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로라도주 대법원, 트럼프 대선 후보 자격 박탈···“내란 가담”
트럼프 측 “미 연방대법원에 상고할 것”
다른 주 법원의 법적 판단에 파장 ‘촉각’
미국 콜로라도주 대법원이 공화당 유력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내년 대선에 출마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21년 지지자들이 벌인 ‘1·6 의사당 폭동’ 당시 내란을 선동하고 가담했기 때문에 대선 후보 자격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번 판결은 콜로라도주에서만 적용되지만, 비슷한 소송이 진행되고 있는 다른 주에서도 같은 판결이 이어질 경우 대선 판도가 격변할 수 있다. 다만 보수 우위의 연방대법원에서 뒤집힐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그러나 미국 민주주의가 다시 한번 연방대법원에 의해 결정지어진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상당한 후폭풍이 예상된다.
어떤 근거로 트럼프 후보 자격 박탈했나
19일(현지시간) 콜로라도주 대법원은 재판관 4대 3 의견으로 “트럼프가 미국 수정헌법 제14조3항에 따라 대통령직을 수행할 자격이 없다고 판단했다”면서 “이에 따라 콜로라도주가 그를 대통령 예비선거 투표 용지에 후보자로 등재하는 것은 선거법 위반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수정헌법 14조3항은 남북전쟁 이후인 1868년 남부 반란군이 정부에 복귀하는 것을 막기 위해 고안된 조항으로, 이 조항에 근거해 대선 후보에 대한 자격 정지 판결이 나온 것은 미국 역사상 이번이 처음이다.
이 조항은 헌법을 지지하겠다고 선서한 공직자가 내란이나 헌법 위협 행위에 가담할 경우 다시 공직을 맡을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쟁점은 대통령직이 이 조항의 ‘공직’에 해당하는지 여부였다. 앞서 지난 11월 콜로라도주 1심 법원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내란 가담’ 혐의를 인정하면서도 이 조항이 대통령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바 있다.
그러나 주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트럼프 측 변호인은 의사당에서의 폭력 행위가 ‘반란’으로 분류될 만큼 심각하지 않았으며, 1·6 사태 당일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지자들에게 한 연설은 표현의 자유에 따라 보장된다고 주장했다. 또 법원이 특정 대선 후보를 제외하라고 명령할 권한이 없다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주 대법원은 “2021년 1월6일 의사당 공격을 ‘반란’이라고 판단하는 데 거의 어려움이 없었다”면서 “트럼프가 여러 주에서 공화당 관리들에게 선거 결과를 뒤집도록 압력을 가했다는 상당한 증거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이런 결론에 가볍게 도달하지 않았다”며 “우리는 두려움이나 호의 없이, 법이 내린 결정에 대한 대중의 반응에 흔들리지 않고 이를 적용해야 하는 엄숙한 의무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밝혔다.
비슷한 소송 진행 중인 다른 주 판결 주목
이번 판결에 따라 콜로라도주에서는 2024년 공화당 예비선거 투표 용지에 트럼프의 이름을 기재할 수 없게 된다. 다만 콜로라도주 대법원은 트럼프 측이 상고할 수 있도록 이번 판결의 효력을 콜로라도주 예비선거 후보 마감일 직전인 내년 1월4일까지 유예하기로 했다. 연방대법원이 트럼프 측 상고를 받아들여 이번 사건 심리를 결정하면,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판결의 효력은 더 미뤄진다.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은 “완전히 결함이 있는 판결”이라며 연방대법원에 즉각 상고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상고는 거의 확실하지만, 사건을 맡을지 여부는 대법관들의 몫”이라며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트럼프의 이름은 투표 용지에 기재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뉴욕타임스(NYT)도 “연방대법원이 판결을 내리기까지 상당한 시일이 걸릴 수 있고, 이에 따라 내년 3월로 예정된 콜로라도주 공화당 예비선거는 (이번 판결의) 영향을 받지 않은 채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이번 판결의 효력이 발생해도 콜로라도주 안에서만 적용돼,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다른 지역 경선 출마에는 문제가 없다. 그러나 민주당 우세 지역으로 분류되는 콜로라도주 외에도 25개 주에서 비슷한 소송이 진행되고 있어, 다른 주에서도 비슷한 법적 판단이 나올 경우 파장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AP통신은 “트럼프는 2020년 대선 당시 콜로라도주에서 13%포인트 격차로 패배했고, 내년 대선 승리를 위해 콜로라도주의 지지가 결정적인 것은 아니다”라면서 “그에게 더 큰 위협은 다른 주에서도 콜로라도 사례를 따라 비슷한 판결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WP도 “다른 주에서도 동일한 결론이 나온다면 트럼프는 공화당 후보 지명과 내년 대선 승리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앞서 미네소타주, 미시간주 법원은 비슷한 소송에서 트럼프 측 손을 들어준 바 있다. 미네소타 대법원은 예비선거 후보 자격은 정당 내부 선거이기 때문에 소송 대상이 아니라며 기각했고, 미시간주 법원은 사법부가 대선 후보 자격을 판단할 권한이 없다고 판결했다. 다만 미시간주에서는 현재 항소가 진행 중이며, 미네소타 대법원도 예비선거가 아닌 본선거 후보 자격은 소송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단서를 달아 여지를 남겼다.
공은 다시 연방대법원으로
공은 이제 연방대법원으로 넘어가게 됐다. 캘리포니아대학 법학 교수인 리처드 하센은 NYT에 “다시 한 번 대법원이 미국 대선의 중심에 서게 됐다”고 말했다. 노트르담로스쿨의 선거법 전문가인 데릭 뮐러 교수는 “역사상 전례 없는 사건”이라며 “콜로라도주 법원 판결이 단기적으로 다른 주 판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연방대법원의 재심이 불가피해 보인다”고 말했다.
보수 우위의 연방대법원에서 이번 판결이 뒤집힐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연방대법원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관 3명을 포함해 보수 성향 대법관이 전체 9명 중 6명이다. 미 정치전문지 폴리티코는 “판결이 연방대법원에서 뒤집히거나 보류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지만, 최고 법원이 이 사건을 다룬다는 그 자체만으로 상당한 후폭풍이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자신에 대한 수사와 기소를 바이든 정부의 ‘선거 개입’이자 ‘정치 탄압’이라고 주장해온 트럼프 측이 이번 판결을 앞세워 다시금 지지층 결집에 나설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미 CNN은 “트럼프는 자신을 둘러싼 법적 논란을 지지율 반등으로 전환하는 기술을 습득해 왔다”면서 “그와 그의 지자자들이 또 다시 ‘피해자 카드’를 꺼내들고 판결에 반대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폴리티코 역시 “어떤 면에서 이번 판결은 트럼프의 대선 캠페인에 추동력이 될 것”이라며 “공화당원들은 ‘2024년 대선을 도둑맞았다’는 그의 거짓말에 집착했고, 이제는 미국의 사법체계가 그를 노리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짚었다.
트럼프 측 법률팀 대변인인 알리나 하바는 “이번 판결은 이 나라 민주주의의 핵심을 공격하는 것”이라며 “우리는 연방대법원이 이 위헌적인 명령을 뒤집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밝혔다. 트럼프 캠프는 이날 지지자들에게 “폭군적 판결”을 언급하며 모금 e메일을 발송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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