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미새’가 아니라 지도자를 원한다 [이진순 칼럼]

한겨레 2023. 12. 20.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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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순 칼럼]

지난 17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새로운선택과 세번째 권력의 공동 창당대회가 열려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총선을 넉달 앞둔 지금, 정치권 어디에도 비전과 능력의 차별성은 보이지 않는다. 서로에 대한 반대만 있지, 새로운 비전은 없다. 이런 추세라면 내년 총선의 가장 큰 수혜자는 윤석열 대항마로 뾰족하게 각을 세워 온 이준석이 될 것이다. 민주당이 총선을 잘 치르고 싶다면, 이준석이나 한동훈에게는 모자란 ‘지도자의 덕성과 공적 윤리’를 가지고 승부수를 띄워야 한다.

이진순│재단법인 와글 이사장

“나는 요즘 정치를 끊고 지내”라는 말을 주변에서 많이 듣는다. 오랜만에 마주한 지인들과의 송년모임에서 ‘정치 얘기는 아예 꺼내지도 말라’고 손사래를 치며 하는 소리다. ‘정치 디톡스’를 하지 않으면 화가 나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정치가 개판인데, 일개 시민으로 도무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울분의 표현이다.

교착상태를 푸는 열쇠는 정치권에 있다. 정치 논객들의 주장이 요즘처럼 좌우 구분 없이 일치했던 적이 있었나 싶을 만큼, 진단과 처방은 대동소이하다. “국민의힘은 용산 2중대에서 벗어나서 대통령의 독단과 폭주를 견제하고 성난 민심에 귀 기울여야 한다.” “민주당은 이재명 친위대에 머무르지 말고 폭넓은 인재 등용과 정치개혁으로 정면승부 해야 한다.” 결론은 뻔한데, 양당 모두 근본적 쇄신 없이 권력자 눈치만 보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권력자는 있으나 지도자는 없다. 지도자란, 말 그대로 우리 사회가 가야 할 방향을 가리키고 이끄는 사람이다. 지도자가 되려면 첫째, 어디로 향해야 할지 목적지에 대한 ‘비전’이 있어야 하고 둘째, 국민이 그의 행보를 따를 수 있게 믿음을 주는 ‘덕성’이 있어야 하며, 셋째, 목적지까지 가기 위해 정확한 로드맵을 짜고 인재를 등용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한 사람이 비전과 덕성과 능력을 다 갖추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유권자 혁명’이라 불린 역대 선거에는 국민이 저마다 자신을 투사해서 정서적으로 동일시하는 지도자가 있었다.

비록 지역색이라는 엄청난 가산점을 전제로 한 것이라 해도, 김영삼과 김대중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양 김씨가 테러와 제명, 혹은 납치와 투옥의 모진 세월을 견디며 민주주의의 깃발을 놓지 않았다는 데 대한 인간적 신뢰와 존경심을 갖고 있었다. 그 뒤를 이은 노무현의 대통령 당선은 대한민국 언더독의 반란이었다. 상고 출신 비주류 정치인이었던 노무현은 당선이 확실시되는 지역구를 버리고 험지 출마를 자처했다. ‘바보 노무현’의 열풍은 그의 사심 없고 탈권위적인 덕성에 대한 애정과 믿음에서 시작되었다.

그 믿음이 지지부진한 개혁과 부동산값 폭등으로 무너졌을 때, 유권자들은 덕성은 없어도 능력은 있어 보이는 이명박을 선택했다. 후보 시절부터 터져 나온 수많은 비리와 부패 의혹에도 불구하고 ‘자수성가한 기업인’의 능력으로 대한민국을 회생시키길 원했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유권자가 선거를, 희망을 선택하는 정치축제가 아니라 절망을 표출하는 응징의 단두대로 인식하게 된 것이.

이명박의 ‘주식회사 대한민국’이 비전 없는 4대강 토목공사와 언론탄압과 부정부패로 더 큰 절망만 남기게 되었을 때 개혁과 혁신의 비전 전도사로 일어선 이가 박근혜이다. 좌파를 상징해온 빨간색으로 정당 깃발을 바꾸고 국가 개조의 경제민주화를 내건 그의 호소는 당시 민주당의 비전보다 더 혁신적으로 보였다. 그 비전이 선거용으로 급조된 얄팍한 포장지에 불과했고, 그에게 능력도 덕성도 없다는 게 드러나자 국민은 격분했고 결국 그를 권좌에서 끌어내렸다.

박근혜에 대한 응징과 심판의 정점은 문재인의 당선이었다. 노무현 대통령 장례식장을 묵묵히 지키던 절제력 있는 상주 이미지는 노무현의 최대 강점이었던 덕성을 그가 지녔을 거라는 신뢰를 주었다. 조국 사태 이후 내로남불과 공정성 화두가 문재인 정부의 가장 취약한 급소가 된 것은 문재인의 비전이나 능력보다 덕성에 대한 기대가 컸기 때문일 것이다.

그 반사이익을 누린 이가 윤석열이다. 정치 경험 없는 검사 출신의 돌파력과 추진력이 그의 덕성 포인트로 부각되었다. 그 결과가 현재 상태이다. 지도자의 자질 없이 반사이익으로 권력의 향배가 결정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된다.

총선을 넉달 앞둔 지금, 정치권 어디에도 비전과 능력의 차별성은 보이지 않는다. 서로에 대한 반대만 있지, 새로운 비전은 없다. 이런 추세라면 내년 총선의 가장 큰 수혜자는 윤석열 대항마로 뾰족하게 각을 세워온 이준석이 될 것이다. 민주당이 총선을 잘 치르고 싶다면, 이준석이나 한동훈에게는 모자란 ‘지도자의 덕성과 공적 윤리’를 가지고 승부수를 띄워야 한다. 얄팍한 말장난이 아니라 원칙과 격조를 지키며 덕성에 대한 국민적 믿음을 확보하는 일. 지금 국민이 간절히 원하는 건, ‘표미새’(표에 미친 사람)가 아니라 언행일치의 덕성을 갖춘 지도자이다. 국민에게 선거제 개혁을 약속했으면 단기적 유불리를 떠나 그 약속을 지켜라. 개혁에 미적대다가 엉뚱한 인물의 킹메이커가 된 문재인 정부의 실책을 반복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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