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후(25·샌프란시스코)'가 돼서도, 미국 가서도 잊지 못한 그 팀... "히어로즈 선수답게 잘하겠다"

인천국제공항=김동윤 기자 2023. 12. 20.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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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뉴스 | 인천국제공항=김동윤 기자]
이정후(가운데)가 지난 10월 10일 고척 삼성전에서 팬들과 함께 전광판의 굿바이 영상을 보고 있다. /사진=키움 히어로즈
이정후(가운데)가 지난 10월 10일 고척 삼성전에서 팬들과 함께 전광판의 굿바이 영상을 보고 있다. /사진=키움 히어로즈
이정후(가운데)가 지난 10월 10일 고척 삼성전에서 팬들에게 고별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키움 히어로즈
이제 최소 4년간 '이정후(25·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로 불릴 이름이지만, 그의 마음 속 한 켠에는 여전히 키움 히어로즈가 자리했다.

이정후에 있어 히어로즈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이름이었다. 광주서석초-휘문중-휘문고를 졸업한 그는 2017년 신인 드래프트 1차 지명으로 넥센(현 키움)에 입단하기 전까진 '바람의 아들' 이종범(53)의 아들로 더 유명한 야구인 2세였다. 1차 지명을 받을 잠재력은 인정받았으나, 불안한 유격 수비를 먼저 지적받았고 프로에서 앞날은 쉬이 예상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홍원기 당시 1군 수비코치를 비롯한 구단에서 포지션을 외야수로 바꾸면서 이정후는 성공적인 커리어를 써내려 가기 시작했다.

이정후는 2017년 데뷔 첫해부터 144경기 타율 0.324(552타수 179안타) 2홈런 47타점 111득점 12도루, 출루율 0.395 장타율 0.417을 기록하면서 아버지조차 하지 못한 KBO리그 신인왕을 수상했다. 이후에도 매년 각종 타격 지표에서 우상향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2022년에는 타율 0.349(553타수 193안타) 23홈런 113타점 85득점 OPS 0.996으로 정규시즌 MVP를 차지해 정점을 찍었다. 7년간 통산 성적은 884경기 타율 0.340(3476타수 1181안타), 65홈런 515타점 581득점 69도루, OPS 0.898.

특히 아버지처럼 안타 생산에 빼어난 모습을 보이면서 지난해 7월 28일 수원 KT위즈전에서 만 23세 11개월 8일의 나이로 통산 747경기 만에 1000안타를 달성했다. 이는 역대 KBO리그 역대 최연소, 최소 경기 1000안타 달성으로 종전 기록은 이승엽의 만 25세 8개월 9일, 아버지 이종범의 779경기를 동시에 깬 것이었다. 키움에서 마지막 해인 올해도 왼쪽 발목 신전지대 부상으로 3개월 일찍 시즌을 마감했음에도 팀 내 두 번째로 많은 안타(105개)를 때려내면서 통산 3000타석 이상 나온 현역 선수 중 타율 1위(0.340)로 KBO리그를 떠나게 됐다.

이정후는 단순히 성적뿐 아니라 경기장 안팎에서도 키움 구단에 큰 영향력을 주는 선수였다. 어린 나이에도 빠르게 1군에 자리 잡아 최고 연봉자가 된 모습은 후배들에게 강한 동기부여를 심어줬다. 이정후는 3년 차였던 2019년부터 KBO리그 해당 연차 역대 최고액을 매년 경신했다. 7년 차인 올해는 11억 원을 받으면서 종전 최고 기록이었던 김하성(28·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2020년 5억 5000만 원을 훌쩍 뛰어넘었다. 10개 구단 중 유일하게 모기업이 없어 재정이 아쉽다는 평가를 받는 키움이지만, 이정후를 통해 성적만 낸다면 얼마든지 연차에 상관없이 최고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정후. /사진=뉴스1
이정후.
이정후. /사진=키움 히어로즈

KBO리그 최고의 선수로 올라섰음에도 현재의 성적에 쉽게 만족하지 않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은 선·후배 모두에게 귀감이 됐다. 지난해 KBO리그 MVP를 수상한 이정후는 올해 초 김하성과 함께 타격폼 변화를 시도했다. 메이저리그 진출을 대비해 빠른 공 대처 능력을 키우기 위함이었다. 일단 실패로 돌아갔지만, 그 도전 정신은 메이저리그에서도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19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이정후는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더 오래 잘하고 싶어서 타격폼을 바꿨었다. 또 최고로 잘할 때 변화를 주고 싶었는데 미국에서 그런 모습을 높게 평가했다고 한다"며 "우선은 (타격폼 변경 없이) 부딪혀보려 한다. 해보고 상황에 맞게 변화를 주려 한다. 나는 아직 어리기 때문에 조금 더 빠르게 적응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힘줘 말했다.

경기 외적으로는 히어로즈에 대한 자부심과 팬 사랑을 드러내 팀을 하나로 뭉치게 했다. 시즌 전 5강권에도 못 들 거란 저평가를 이겨내고 한국시리즈 무대까지 올라간 지난해가 절정이었다. 키움 팬들에 있어 2022년은 시즌 전 프랜차이즈 스타 박병호가 KT 위즈로 FA 이적하고, 시즌 시작 한 달만인 4월에는 주전 포수 박동원이 KIA 타이거즈로 트레이드되면서 최악의 한 해로 기억될 뻔했다.

하지만 이정후는 개막 첫 7연승을 달린 4월 15일 잠실 두산 베어스전(4-2 승) 후 "항상 전문가 분들이 우리가 하위권일 거라 평가하시는데 왜 그런 평가를 하시는지 모르겠다. 지난 9년간 우리 팀만큼 가을야구에 나간 팀이 없다"고 작심 발언하며 팀 분위기를 띄웠다.

팬들에게는 따뜻했다. 지난해 5월 1일 고척 KT전을 승리로 이끈 후 단상 인터뷰에서 "팬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 3년 동안 많은 것이 변했다. 라인업만 봐도 3년 전과 많이 달라졌다고 느끼셨을 텐데 바뀌지 않은 것도 있다"며 "팬분들에게 솔직히 슬픈 일도 많이 생겼을 거라 생각된다. 그래도 내가 있는 한, 팬분들을 항상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웃음만 드릴 수 있는 선수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하며 상처받은 팬들을 위로했다. 그 결과 키움은 2014년 이후 다시 한 번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았다.

이정후(가운데)가 지난 10월 10일 고척 삼성전에서 타석에 들어서 팬들에게 고별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키움 히어로즈
이정후(가운데)가 지난 10월 10일 고척 삼성전에서 타석에 들어서 팬들에게 고별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키움 히어로즈
이정후가 샌프란시스코 현지팬에게 사인하는 모습. /사진=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구단 공식 SNS

이정후의 성장은 이택근, 박병호, 강정호, 서건창, 김하성 등 선배들이 이어간 히어로즈 팀컬러를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박병호, 강정호, 김하성에 이어 4번째 메이저리거를 배출한 히어로즈는 이제 명실상부 최고의 메이저리거 양성소로 불린다. 기량만 보여준다면 젊은 선수들에게 아낌없이 기회를 제공하고, 선후배 간에도 거리낌 없이 야구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환경은 고등학생들에게도 잘 알려져 가장 입단하고픈 선망의 팀이 됐다.

또한 히어로즈 선배들이 차곡차곡 쌓은 좋은 이미지를 대박 계약으로 터트려 키움 구단에도 끝까지 선물을 안겼다. 이정후가 샌프란시스코와 6년 1억 1300만 달러(약 1479억 원)의 계약을 하면서 원소속팀 키움은 2023년 KBO 야구 규약에 따라 1882만 5000달러(약 246억 원)의 보상금을 받게 됐다. 이는 2018년 현행 규약 개정 후 최고 금액이자, 류현진이 2013년 LA 다저스 입단 당시 한화 이글스에 지불했던 2573만 7737달러(약 337억 원) 다음이다.

이정후는 "(김)하성이 형이 지난해부터 잘해줘서 내가 그 덕을 봤다고 생각한다. 형이 이렇게 잘해놓은 걸 내가 망칠 순 없다. 나도 열심히 해서 한국 야구 선수들에 대한 인식을 계속해서 좋게 남기고 싶고, 그래야 많은 선수들이 도전할 수 있는 길이 생긴다 생각해서 책임감 가지고 열심히 하려 한다"며 "(많은 보상금이) 키움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금도 충분히 잘해주고 있지만, 선수들을 위해서 더 많이 써주고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끝으로 키움 팬들에게도 애틋한 인사를 남겼다. 이정후는 "7년 동안 정말 감사했다. 미국에 가서도 시간 날 때마다 봤던 것이 마지막 홈경기(10월 10일 삼성전)였다. 마지막 타석에 들어섰을 때 팬분들이 보내주신 함성과 응원을 항상 잊지 않고 가슴에 잘 새기면서 미국에서 열심히 하려 한다. 히어로즈 선수처럼, 히어로즈 선수답게 많이 응원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진심을 전했다.

샌프란시스코의 이정후가 19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 후 인터뷰를 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6년 1억1300만달러(약 1468억원) 계약을 맺으며 메이저리그(MLB) 진출의 꿈을 이룬 이정후가 19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 터미널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사진=뉴스1
이정후. /사진=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구단 공식 SNS

인천국제공항=김동윤 기자 dongy291@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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