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를 삼킨 닭’ 하림, ‘승자의 저주’ 넘어 순항할까
하림그룹이 국내 최대 컨테이너 선사 에이치엠엠(HMM·옛 현대상선)의 새 주인을 찾기 위한 매각 본입찰에서 동원그룹을 제치고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지만, 최종 주식매매계약 체결은 물론 에이치엠엠을 정상화하는 데까지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해운업황 부진이 이어지고 있는 데다, 수조원대에 이르는 인수 자금을 끌어와야 하는 하림의 자금 조달 능력에 의구심을 표하는 시각이 많기 때문이다. 인수 이후 초대형 국적사로서의 경쟁력 하락은 물론 그룹 전체가 어려워지는 ‘승자의 저주’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하림은 19일 입장문을 내어 “성실한 협상을 통해 본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본계약을 맺게 되면, 벌크 전문 해운사인 (자회사) 팬오션과의 시너지를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높여 안정감 있고 신뢰받는 국적선사로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했다. 앞서 채권단인 케이디비(KDB)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는 지난 18일 에이치엠엠 인수 우선협상 대상자로 팬오션(하림그룹)·제이케이엘(JKL)파트너스 컨소시엄을 선정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해운시장이 침체 국면에 접어들면서 하림이 언급한 ‘인수 시너지’를 얻기 힘들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코로나19 대유행 때 특수를 누린 해운업체들은 올해 글로벌 경기 침체와 선박 공급 확대에 따른 운임 하락 등으로 휘청이고 있다. 해상운송 운임 수준을 보여주는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지난 15일 기준 1093.52로 지난해 1월7일(5109.60)의 5분의 1 수준으로 폭락했다.
이에 따라 에이치엠엠 실적도 위협받고 있다. 올 3분기 에이치엠엠 영업이익(758억원)은 전년 동기 대비 97% 급감했다. 더욱이 글로벌 기업들이 코로나19 대유행 때 발주한 컨테이너선이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인도될 예정이어서 공급 과잉 등으로 해운업황은 단기간에 좋아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자금 조달도 관건으로 꼽힌다. 하림이 본입찰에서 써낸 인수가는 6조4천억원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하림의 현금성 자산 1조6천억원을 훌쩍 뛰어넘는 규모다. 컨소시엄을 꾸린 사모펀드 운용사 제이케이엘파트너스의 자금력에 의지해야 하는 셈이다. 이에 따라 하림은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과정에서 원활한 자금 조달을 위해 채권단에 잔여 영구채(1조6800억원 규모) 주식전환을 3년간 미뤄달라고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문제는 하림이 앞으로 세부 계약 조건 협상 테이블에 이런 요구사항을 다시 올려놓을 수 있다는 점이다. 김홍국 하림 회장은 이날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영구채 전환 요구와 관련해 “(채권단이) 안 받아줄 가능성이 높다”면서도 “(아직) 결정된 게 아니다”라고 협상의 여지를 열어뒀다. 이렇게 되면 경쟁 후보였던 동원그룹이 앞서 예고한 대로 법적 대응에 나서는 등 공정성 시비가 불거질 수 있다.
하림의 재무부담이 커지고 있는 점도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하림은 현재 서울 양재동에 국내 최대 주상복합 물류단지를 조성하는 도시첨단물류단지 개발 사업도 추진 중이다. 총사업비만 6조4천억원에 이르는 초대형 사업이다.
한편에서는 닭고기 공급 업체로 출발해 컨테이너선사 운영 경험이 없는 하림이 ‘고래’ 격인 글로벌 해운사를 제대로 운영할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도 나온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하림이 벌크선사인 팬오션 경영을 바탕으로 에이치엠엠 인수전에 나섰지만, 컨테이너선 사업과 벌크선 사업은 엄연히 다른 영역”이라며 “지금 상황은 닭이 고래를 삼킨 형국이다. 세계 2위 해운선사인 덴마크 머스크마저도 적자로 돌아선 상황에서 수조원의 차입금까지 떠안는 하림이 에이치엠엠을 안정적으로 이끌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에이치엠엠 노동조합의 반발도 넘어야 할 과제다. 노조는 현금성 자산이 10조원에 이르는 에이치엠엠이 하림의 곳간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단체행동을 예고한 상태다.
한편, 강도형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는 이날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에이치엠엠 우선협상대상자 선정과 관련한 의원 질의에 “‘승자의 저주’가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장관이 된다면 (매각 계획을) 처음부터 꼼꼼히 한번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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