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힘을 잃어도 글을 통한 싸움 멈출 수 없다 [세상읽기]

한겨레 2023. 12. 20.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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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지난 13일 오후 경기 오산시 양산동 한신대 경기캠퍼스 장공관 앞에서 ‘한신대 유학생 강제 출국 규탄 시국 기도회’가 열린 가운데, 한 참가 학생이 이번 사태와 관련해 ‘부끄럽다’는 글자가 화면에 나타난 휴대전화를 들어 보이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세상읽기] 장영욱 |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연말을 맞아 한가지 고백하자면, ‘매체에 글 쓰는 사람’ 타이틀에 제법 자부심이 있다. 내가 자격이 되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스스로 돌아볼 때 쉽게 쓴 글은 단 한편도 없다. 올해 그렇게 열두편의 칼럼을 써냈다.

하지만 글의 효용에 대한 의구심은 여전하다. 지난해 한겨레 정기 기고를 시작하면서 “무력하지도 해를 끼치지도 않는 말”을 하겠다는 거창한 출사표를 던졌다. 다행히 해는 덜 끼친 것 같지만 무력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내가 너무 비관적인 걸까. 돌아보면 지난 1년간 쓴 글에서 바라거나 주문한 내용이 이뤄지긴커녕 거꾸로만 가는 듯 느껴진다.

나는 “안전하고 풍요로운 곳을 찾아 거처를 옮기는 (…) 인간의 본능을 불법으로 만드는 현실을 바꿔야지, 사람한테 불법 딱지를 붙여 손쉽게 돌려보내는 게 능사가 아니다”라고 썼다. 그런데 얼마 전 한신대에서 일어난 일은 정확히 그 반대였다. 비자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로, 학교당국은 한국어학당 소속 우즈베키스탄 유학생 22명을 속여 인천공항으로 유인해 본국으로 돌려보냈다. 법무부와 학교 사이 책임 공방과 별개로, 경비업체까지 동원해 학생들을 반강제로 비행기에 태운 학교의 만행은 뒤늦은 총장의 사과대로 “변명의 여지가 없”다.

요즘 한국의 상황을 상기해보면 ‘유학생 강제출국’이라는 퇴행이 암시하는 바는 결코 가볍지 않다. 지난주 통계청이 발표한 장래인구추계에선 한국의 생산연령인구가 30년 내 1200만명 가까이 줄어들 것으로 예측됐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지방에선 인구감소가 이미 진행 중이다. 지난 5년 평균치로, 사망 인구가 출생 인구의 두배 이상인 곳이 244개 시·군·구 중 95군데였다. 경남 합천, 충남 부여, 전남 곡성 등에선 죽은 사람 수가 태어난 사람보다 5배 이상 많았다. 출산율 제고를 위한 노력과 함께, 당장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외국 인력 유치를 적극 고려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이 와중에 제시된 대안 중 하나가 유학생의 국내 정주 유도다. 일차적으로 유학생을 적극 유치하고, 그렇게 들어온 인재들이 국내에 남도록 비자 제도를 완화한다는 계획이다. 예컨대 유학생 등 ‘지역 우수인재’의 역내 취업 및 영주를 용이하게 해주는 ‘지역특화형 비자’가 올해 시범사업으로 시행되고 있다. 제도를 보완해주는 게 흔히 말하는 ‘가족·친구 효과’다. 먼저 온 사람들이 본국 지인들에게 교육, 일자리, 주거 등 정보를 공유해주면서 연쇄 이주가 일어나게 된다. 우즈베키스탄 출신 학생들을 강압적인 방법으로 돌려보낸 건 그 반대 효과를 낸다. 한국을 기피 국가로 널리 알려 인재 추가 유입을 어렵게 만든다는 말이다.

글이 힘을 잃은 예는 더 있다. 나는 “(외국인 가사노동자가) 내국인 노동자와 차별 없이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으로 대우받도록 제도와 인식을 마련해가자” “전세계적 외국 인재 유치 경쟁을 뚫고 ‘주식회사 대한민국’에 더 많은 사람을 끌어들이려면, 이주노동자의 인권을 보호하고 더 나은 대우를 약속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 역시 어렵다.

연내 시행 예정이라던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은 송출국과 협의가 난항을 겪으며 지연되고 있다. 협의가 안 되는 이유가 가사와 육아 사이 업무 분담에 대한 이견 때문이고, 관리업체가 제시한 숙소 수준이 기대에 못 미쳐서란 말도 나온다. 그나마 최저임금은 적용되어 다행인데, ‘월급이 100만원 수준은 되어야 효과가 있다’는 오세훈 서울시장이나 ‘내외국인 임금 차별을 금지한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을 탈퇴해야 한다’는 현장 목소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윤석열 대통령을 보면 그마저도 뒤집히는 게 아닌지 걱정이다.

태어나는 아이는 점점 주는데, 들어온다는 사람도 막고 이미 들어온 사람도 내쫓는다니 우리나라는 정녕 소멸의 길을 걸으려는 것일까. 바로 직전 칼럼에서는 갓 태어난 셋째가 맞을 미래를 낙관했는데, 내가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해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래서 더, 나는 글을 통해 싸우기를 멈출 수 없다. 전진은 못 해도 퇴행을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다면, 현실은 못 바꿔도 애쓰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다면 내 글이 약간의 쓸모는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부디 결정의 권한이 있는 사람들이 글을 두려워하게 되길 바라며, 내년에도 또 무력하지도 해를 끼치지도 않는 글을 써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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