있는 유묵은 30여 점으로, 이 중 26점은 보물로 지정됐다. ‘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 軍人本分·나라를 위한 헌신이 군인의 본분), ‘일일부독서 구중생형극’(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하루라도 책을 안 읽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다) 등이 대표적인데 이번 작품 역시 가치가 높단 평가다. 필치가 시원스럽고 "경술년 삼월 뤼순 감옥에서 대한국인 안중근이 쓰다"란 문장과 특유의 짧은 약지 손도장도 선명하다.

독립운동가의 유묵이 113년 만에 반환됐단 점에서도 의미가 남다르다. 이 휘호는 일본 소장가가 출품한 것으로 이날 치열한 경합 끝에 한 국내 소장가가 낙찰받았다. 이옥경 서울옥션 부회장은 "안중근의 기개와 의지가 가장 잘 드러나는 작품"이라며 "일본에 있던 작품이 국내에 돌아온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유승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