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전쟁과 평화가 있는 내 부엌』 신달자 “인간 100년 참 쓸쓸, 살점을 뜯어내 펼쳐놓은 시편들” [김용출의 문학삼매경]
아직 해가 뜨지 않았던 작년 어느 가을날 새벽, 시인 신달자는 비행기가 쉴새 없이 내리고 오르던 성남 심곡동 자택에서 눈을 떴다. 최근 1, 2년간 사고가 이어졌고, 수술도 두 차례나 받은 그였다. 2년 전에는 교통사고로 한 달 가까이 병원에 누워 있어야 했고, 작년 봄에도 큰 수술을 했다. 베개를 베고 누워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아니야, 잘못의 시작은 나한테 있는 것 아닐까. 몸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 것 역시 내가 책임져야 될 일이고 보듬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 자꾸 밀어내려고 하지 말자. 이미 나에게 온 것이니 다 안고 가자. 남아있는 생이 1년이든 6개월이든 얼마라도.
불현 듯 성경에서 읽었던 양과 목동이라는 단어가 튀어 나왔다. 양과 목동. 나의 신음과 통곡, 이 모든 것들은 나의 양 떼 아닐까. 그래, 양 떼들! 나는 목동이고. 생각은 빠르게 번져갔고 날개를 폈다. 그래, 이 양 떼들을 다 데리고 같이 잠을 자자, 내 팔에. 나한테 왔으니까 그냥 기쁘게 받아들이자. 설령 암이라고 해도. 나의 양 떼들!
곧바로 자리를 박차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자판을 신나게 두드리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글이, 시가 펼쳐졌다. 한 자도 고치지도 않고 끝까지 쭉 밀고나갔다. “정말 한 자도 안 고쳤어요.”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는 시 「나의 양 떼들」를 쓰던 당시를 떠올렸다.
“수심이랄까 근심이랄까 상심이랄까/ 아픔과 시련과 고통과 신음과 통증들은/ 모두 나의 양 떼들이라// 나는 이 양들을 몰고 먹이를 주는 목동// 헐떡이며 높은 언덕으로 더불어 오르면 나보다 먼저 가는 양 떼들이 있지/ 아픔과 시련은 아슬아슬한 절벽 끝에 걷고 신음과 통증은 목동의 등을 타고 올라/ 채찍질을 하기도 하지// 다시 암 진단을 받았어?/ 무섬증과 외로움이 격투를 벌이다가 서로 껴안는 것을 본다// 자 집으로 가자// 어둠이 내리면 나는 양 떼들을 모으고 목에 두르고 겨드랑이에도 끼워 집에 들어가 가지런하게 함께 눕는다// 오늘을 사랑하기 위하여 양 떼들을 달래기 위하여// 내 거칠고 깡마른 생을 어루만지기 위하여.”(「나의 양 떼들」 전문)
내년 등단 60년을 앞둔 신달자 시인이 시편 「나의 양 떼들」을 포함한 신작 시집 『전쟁과 평화가 있는 내 부엌』(민음사)과 시선집 『저 거리의 암자』(문학사상), 묵상집 『미치고 흐느끼고 견디고』(″)을 동시에 펴냈다. 신작 시집은 그의 17번째 시집.
“정신을 고급으로 아꼈다. 정신이 말을 안 들어도 몸을 낮췄다. 그래서 내 것인데 내 말을 잘 안 듣는 육신이 미운 적이 있었다.” 그는 시집의 「자서」에서 적었다. “육신이 정신이 앞지르는 나이에 이르러 쇠한 육신에게 미안해한다. 이 시집은 내 몸과 앓는 몸을 가진 분들에게 건네는 위로의 시집이다.”
한국시인협회장까지 역임한 팔순의 노시인 신달자가 느끼고 경험하고 바라본 육신의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문학적 여로는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신 시인을 지난 13일 서울 용산 세계일보 사무실에서 만났다.
―시 「나의 양 떼들」은 하나도 고치지 않고 발표한 것이라고요?
“(양은) 키워본 적도 없어요. 목동이라는 말이 성경에 있죠. 참 이상한 것이 이 시는 하나도 안 고쳤어요. 대개 시를 초벌로 쓴 뒤 고치고 또 고치는데. 이 시의 경우 하나도 안 고치고 그대로 발표한 거예요. 아마 저한테는 되게 절실했던 모양이에요. (반응은 어떤지요) 다들 좋다고 하더라고요.”
인간의 육신은 영원하지 않다. 젊을 때는 건강하지만, 세월이 흐름에 따라 노화하면서 소멸을 향해 나아간다. 「육신이라는 집」은 그렇게 나이를 먹음에 따라 아파오는 몸을 노래한 시편이다.
“내가 나를 떠나/ 너무 많은 타향을 떠돌았지// 다 주고도 눈물만 받았던 수많은 객지들// 지금 돌아오니/ 대문 삐거덕거리고/ 기둥 삭아 내릴 듯 위태롭네/ 겉보다 속이 옴팡지게 상해 있네// 밤새 신음소리 들리지만/ 내가 나를 껴안고 소스라치네/ 내가 나를 어루만지며/ 낡은 육신 껴안고/ 그래도 계절의 신비 다 느끼며/ 남은 생명을 가장 귀한 깨끗한 자리에/ 놓아놓고/ 내가 내 손으로 쓰다듬으며/ 나, 나에게 노래 불러주네.”(「육신이라는 집」 전문)
―시가 조금 쓸쓸합니다.
“세상의 모든 원리는 새 것이었다가 낡아지고 소멸하는 거잖아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이순신이나 김소월만 해도 다 사라지고 없잖아요. 이름만 남아 있죠. 인간의 100년은 참 쓸쓸한 거죠. 인간에게 두려운 것은 경제적인 파탄이지만, 먹을 게 있으면 돈이 최고는 아닙니다.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제일 중요해요.”
시인의 육체 탐구는 뿌리, 기원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소중한 몸을 만들어준 어머니와, 아버지와, 정서와 감정을 부여해준 고향까지.
“핏줄 속에는/ 큰 손이 있는 기라/ 보이지도 않으면서 화악 잡아당기는/ 쇠스랑 같은 손이 있다깡케// 핏줄 속에는/ 발자국도 없이/ 저벅저벅 걸어와 기척 없이 몸 위에 드러눕는/ 뭉클한 가슴이 있는 기라/ 그 뭉클한 가슴을 생으로 떼어 줘도 될 것 같은/ 아니 떼어준 그루터기에서 비집고 나오는/ 새순 같은 그 질긴 생명력을/ 몇 배로 키워 다시 빗줄 안으로/ 쏴아 쏴아 내려 붓고 싶다캉께//... 니 아나?/ 고향도 아버지같이 핏줄인기라/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생명으로 태어난 고향/ 물이지만 쇠뭉치 같은 바위보다 더 무거운/ 그 질긴 줄을 저릿저릿한 핏줄이라 안 카드나/ 수세기 흘러가는 줄/ 끊을 수 없는 역사라 안 카드나”(「핏줄」 부문)
―마치 신이 내린 무당이 노래하는 것 같습니다.
“작년 겨울에 완성한 시입니다. 몸이 아파서 엄마와 아버지, 고향 등 뿌리를 한번 찾아가 본 거예요. 만약에 제가 죽을 때 인사를 한다면 역시 고향과 엄마와 아버지와 이런 게 아닐까, 한번 생각해 본 거죠. 엄마는 늘 경상도 말을 썼는데, 엄마 목소리로 저한테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쓴 시입니다. (핏줄은 무엇입니까) 핏줄은 가면도 없고, 속임수도 안통하고, 시대의 사기꾼도 변질을 못 시켜요. 화장도 하고 변화를 시키지만, 핏줄만큼은 날 것으로 살아서 안 돼요.”
“「핏줄」과 「나의 양떼들」 얘기만 하면 눈물이 나서,...” 신 시인은 시를 설명하다가 갑자기 눈물을 훔쳤다. “제 시간이 다 가나 봐요. 생전 안 이러는데. 큰일 났네. 다른 곳에서 인터뷰할 때 안 이랬는데. 왜 이러지. 눈물도 다 말라버렸는데....”
표제시 「전쟁과 평화가 있는 내 부엌」은 부엌에 대한 오래된 경험적 성찰과 톨스토이의 소설 『전쟁과 평화』에서 받은 영감이 어우러지면서 탄생한 작품이다. 시 속의 부엌은 죽음과 삶, 전쟁과 평화가 공존하는 공간.
“놀라지 마세요/ 내 부엌에는 물과 불이 있어요/ 얼음과 숯불과 영하 20도와 영상 20도가 살아요/ 58도의 독한 술과 13도의 순한 술이 있어요/ 냉동고에는 치미는 분노와 살인적 치욕이 멈춘 채 정지되고/ 세상에 새면 안 되는 일급비밀이 급냉동되어 무표정하게 굳어 있고/ 하나의 서랍엔 비상약이 수북하게 약 주인을 향해 위협적으로 수군거리고/ 한 주먹 털어 넣으면 영원한 안식으로 가는 약이 밤마다 눈인사를 하고// 다섯 개의 칼이 번뜩거리며 용도를 기다리고/ 한 방이면 돌도 깨어지는 쇠뭉치 방망이가 있고/ 잘게잘게 찢을 수 있는 날선 가위가 세 개/ 쇠구멍도 뚫을 수 있는 장비가 다섯 개//...이런 게 삶?/ 전쟁 공부에서 많이 보았던 풍경?/ 박수근 화백의 엽서 속 소가 보는 앞에서 소고기를 잘게잘게 다지는 도마 위/ 밥이 다 되면 전기솥에서 푸우욱 치솟는 연기가/ 극초음속 마하 10 탄도미사일이라고 생각하는/ 이 전쟁의 핵심은 오늘도 먹는 일/ 먹을 걸 만드는 일/ 밤늦도록 평화로운 공포 속/ 어둠 내리면 붉은 태양 같은 따뜻한 불이 켜지는 내 부엌.”(「전쟁과 평화가 있는 내 부엌」 부문)
―부엌에 대한 재미있는 상상 같군요.
“혼자 먹기 위해서 요리를 조금씩 하는데, 어느 날 부엌이 참 무서운 곳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칼로 생선 머리를 자르고, 다지고, 믹서기로 돌리고, 생살에 소금 뿌리고, 보글보글 지지고 볶고, 불에서 구워 씹어 먹잖아요. 인간처럼 독한 게 없어요. 우리가 너무 길들어져 있어요.”
몸이 아프거나 아니면 부엌에서 일하다가 가끔 와인도 한 잔. 와인 한 잔에 옛날이 떠오르고 다시 한 잔에 아버지 어머니.... 시 「트롯의 밤」은 와인을 먹고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추억으로 나아갔던 어떤 날을 그리고 있다.
“홀로 와인 반병을 마셨으니/ 나는 지금부터 미쳐도(島)에 닿는다/ 양의 선을 넘으면 언제나 저미는 핏줄을 안고 운다//...어느 날 술 한 잔 마시고 ‘고향 떠나 10년에 청춘은 늙어어’ 울던 아버지/ 그 눈물 아버지 피같이 내 가슴 위로 흘렀지// 아버지 바람나 집에 뜸할 때 술로 배를 채우며 울어 울어 울었던 어머니/ 불현듯 마당 가운데 서서 아리랑을 살 찢어지게 부르다 쓰러지는 미친 여자/ 그 모습 아직 나를 발광하게 만드는데//... 빈 와인 병을 들고 가슴을 치며/ 연분홍치마가 봄바람에⋯ 애간장 저미는 내 노래가/ 방울방울 눈물방울/ ‘연분홍치마’를 몇 천 번을 불러도 기다리는 남자는 오지 않고// 오늘 밤도 취한 나를 두고 봄날은 간다”(「트롯의 밤」 부문)
―이 시는 어떻게 나오게 됐나요.
“원래 술을 못 했습니다. 그런데 술도 자꾸 노력을 하니까 조금씩 먹게 되더라고요. 요즘은 와인 두세 잔은 먹을 수 있게 됐고요. 와인 한 병을 사다 놓으면 한 일주일 정도 마시는 것 같아요. 기분이 좀 우울할 때면 조금 더 먹고 취한다는 얘기예요. 우리 집이 시골에서 제재소와 정미소를 했던 부자집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나중에 잘못해 망해서 1970년대 서울 근교로 이사를 왔어요. 어느 날 술을 못하시던 아버지가 막걸리를 몇 잔 드시더니 「타향살이」를 불렀다. 우리 가족들이 모두 울었지요. 엄마는 자주 술을 마셨는데, 술만 먹으면 부르던 노래가 있어요. 우리나라 민요인데, 제가 한국시인협회장이 돼 인사할 때 노래를 불렀어요.”
“아감 넘치는 두 줄기⋯.” 시인은 어머니가 즐겨 부르던 노래를 불렀다. 노래가 끝나자 가사의 의미를 설명해준다. “딱 두 가지입니다. 당신이 가는 두 갈래 길을 내가 막을 수 없고, 내 두 눈에 흐르는 눈물을 당신이 막을 수도 없고.”
―이번 17번째 시집은 어떤 의미나 특징이 있을까요.
“이번 시집은 제 살점을 뜯어내서 쓴 시들인 것 같아요. 죽음하고 약간 맞닿아 있었던 시기였기 때문에 죽음에 대한 공포도 한 번 느끼서 진솔하게 제 가슴, 마음을 펼쳐놓은 시집입니다. 기교를 좀 내려놓고 진심을 썼던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게 마지막에는 결국은 핏줄이더라고요. 태어날 때도 가족이 있고, 죽을 때도 가족이 옆에 있잖아요. 핏줄이라는 게 떼어낼 수 없는 거지요. 미우나 고우나 핏줄이 늘 옆에서 존재하는 것 같아요.(시집에 대한 반응은 어떤가요) 칭찬을 많이 받았습니다. 사람들한테 신달자의 진면목이 나왔다, 그런 얘기도 들었고요. 다만, 감정을 너무 드러내도 좋은 건 아니죠. 눈물 나는 것은 엉엉 우는 사람 앞이 아니라 울음을 꾹 참고 있는 사람을 볼 때입니다. 그런 점에서 시는 절제도 필요해요.”
“아버지!” 어느 가을날 오후, 거창여중 2학년생 신달자는 용돈을 받기 위해 아버지가 일하던 정미소 사무실에 들어섰다. 어디로 갔는지 아버지는 자리를 비우고 사무실에서 볼 수 없었다. 그는 큰소리로 외쳤다. “아버지!”
아버지 인기척은 없었다. 이때 항상 자물쇠가 굳게 잠겨 있던 아버지의 책상 서랍이 열려있는 게 보였다. 돈이 많이 들어 있을 것이라고 사람들이 늘 말해오던 서랍이었다. 어머니는 돈이 필요하면 말했다. 저고리나 하나 하고 싶은데, 니 아버지 자물쇠나 깨야 되겠다고. 일꾼들 역시 노래했다. 술 한 잔 했는데, 사장님 자물쇠나 깨야 되겠다고. 자물쇠는 늘 표적이었다. 열린 서랍을 보자 평소에는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한 생각이 떠올랐다. 아버지는 돈도 많은데, 지폐 몇 장을 가져 간다고 어떻게 알까. 큰 죄가 아닐 거야.
머뭇거리지 않고 책상 서랍을 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서랍 안에는 기대하던 돈은 없었다. 대신 공책 다섯 권이 다소곳하게 들어있었다. 펼쳐 보니 일기장이었다. 뭐야, 숙제도 없는데 왜 일기를 쓰는 것일까. 아버지는 오랫동안 일기를 써왔음에 틀림없었다.
사무실에 선 채로 일기장을 읽어 내려갔다. 특이한 문장이 눈에 띄었다. 일기장의 5일 연속 첫 문장이 똑같았다. “나는 오늘도 홀로 울었다.” 무슨 울 일이 있었을까. 여자도 많고, 돈도 많고, 친구도 많으신 분이⋯.
방으로 돌아왔지만, 가슴이 진정되지 않았다. 충격이었다. 모든 것을 다 가진 것 같은 아버지가 매일 홀로 운다니. 날마다 혼자 운다는 아버지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생각이 이어졌다. 마음을 들여다 볼 방법이 없을까. 시나 소설 같은 문학이라면⋯.
“너희 오빠가 읽고 있는 책 하나 빌려 둬.” 그는 학교에서 오빠가 대학 국문과에 다닌다는 친구에게 부탁했다. 친구는 김소월 시집을 가져왔다.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이상한 이야기가 다 있네. 그런데 이 사람은 또 왜 우는 거야? 시를 읽었지만 역시 마음을 알 수 없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나에게 편지를 보내면,” 어머니가 고집해 고교 1학년 때 부산 남성여고로 전학을 가면서 하숙을 했다. 문학적 감수성을 가진 아버지가 말했다. “나의 용돈을 두 배로 올려주겠다!”
“부모님 전상서 존체 만강하옵시고⋯.” 용돈을 올려준다는 말에 편지를 썼다. 편지에 어려운 말, 모르는 말을 적어 넣었다. 기대했던 용돈은 오지 않았다. 대신 아버지의 전화가 하숙집으로 걸려왔다. “가급적 한자를 쓰지 말고 글을 최대한 풀어 써봐라.”
그는 ‘아버님 전상서’를 ‘아버지께 드립니다’로 바꾸는 등 어려운 한자를 쉬운 한글로 바꾸었다. 이와 함께 서점에서 근사한 문장을 모은 『명언집』을 한 권 사서 한 두 개의 문장을 골라 편지에 집어넣었다. 얼마 뒤, 두 배로 오른 용돈이 왔다. 아버지는 ‘불청객’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도 칭찬했다. “니가 이런 말까지 하는지 몰랐다!” 시인 신달자가 쓰는 세계로 들어선 순간이었다.
남성여고 3학년 때 국어 선생에 의해서 학교 대표로 뽑혀 경남도 주관의 백일장대회에 참석했다. 백일장 제목은 「길」. 경남도 백일장에서 1등을 했다. 이듬해 특기 장학생으로 숙대 국문과에 진학할 수 있었다고 그는 웃었다. “너 이리 가, 하고 이상하게도 길을 자꾸 열어주는 것 같더라.”
1943년 거창에서 태어나서 부산에서 자란 신달자는 시 「환상의 밤」이 1964년 잡지 『여상』에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1972년 박목월 시인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발」, 「처음 목소리」를 발표하면서 재등단했다. 등단 이후 『열애』, 『종이』, 『북촌』, 『봉헌문자』, 『겨울축제』, 『모순의 방』, 『아가』 등 다수의 시집을 펴냈다. 신인여류문학상, 시와시학상, 현대불교문학상, 영랑시문학상, 공초문학상, 김준성문학상, 대산문학상 등 많은 상을 받았다. 명지대 문예창작과 교수를 역임했다.
“많은 비평가들은 제 시 세계를 ‘상처 달래기’라고 분석하더군요. 저는 되게 명랑하고 잘 웃기고 분위기가 화려해 보이지만, 내면은 전혀 다릅니다. 젊었을 때에도 그랬고요. 그래서 시에 자꾸 더 끌려갔는지도 몰라요. 대학에 들어가면서 노트에 ‘반드시 이루어 낼 것’을 적은 적이 있어요. ‘연애 잘할 것, 영어 잘하기, 운전 잘하기....’ 그런데 운전만 했지, 연애도 전혀 못했고, 영어도 못했고, 수영도 못했어요.(상처 달래기라는 평가 동의하시나요) 동의합니다. 저의 적은 늘 상처였고, 사랑한 것도 상처였어요. 가장 싫어했고 가장 사랑했던 게 상처예요. 상처 달래기도 하나의 위로거든요. 상처 보듬기가 결국 위로가 되더라고요.”
―시 쓰기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이나 방법은 무엇입니까.
“시도 하나의 대화입니다. 제가 쓰고 버리는 게 아니라 누가 읽게 만드는 거잖아요. 무슨 말을 할 것인가를 꼭 먼저 생각해요. 만약 「나의 양 떼들」을 쓰면, 이 시의 핵심이 무엇인가를 자꾸 물으면서 써요. 두 번째가 언어입니다. 어떤 단어, 낱말을 쓸 것인가. 어떤 단어가 나오지 않으면, 신문도 읽고 드라마도 보고 이것저것도 하죠. 신중하게 단어를 찾습니다.”
―내년이면 등단 60년이 되는데 다시 태어나도 시인이 되고 싶은지요? 아니면 다른 길을 가시겠습니까?
“금방 대답이 나오지 않네요...(잠시 생각한 뒤) 시인이 되고 싶지 않아요. 다시 태어나면 다른 것 해보죠. 물론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진 않겠지만.(시인으로 제일 힘들었던 건 무엇이었습니까) 시를 썼는데 사람들이 알아보지 않는 게 제일 힘들었습니다. 요즘 젊은 시인들은 공감 같은 것 안 바란다, 시를 써놓으면 누군가는 읽는다고 하는데,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시는 공감대가 필요하니까요.”
“더 좋은 시를 쓰다가 죽어야 되겠죠.” 신작 시집의 의미와 특징을 설명하는 도중에는 이번 시편이 자신의 시 세계의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50년 전의 어느 날로 기자를 끌고 갔다. 그러니까 스승이 작고하기 얼마 전, 스승 박목월 시인에게 물었다. “선생님의 대표작은 「나그네」라고 할 수 있겠지요?” 시 「나그네」는 스승이 창작한 시 가운데 가장 유명하기도 했고 각종 교과서에 실린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목월의 반응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아이다, 내 대표작은 오늘 밤에 쓸 기다.”
“저는 스승의 말씀을 굉장한 교훈으로 삼아요.” 인터뷰를 마치고 귀가를 위해 택시에 오르는 신달자 시인의 뒷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봤다. 택시가 향하는 곳은 어디일까. 육신을 뉘일 물리적 집일까, 존재의 의미를 밝히는 시의 성채일까, 아니면 쓰기 자체가 목적인 글쓰기의 감옥일까. 시인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그의 말은 떠나지 않고 아리랑으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지금도 저의 대표작을 쓰고 있다고 생각하고 시를 씁니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yge.com, 사진=허정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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