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꺽’ 목으로 먹고, ‘바사삭’ 귀로 먹지만… 맛 판정하는 곳은 뇌[살아있는 과학]

노성열 기자 2023. 12. 20. 09:2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살아있는 과학 - 음식은 온몸으로 먹는다
플레이팅 보며 ‘눈’으로 한입
풍미 맡는 ‘코’ 거치며 최고조
오감 합쳐 결국 뇌가 음식 판단
게티이미지뱅크

“음식은 입이 아닌 온몸으로 먹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분명히 우리는 음식물을 섭취할 때 혀와 이, 입술 등 입을 사용합니다. 입은 말을 하는 기관이면서, 동시에 외부로부터 영양분과 산소를 공급받는 통로이기도 한 것이죠. 그러나 때로는 미식가들이 ‘눈으로 먹는다’나 ‘코로 먹는다’와 같은 표현을 사용합니다. 즉 음식의 모양새나 향도 미각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뜻입니다. 접시에 음식과 소스 등을 시각적으로 균형 있고 아름답게 배치하는 ‘플레이팅(plating)’ 기술은 미슐랭 스타급 레스토랑의 필수 구비조건이 됐습니다.

우리 속담에도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하지 않습니까. 아무리 천하진미 요리라도 감기에 걸려 냄새를 맡지 못하면 절반의 맛밖에 느낄 수 없게 됩니다. 멀리서 풍기는 맛있는 냄새에 입맛을 한번 다시고 실제로 입안에 그 음식을 날라 오면 미각은 최고조에 달하죠. 코로 맡는 향은 1차적으로 맛과 결합해 미각의 깊이를 더하고 더욱 다양하면서 풍부한 스펙트럼을 형성해 줍니다. 게다가 미각과 결합하지 않고 후각 혼자만으로도 인간의 감정을 움직이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 이용한 것이 냄새 치료입니다. 고급 미용실이나 명품 매장에 가면 은은한 향이 감도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이것은 무의식중에 고객을 편안하고 안정된 상태로 만들어 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선택된 화학적 마케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단위당 중량이 금보다 비싼 향수는 그 결정체입니다. 아로마 테라피(aroma therapy)는 인간의 교감신경 활동을 억제하고 부교감신경 활동을 촉진함으로써 차분한 정서적 반응을 유도합니다. 라벤더 향 같은 게 대표적이죠. 이 향을 맡으면 스트레스 지수가 낮아지고 결과적으로 관상동맥의 혈류 흐름을 원활하게 만들어 심근경색 등 심혈관계 질병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치매의 일종인 알츠하이머병 환자도 오전에는 로즈메리·레몬 향 등으로 교감신경을 자극하고, 저녁에는 라벤더·오렌지 향 등으로 부교감신경을 활성화해 증상을 완화시켰다는 임상 보고도 있을 정도입니다. 좋은 냄새가 나도록 자신의 향을 관리하고 다른 사물의 불쾌한 내음을 미리 차단하는 일은 건강과 행복을 위해 이렇게나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눈과 코로만 먹을까요. 아닙니다. ‘목으로 먹는다’는 말도 있죠. TV 맥주 광고에 나오는 문구입니다. “목 넘김이 좋은 맥주”라며 모델이 시원한 잔에 담긴 노란색 맥주를 벌컥벌컥 울대를 꿀렁이며 단숨에 흡입하는 장면을 단골로 보여줍니다. 이것은 맥주나 일본의 메밀국수 같은 음식이 식도를 타고 넘어가면서 부딪히는 촉감 자체도 맛의 한 요소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실제로 혀에서 맛을 느끼는 화학 센서인 미뢰는 혀의 위뿐 아니라 혀의 옆면, 입천장, 목구멍(인·후두)에도 분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 그렇다면 ‘귀로 먹는다’는 문장도 성립될 수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음식을 먹을 때 나는 소리도 미각에 영향을 줍니다. 사각사각, 바삭바삭하는 소리도 입맛을 다시게 합니다. 유튜브 먹방에는 쩝쩝, 꿀꺽꿀꺽하는 소리의 ASMR들이 넘쳐납니다. 식품회사들은 더 재미있는 소리를 내는 과자 개발에 지금도 골몰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한 식품회사는 자사에서 생산하는 감자 칩을 손으로 잘랐을 때 나는 ‘바사삭’ 소리를 특허 등록해 놓았습니다.

이렇게 인간은 입과 눈, 코, 귀, 목의 오감으로 음식물을 먹지만 최종 판정을 내리는 곳은 결국 뇌입니다. 뇌는 모든 감각을 모아 느끼고(인지), 다음 행동(결정)을 지시하는 컨트롤타워인 것이죠. 뇌가 좋다고 판단하면 영양분이 풍부하고 맛있는 음식으로 분류됩니다. 몸에 좋고 기분도 좋아지는 좋은 음식이 되는 것입니다. 심지어 뇌와 장이 연결돼 있다는 ‘장뇌 축(gut-brain axis)’ 이론도 있습니다. 소장과 내장 속에 사는 미생물들이 여러 가지 화학물질을 만들고 이들 총합이 뇌에 영향을 미친다는 겁니다.

그래서 머리를 많이 쓰면 소화가 안된다는 속설도 나왔죠. 생물이 처음 태어날 때의 과정과 원리를 연구하는 발생학에서는 장이 먼저냐, 뇌가 먼저냐 따지는 질문이 있습니다. 결론은 동시입니다. 수정란이 분열하면서 고무공처럼 속이 텅 빈 구(球)를 만들고 이 포배 단계에서 한쪽 끝이 움푹 꺼지면서 낭배를 형성합니다. 꺼진 입구를 원구(原口), 꺼진 공간을 원장(原腸)이라 합니다. 척추동물은 등의 중앙이 안쪽으로 들어가 신경관을 만들고, 배 쪽에는 장관을 이룹니다. 신경관은 척수, 장관은 창자로 자랍니다. 척수신경과 창자는 방향만 다를 뿐 같은 곳에서 출발했다고 할 수 있는 거죠.

우리가 흔히 성격을 묘사하면서 “배포가 두둑하다”거나 “배짱이 없다”고 장의 상태를 언급하는 걸 보면 뇌와 장이 한 형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모든 걸 합쳐서 보면 우리는 입으로만 음식을 먹는 게 아니라 몸 전체로, 온몸으로 먹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로지 인간만이 맛과 멋으로 먹기 때문에 우리는 ‘맛있는 과학’에 온몸을 던져 더 열정적으로 매달리게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노성열 기자 nosr@munhwa.com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