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체육회, 니가 가라 해병대"
최강 한파가 몰아친 18일 온 국민이 외출마저 자제하는 가운데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들은 경북 포항 해병대 1사단에 강제 징집(?)됐다. 양궁의 안산, 수영의 황선우, 육상의 우상혁 등 400여명이 해병대 극기훈련에 끌려간 것이다. 특이한 것은 이에 더해 100여명의 주요 경기단체 임직원들까지 같이 끌려갔다는 점이다.
지난 10월 중국은 물론 일본에도 밀려 종합 3위로 마무리된 2023 항저우 아시안게임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은 “요즘 선수들은 새벽 운동을 안 하려고 한다. 강제적으로 하게 할 수도 없다. 이게 심화하면 인권 이야기가 나온다”며 “내년 국가대표 선수들은 입촌하기 전 해병대에서 극기훈련을 할 계획”이라고 선언했다. 당시 회견장의 기자들은 웃고 넘겼지만 이 황당한 발언은 현실이 됐다.
성적 부진이 도대체 누구 책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멘털적인 부분에서 아쉬움이 있었”기 때문에 선수들의 정신력을 강화하겠다는 게 체육회의 설명이다. 체육회는 그래서 도전, 단결, 협동을 교육하고 두려움 극복 교육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런데 왜 그 해법이 해병대 극기훈련인가? 체육회엔 스포츠심리학이나 동기부여(motivating)에 대해 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나?
2016년 여자핸드볼 국가대표 선수들이 목봉체조를 했던 것처럼, 또 2019년 펜싱 국가대표 선수들이 공수훈련을 받았던 것처럼, 대표선수들이 극기훈련을 하면 없던 정신력이 꽃을 피우고 부러진 멘털이 빳빳해질 것인가? 그래서 다음 아시안게임, 올림픽게임 때 말라버린 메달밭이 옥토로 변해 얼씨구나 금메달 풍년이 들 것인가?
선수들에게 책임 떠넘긴 비겁한 대한체육회장
항저우 아시안게임 폐막 직후 이기흥 회장은 왜 갑자기 해병대 극기훈련이라는 극단적 카드를 꺼내들어야 했을까. 문화연대 등 4개 단체는 17일자 성명에서 이를 “시대착오적이고 반인권적”이라고 비판하기까지 했고 여론도 매우 좋지 않다. 그럼에도 그가 이런 시대착오적 발상을 밀어붙여야 할 이유는 분명했다.
우리나라 대표팀은 1986 서울아시안게임 이후 (일본 히로시마에서 개최된 1994대회를 제외하면) 2014 인천아시안게임까지 중국에 이은 2위 자리를 굳건하게 지켜왔다. 이 판세가 뒤집어진 게 2018 자카르타·팔렘방 대회다. 그 이전 70개 이상의 금메달로 2위를 지키던 한국이 이 대회에서 금메달 49개로 급전직하 했고 일본이 74개의 금메달로 2위에 복귀한다.
올해 항저우대회에선 일본 선수단(771명) 보다 100여명 많은 선수단(867명)을 출전시키고도 금메달 42개에 그쳐 금메달 52개의 일본에 이어 또다시 3위에 처졌다. 개발도상국 시절인 1980년대에 따돌렸던 일본인데, 선진국이 되어 K-컬처가 세계를 석권하는 된 지금 유독 스포츠만 후퇴를 거듭해 일본에 2위를 헌납한 것이다.
그런데 일본에 역전당한 게 언제부터? 정확하게 이기흥이 대한체육회장이 되면서부터다. 이기흥은 2017년 대한체육회장에 취임했고 지금 연임 중이다. 대한민국 스포츠의 총괄 책임자면서 아시안게임의 성적부진을 자신이 아닌 어린 선수들에게 떠넘긴 비겁한 회장이다.
엎친 데 덮친 격 올림픽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는 하계올림픽에서 1984년 LA올림픽에서 10위에 오른 후 12위를 기록했던 2000 시드니올림픽을 제외하면 언제나 10위 이내의 훌륭한 성적을 거뒀다. 그런데 2020 도쿄올림픽 성적이 고작 금메달 6개로 16위라는 최악의 성적을 거뒀다. 언론에 따르면 지금 그는 2024 파리올림픽에서 금메달 5~6개로 종합 15~20위에 머무를까 걱정하는 듯하다. 예상이 이 정도면 실제 결과는 어떨까.
올림픽이든 아시안게임이든 이기흥 임기 중 한국대표단은 최악의 성적을 매번 경신 중이다. ‘마이너스의 손’이다. 이 회장이 선수들을 난 데 없이 해병대로 보낸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지난 대회 참패에 대한 책임 떠넘기기, 그리고 미래 대회 성적 부진 변명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 뭐 이런 거다.
“쟤네들 잘못이에요!”
이 회장이 비겁할 뿐 아니라 야비한 것은 협회 임직원까지 강제로 해병대로 보내 버린 것이다. 아닌 밤중 홍두깨 식으로 뱃살 조절도 안 되는 중장년 100여명이 졸지에 극기훈련에 끌려가야 했다. 메시지는 명료하다. “너희들도 똑바로 해!”
그에겐 발버둥이고 몸부림이다. 내년 대한체육회장 3연임에 도전하는 그에겐 더더욱 절박할 것이다. 그러나 실력은 발버둥이나 몸부림에서 나오지 않는다. 대한민국 스포츠의 암흑기는 바로 이기흥 재임기다. 이쯤 되면 물러나는 게 사리에도 맞고 대한민국 스포츠와 국민에 대한 예의다.
누가 누구를 가르쳐!?
대표선수들의 해병대 강제 입소 관련해서 논란이 많은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선수들의 부상 문제다. 해병대 교관들은 대표선수들 몸 털끝도 건드려선 안 된다. 교관들을 폄하하는 게 아니라 분야가 다르다. 이들에게 목봉체조를 시키겠나 고무보트 나르기를 시키겠나. 실내 훈련이라도 마찬가지다. 엘리트 선수들은 그 수많은 근육들을 조각조각 분리해서 훈련한다. 정신도 마찬가지다. 웬만한 선수들은 심리상담 코치들의 전문 상담을 받는다. 해병대가 심리상담 전문가인가.
실소를 금하지 못했던 것은 정신력 높이겠다고 국가대표 선수들을 해병대에 입소시켜 교육을 시키겠다는 발상 그 자체다. 인간의 한계를 넘나드는 극한의 고통을 일상적으로 끼고 사는 사람들이 바로 이들 국가대표 선수들이다. 이들을 해병대가 교육을 시켜? 반대로 생각해보자. 해병대의 잘 훈련된 에이스 교관들을 진천선수촌에 입촌시켜서 체력훈련을 시켜보자. 한 시간이면 일어나 걷지도 못한다.
스포츠에서 실력 없는 감독들의 일관된 행태가 있다. 처음엔 말로 하다가 그래도 안 되면 윽박지르고 그래도 성적이 좋아지지 않으면 얼차려를 주기 시작한다. 그때 자신의 폭력적 행위를 정당화하는 트리거, 즉 비장의 카드가 있다. 바로 "너희들은 정신력이 글러먹었어"이다. 이걸 빌미로 "너희들은 말로 하면 안 돼"라며 때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지금과 어딘가 닮지 않았나?
스포츠는 군대와 같이 함께 할 수 없어
서구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Sport-Militarism(스포츠 군사주의)은 배격의 대상이다. 이정우 에딘버러대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이것이 폭력마저 용인하는 극우주의자들의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집권 시절 미국 미식축구리그인 NFL 경기 국민의례 때 군악대가 국가를 연주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곧 비판받았다. 군사주의가 스포츠에 스며드는 것에 반대한 것이다.
영국에서도 전몰장병을 기념하는 리멤버런스데이 때 프리미어리그 경기에 군 의장대가 등장하자 논란이 일었다. 상이군인들의 출현도 환영받지 못했다. 이는 스포츠가 정치에 이용 당하는 것일 뿐 아니라 폭력과 살인의 정수인 전쟁을 스포츠를 통해 정당화하고 영웅시하려 한다는 것이다. 스포츠는 폭력을 합리화하는 반평화주의와 절대 함께 할 수 없다.
문화연대 등 4개 단체들은 성명에서 해병대 강제 입소가 “그저 단순한 실언이기를 바랐다”고 했다. 틀렸다. 21세기 선진국 대한민국에서 이러한 정책 결정이 현실이 된 것은 실언이 아니고 실성한 것이다.
영화 대사의 패러디 한 구절을 이 겨울 찬바람에 실어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에게 전하고 싶다.
“니가 가라. 해병대.”
[정희준 문화연대 집행위원(uppercutrule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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