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은 민주당이 스톡홀름증후군 앓는다고 여겨

구자홍 기자 2023. 12. 20.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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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DJ vs 2024년 NY, 같은 점과 다른 점

● Again 1997!
● 민주당 회생 불가 판단
● 창당 명분은 ‘사당화’
● 호남이 이재명 외면?
● “생존은 본능이다”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동아DB]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가 대선 이후 미국 유학을 마치고 펴낸 책 ‘대한민국 생존전략’
생존은 본능이다. 인간에게도, 국가에도 마찬가지다. 국가 운영도 생존을 전제로 한다. 나는 '방어'라고 해도, 상대는 '공격'으로 받아들인다. 그것이 생존 본능에서 출발한 안보의 태생적 속성이다.
- 대한민국 생존전략 -

2022년 3·9 대통령선거 이후 1년간 미국 조지워싱턴대에서 방문연구원으로 한반도 평화와 미·중 전략경쟁을 연구하고 돌아온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펴낸 책의 한 대목이다. 그는 미국과 중국, 두 코끼리 싸움에 낀 한국 외교의 딜레마를 설명하면서 남북의 특수성을 설명했다. 그런 그가 22대 총선을 앞두고 '대안' '새 선택지'를 만들겠다며 '신당'을 창당할 뜻을 밝혔다. 정치 입문 이후 줄곧 민주당에 몸담았고, 당대표까지 지낸 그가 새 둥지를 만들려는 까닭은 무엇일까. 신당을 창당하려는 이유도 '생존 본능'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앞으로 어떤 정치 행로를 걸을까.

이낙연 전 대표를 위시한 민주당 내 비(非)이재명계는 2022년 8월 28일 당대표 선출 이후 민주당이 사당화의 길을 걷는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이 대표를 둘러싼 사법 리스크 방어에 당이 총동원되고 있다는 점에서다.

비명계 물갈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동아DB]
이 전 대표는 사석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스톡홀름증후군을 앓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스톡홀름증후군은 인질이 인질범에게 동화 혹은 동조하는 비합리적 현상을 가리킨다. 이 대표가 공천권을 행사할 '힘'을 갖자 민주당 의원들이 사법 리스크에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오히려 일부 인사는 당대표를 적극 옹호하는 상황을 스톡홀름증후군에 비유한 셈이다.

이 대표의 국회 입성 과정은 공정과 상식, 민주와는 거리가 있었다. 성남시장, 경기도지사를 지낸 그는 경기 성남분당갑 대신 인천 계양을 보궐선거에 출마해 금배지를 달았다. 그가 이런 방식으로 국회에 입성한 이유가 국민 대표로 나랏일을 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한 이들도 있겠으나 사법 리스크를 방어하려 헌법이 보장한 국회의원 불체포특권을 활용하고자 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많았다.

민주당은 이 대표 체제 출범 직전 당헌당규를 '이재명 맞춤형'으로 개정했다. 당초 민주당 당헌 80조는 "부정부패와 관련한 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당직자의 직무를 정지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었다. 그러나 민주당은 "정치보복으로 인정되는 경우 당무위 의결을 거쳐 직무정지를 취소할 수 있다"라고 바꿨다. 즉 이 대표가 기소되더라도 대표직을 유지할 수 있도록 변경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2023년 12월 7일에는 당대표를 뽑는 전당대회 때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중을 크게 높이고, 선출직 공직자 평가 하위 10% 현역의원에 대해 경선 득표 감산 비율을 20%에서 30%로 확대하는 것으로 당헌을 개정했다. 이 대표 측은 당원 민주주의 강화를 위한 개정이라고 주장하지만 비명계에서는 대선 경선과 대선 이후 권리당원으로 대거 입당한 이른바 '개딸'들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꼼수 개정이란 반발이 터져 나왔다.

현역 경선 득표 감산 비율을 상향한 것은 22대 총선 공천 과정에 '비명계 물갈이'를 위한 사전 포석으로 해석됐다. 총선 때 비명계 현역의원 자리에 친명계를 공천하기 유리하도록 당헌당규를 개정한 게 아니냐는 것. "멋지게 지면 무슨 소용이냐"며 이 대표는 대선 때부터 약속한 '연동형' 대신 '병립형'으로 비례대표제도를 바꿀 뜻도 내비쳤다. 비례대표 공천까지 주도할 의중을 밝힌 셈이다.

민주당은 외견상 당헌당규 개정 등 절차에 따라 운용되는 듯 보인다. 하지만 비명계는 일련의 과정은 친명계의 공천권 장악을 위한 포석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결과적으로 민주당이 이재명 사당으로 변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낙연 전 대표가 민주당에 남아 혁신을 추진하기보다 '창당'을 통해 새 활로를 개척하기로 결심한 데는 당헌당규 개정 등으로 민주당이 사실상 '이재명의, 이재명에 의한, 이재명을 위한 정당'으로 변질됐다는 인식과 무관치 않다.

지금, 호남 민심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를 ‘수박’이라 칭한 포스터. [동아DB]
이낙연 전 대표가 총선을 앞두고 신당 창당을 결심한 데는 호남 여론이 심상치 않다는 점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3·9 대선 패배 이후 치러진 6·1 지방선거 때 호남 투표율은 전국 투표율을 크게 밑돌았다. 전국 투표율이 50.9%였지만, 광주는 37.7%, 전북은 48.7%에 그쳤다. 대선 패배에도 곧바로 인촌 계양을 보궐선거에 출마한 이 대표에 대한 거부감이 저조한 투표율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많았다.

한국갤럽의 2023년 12월 첫째 주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전국 지지율은 33%, 국민의힘은 35%다. 이 같은 결과는 민주당 강세 지역으로 꼽히는 호남과 서울에서 지지율이 하락한 데 따른 것이다. 민주당은 호남에서 51% 지지를 받는 데 그쳤지만, 국민의힘은 강세 지역인 TK에서 66% 지지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에서도 국민의힘 35%, 민주당 33%였다. 호남 출향민 민심은 서울 선거에서 변수 중 하나다. (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호남 지역 한 언론인은 "이재명 대표 체제가 들어선 이후 호남에서 민주당 지지세는 과거에 비해 크게 약화됐다"며 "광주 출신 송갑석 의원이 유일한 최고위원으로 호남 여론을 당에 전달해 왔는데, 송 의원이 빠진 자리 등을 대전과 부산 출신으로 채워 지금 민주당 지도부에서 호남 여론을 전달한 사람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1995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창당한 새정치국민회의의 후신이다. 김대중과 노무현을 계승한 정당이라며 두 전직 대통령 초상화를 당대표실에 걸어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이 대표 체제가 들어선 이후 민주당 인적 구성과 체질은 과거와 크게 달라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권노갑·한화갑 등 동교동계와 김근태·심재권 등 재야 출신 인사 중심이던 새정치국민회의는 2000년 16대 총선을 앞두고 '젊은 피' 수혈을 통해 새천년민주당으로 면모를 일신한다. 2002년 대선 때 국민경선 과정에 '노사모'를 중심으로 새로운 세력이 유입해 동교동+386+노사모가 세력 균형을 이뤘으나 노무현 전 대통령 취임 이후 열린우리당 창당 과정에 동교동계와 결별했다. 이 과정에서 이낙연 전 대표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인 대변인을 지냈음에도 새천년민주당 잔류를 선택해 '호남 적자'로 남는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기점으로 문재인 전 대통령을 위시한 친노 세력은 '혁신과통합'을 매개로 재기에 성공, 2012년 19대 총선과 그해 12월 치러진 18대 대선을 거치며 민주통합당 주류 세력으로 자리 잡는다. 2014년 안철수 의원과 손잡고 새정치민주연합을 출범시켰으나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안 의원이 탈당해 호남을 기반으로 한 국민의당을 창당했다. 민주통합당은 더불어민주당으로 당명을 바꾸고 김종인 비대위 체제로 총선을 치러 원내 제1당에 올랐다. 이후 민주당은 부산친노+386+민평연 3대 세력이 힘을 합쳐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치른 대선에서 승리했고, 이후 친문계가 신주류로 등장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취약한 호남 지지세 복원을 위해 전남지사이던 이 전 대표를 초대 총리로 임명했고, 2020년에는 다시 전북 출신 정세균 전 총리를 임명했다. 그러나 2022년 대선 경선을 거치며 변방의 장수이던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가 대선후보를 거머쥐며 민주당은 본격적인 주류 교체가 시작됐다. 대선 경선 이후 현재까지 민주당은 친명계 중심 정당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이낙연 전 대표가 당내에서 독자 세력화를 꾀하기 힘든 구조로 민주당이 바뀐 셈이다. '이낙연 신당'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이유다. 박성민 정치컨설팅그룹 '민' 대표는 "이재명 대표가 당을 단결시켜 총선에서 이기기 위해 스스로 대표직에서 물러나지 않는 한 이낙연 전 대표는 신당 창당 외에 길이 없다"고 말했다.

이준석과 손잡으면…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동아DB]
문제는 이 전 대표를 따르는 열성 지지층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정치는 '뜻'을 세운 유력 정치인을 중심으로 '동지'가 규합돼 '세력'을 형성해야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

22대 총선이 얼마 남지 않아 정치권 이합집산이 본격화하고 있다는 점은 이낙연 신당에는 기회요인이 될 수 있다. 특히 독자 세력화를 모색하고 있는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가장 좋은 카운터 파트너다. 윤석열 정부 독주, 이재명 사당화를 극복할 '새 정치'를 명분으로 '빅텐트' 아래 모일 수 있다는 점에서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이낙연 전 대표가 독자적으로 신당을 창당해서는 파괴력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며 "친낙계라 불리는 현역의원 숫자도 몇 명 되지 않고 민주당 내 조직 기반도 취약하다"고 말했다.

그는 "2030, 특히 2030 남성층에서 강력한 팬덤을 형성한 이준석 전 대표는 이낙연 전 대표의 약점을 보완해 줄 수 있다"며 "호남 출신 차기 주자 이낙연과 2030 대표성이 있는 차기 주자 이준석의 결합은 지역과 세대 결합으로 비쳐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평론가는 "중량감은 있지만 강력한 팬덤이 없는 이낙연 전 대표와 2030 남성이란 강력한 팬덤은 있지만 전국 조직을 꾸려본 경험이 없는 이준석 전 대표가 힘을 합하면 신당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총선용 프로젝트 정당이라는 비판은 받겠지만 이낙연-이준석 두 사람이 손잡으면 국민의힘과 민주당에서 특히 친명계에게 공격당하는 비명계 인사들을 견인하는 데 효과적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2016년 20대 총선 때 안철수 의원의 국민의당이 제3당 입지를 확보한 데는 호남 현역의원이 대거 합류했기에 가능했다는 분석이 많다. 즉 이낙연 신당이 성공하려면 그와 함께할 현역의원을 최소 정의당 6석보다 많이 확보해 '기호 3번'을 받을 수 있느냐가 성공과 실패를 가를 수 있다. 민주당 내에서 대표적 비명계 인사들로 꼽히는 '원칙과 상식' 소속 인사들은 "이재명 대표가 선당후사하는 통합 비대위로 가야 한다"며 탈당 후 신당 합류보다는 당내 혁신에 주력하는 모양새다.

비대위 전환 시 NY의 선택

이낙연 전 대표는 신당 창당 시점을 2024년 1월로 예고하고 있다. '민주주의실천행동' 등 이낙연 신당에 합류할 인사들이 전국 조직을 꾸리며 실질적 창당 작업에 돌입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창당 직전 '이재명-이낙연' 극적 제휴 가능성도 아직 남아 있다는 관측도 있다. 국민의힘이 비대위 체제에서 일신을 거듭해 정당 지지율 격차를 벌리면 민주당에 위기감이 생겨 극적 타협을 이룰 수 있다는 점에서다.

박성민 대표는 "이재명 대표가 물러나 비대위 체제로 전환하면 이낙연 신당 창당 동력은 약화할 수밖에 없다"며 "확률은 낮지만 이낙연 신당 출범 전에 친명계와 친낙계가 극적으로 손잡고 함께 공천관리위를 구성하는 데 합의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1992년 대선에 패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영국에서 1년간 유학한 후 귀국해 1995년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고 이듬해 15대 총선에서 79석을 얻어 제1야당으로 정치적 재기에 성공해 1997년 대선에 DJP(김대중-김종필) 연대로 대통령에 당선했다.

이낙연 전 대표의 정치적 궤적만 놓고 보면 1995년 DJ가 투영된다. 차이라면 DJ는 대선 본선에 나섰다가 차점 낙선한 데 비해, NY(이 전 대표 이니셜)는 대선 경선에서 차점 낙선해 본선 진출이 좌절됐다는 점이다.

1995년 DJ가 신당 깃발을 들자, 민주당에 있던 현역의원 35명이 탈당해 DJ 신당에 합류했다. NY가 신당을 창당하면 몇 명의 의원이 합류할까. 창당은 자유다. 그러나 신당의 성공 여부는 주권자 국민의 투표를 통해 추후 인정받는다.

NY는 신당 창당으로 제2의 DJ가 될 수 있을까. 창당은 정치 분야에서의 벤처라고 할 수 있다. 확률은 낮지만 성공했을 때 누릴 성취는 무엇보다 크다. NY 신당이 22대 총선에 의미 있는 결과를 얻으면 2026년 지방선거, 2027년 대선에서 NY는 변수가 아닌 상수로 중앙 정치 무대 전면에 나설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신당은 차기를 향한 토대 구축의 의미가 있는 셈이다.

희망이란 것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길 같은 것이다.
원래 땅 위에 길은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으면
그게 곧 길이 되는 것이다.

루쉰

신동아 1월호 표지.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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